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기는 비타민B1의 결핍으로 다리가 붓고 맥이 빨라지는 병이다.기원전 1,000년경 중국 의서에 각기의 증상을 묘사한 기록이 나오는 것으로 미뤄 역사가 매우 오래된 병으로 여겨진다. 그 후로도 각기는 여러 문명권의 의학 문헌에 심심찮게 등장한다.
그러나 각기가 세상 사람들의 주목을 끌게 된 것은 1870년부터 1900년대초 동아시아, 동남아시아, 남아시아 등지에서 대규모로 발병하면서부터. 당시는 이른바 「세균학의 시대」였다.
즉 오늘날 우리가 전염병으로 알고 있는 여러가지 병이 전염된다는 사실과 그 원인균이 잇달아 밝혀지던 때였다. 따라서 집단적으로 발병하는 각기에 대해서도 의학자들은 원인균을 밝히려고 애썼으나 모두 실패했다.
어떤 병의 정체가 밝혀졌더라도 실제로 그 병을 정확히 진단해 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하물며 병의 정체가 정확히 규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병의 원인을 밝히고 효과적인 치료법을 개발하는 과정은 어려울 수 밖에 없다.
20세기 들어서도 파나마운하를 건설하던 노동자들, 브라질의 해군부대 등에서 각기가 집단적으로 발생했다. 이들 환자들은 대개 도정한 쌀이나 밀을 주식으로 하고, 폐쇄되거나 격리된 집단에 속한 공통점이 있었다. 얼마 뒤 밝혀졌지만 이들은 비타민B1을 제대로 섭취하지 못해 각기에 걸렸던 것이다.<황상익 서울대 의대 교수·의사학>황상익>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