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센 권좌유지 용인… 권력기형 초래캄보디아 내전재연을 계기로 유엔에 따가운 시선이 쏠리고 있다. 유엔의 실패한 평화유지활동(PKO)이 캄보디아에 내전의 씨를 뿌렸다는 주장 때문이다.
캄보디아는 그동안 48년부터 시작된 유엔 평화유지활동의 가장 모범적인 성공사례로 꼽혀왔다. 유엔도 89년부터 4년간 공을 들이고 사상 최대의 병력과 자금을 투입해 20여년간 지속된 「킬링필드」의 땅에 평화를 돌려주었다고 자랑해왔다.
유엔이 캄보디아에서 PKO를 시작한 것은 92년 3월. 89년부터 미국과 유엔 등의 중재로 시작된 캄보디아 각 정파간 평화협상은 91년 파리평화협정으로 결실을 보았다. 당시 훈 센 정부, 크메르 루주, 시아누크공파, 친미 손산파 등 4개 정파가 협정에 서명했다. 이에 따라 잠정통치를 위임받은 캄보디아 유엔과도행정기구(UNTAC)가 꾸려져 93년 5월 총선때까지 각 정파의 무장해제 난민귀환 선거관리 등 내정을 맡았다. 일본인 아카시 야스시(명석강) 현 유엔사무차장이 행정기구 대표로 임명됐다.
유엔은 군병력 1만6,000명 등 모두 2만2,000명의 인원과 30억달러의 예산을 투입, PKO를 전개했다. 일본도 참여, 전후 첫 해외파병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각 정파의 무장해제와 사병해산, 정부 핵심기구의 중립성 확보 등을 완수하지 못한 채 93년 총선이 끝나자 서둘러 짐을 챙겼다. 더욱 큰 문제는 역사상 유례없는 기형적 권력구조를 만들어 놓은 데 있었다. 93년 5월 총선결과 전 국왕인 시아누크공이 이끄는 야당인 민족연합전선(FUNCINPEC)이 45%의 지지를 얻어 훈센의 집권 캄보디아인민당(38.4%)에 승리했는데도 훈센의 권좌유지를 용인했다. UNTAC는 『권력을 나눠주지 않으면 총을 들겠다』고 위협하는 훈 센과의 대결이 두려워 당시 FUNCINPEC부당수인 라나리드를 설득했다. 필연적으로 정치적 혼란을 불러올 라나리드 제1총리와 훈 센 제2총리의 구도가 이때 확립됐다.
군사전문 주간지 제인스 디펜스 아시아 태평양국 편집책임자인 로버타 카니올은 『유엔은 각 정파를 협상테이블로 끌어들여 치러낸 총선의 결과를 집행하지 않음으로써 현재의 캄보디아 내전에 대한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박진용 기자>박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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