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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년 창업 건설업으로 급성장/타계 김인득 벽산그룹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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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년 창업 건설업으로 급성장/타계 김인득 벽산그룹 명예회장

입력
1997.07.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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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35위 일군 한국경제 큰 별10일 타계한 고 김인득 벽산그룹 명예회장은 재계순위 35위(97년 현재 자산규모 2조원)인 벽산그룹을 창업, 국내 굴지의 그룹으로 키운 장본인이다. 벽산은 그의 아호다.

김명예회장은 1915년 경남 함안에서 중농의 아들로 태어나 마산공립상업학교(마산상고 전신)를 졸업한 후 내서금융조합 등에 근무하며 8,900원을 저축, 한국전쟁중인 51년 부산에서 벽산그룹의 모태인 영화수입업체 「동양물산」을 설립했다. 영화말고 별다른 오락시설이 없던 당시 흥행에 잇따라 성공해 단성사 중앙극장 등 전국 17개 유명극장을 소유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당시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보다 현금이 많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김명예회장은 62년 (주)벽산의 전신인 한국스레트 인수를 계기로 흥행업에서 손을 떼고 건설업과 제조업으로 업종전환했으며 70년대 새마을운동과 농어촌 지붕개량사업이 확산되면서 슬레이트 수요가 폭증, 급속히 성장했다.

김명예회장은 91년 그룹창립 40주년을 맞아 장남인 희철씨에게 경영권을 넘기고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크리스찬 기업인」으로 불리우기도한 김명예회장은 한국기독실업인회 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김회장과 차남 희용씨(동양물산기업 대표이사 부회장), 3남 희근씨(벽산건설 대표이사 부회장) 등으로 구성된 벽산그룹 회장단은 17개 계열사의 최고의사 결정기구로 자리잡고있어 김명예회장 별세이후 그룹경영권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을 전망이다.<유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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