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정원 24만여명 매년 80% 넘는 취업률/전문인력교육기관으로 외형상 자리잡았지만 전공취업은 저조하고 자격증도 푸대접 실상은 딴판이다/정책당국의 무관심속 사회의 대접은 일반대와 천양지차/재학생 절반이상이 4년제 편입을 위한 ‘징검다리’로 인식/그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전문대 공업경영학과 2학년 신모(24)씨는 요즈음 걱정이 태산이다. 졸업이 한 학기 밖에 안 남았지만 진로를 찾을 수 없다. 학교 상담실에서 취업을 알아봤지만 전기과, 기계과 출신 전문 기술자를 원하는 구인 원서만 뜸하게 있을 뿐이다. 할 수 없이 4년제 대학 편입을 준비하고는 있지만 경쟁률이 워낙 높아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
『그저 막막합니다. 전문대 졸업장만 갖고 번듯한 기업에 들어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데다 전공과 상관없이 아무 곳이나 닥치는대로 취직한다면 승진은 고사하고 몇년이나 버틸 수 있을 지 뻔하잖습니까. 그나마 특수학과 출신들만이 어느정도 대접받을 뿐 나머지 전문대학 졸업자는 사회에서 천덕꾸러기 신세인 것만 같습니다. 편입을 꿈꾸는 학생들 중 절반이상이 아마 나처럼 취직이 안돼 할 수 없이 도전하는 것일 겁니다』
교육부가 집계한 전문대학 졸업생 취업률은 96년 87.2%, 95년 84.6% 등 90년이후 항상 80%를 넘었다. 이는 4년제 대학 취업률보다 훨씬 높은 수준으로 정책 당국자와 일부 전문대 관계자들이 단기교육과정으로서 전문대제도가 성공했음을 이야기할 때 가장 중요한 근거로 삼는 대목이다.
그러나 한 전문대교수는 이같은 취업률통계는 「허상」이라고 단정했다.
『일부 전문대에서 취업률을 사실과 다르게 부풀려서 발표하고 있습니다. 전자분야의 경우 라이프사이클이 아주 짧기 때문에 학교에서 좇아가기가 어려울 정도이고 전문대 기술수준을 산업체에서 아예 인정하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따라서 실제로 전문대생들이 졸업후 전공과 관련된 분야에 취직하는 경우는 30%도 안될 겁니다』
발표되는 취업률이 저조할 경우 입학생 수가 현격히 줄어들거나 입학생의 질이 떨어질 염려가 있기때문에 수치를 높여 발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믿고 전문대학에 진학하는 학생들은 그만큼 실망이 클 수 밖에 없다.
신씨는 처음에는 전공관련 자격증 시험을 준비했지만 곧 포기했다. 자격증을 취득하면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했지만 선배들로부터 기업측에서 전문대출신 자격증보유자는 회사 설립요건이나 구성요소로만 생각할 뿐 전문가로 대접해 주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만둔 것이다. 또 전문대 출신 꼬리표는 항상 따라다니고 4년제 졸업자에 비해 차별을 받는 경우가 다반사라는 말도 들었다.
『전문대에 합격할 당시만 해도 꿈도 컸고 나름대로 장기 계획도 있었습니다. 비록 4년제 대학은 아니라해도 내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면 4년제 출신이 부럽지 않을 것이란 생각에 정말 열심히 전공에 파고들 계획이었지요. 하지만 학교에 들어와보니 영 딴판이었습니다. 전공은 제쳐두고 4년제로의 편입학을 위한 영어공부에 몰두하던가, 아예 다른 공부를 하는 학생들이 절반이상이었습니다. 전공과목 수업인지 자율학습시간인지 구분이 안갈 정도였어요. 게다가 셋만 모이면 편입학이나 진로를 바꾸기 위한 이야기가 주 화제였으니 「왜 들어왔나」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신씨가 전문대에 입학하자마자 자괴감에 빠질 정도로 사실 전문대학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과 지원은 4년제 대학에 비해 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97년 전문대 입학정원은 24만8,850명. 4년제가 28만2,660명이니 숫적으로는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4년제 대학과 전문대학에 대한 사회적 대접은 하늘과 땅 차이다. 최근들어 전문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전문대가 바라는 수준에는 크게 못미친다.
교육부 당국자도 『그동안 정책이 4년제 대학 중심으로 이루어져 온 것이 사실』이라며 『아무래도 비중이 큰 쪽에 관심이 높아지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다.
신씨는 취업도 어렵고 학교 공부에 매력을 잃게 되자 할 수 없이 4년제 편입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졸업만 하면 된다」는 생각에 전공은 시험 때만 낙제를 면할 정도로 준비하고 있을 뿐이다. 지도 교수도 신씨처럼 전공과목시간에 다른 공부를 하는 학생들이 있어도 본체 만체 한다.
문대학의 목적은 실기교육을 통한 중견기술인 양성이다. 하지만 신씨처럼 전문대학 학습과정을 사실상 포기한 채 4년제 대학에 편입하는 일에만 몰두하는 학생들이 많아지면서 실기교육은 실종됐다. 이들에게는 전문대가 4년제 대학으로 가는 징검다리에 불과한 것이다.
편입학에 성공하더라도 문제는 계속된다. 전문대와 4년제 대학은 교육의 출발점이 다르다. 전문대는 실기위주라 이론중심의 4년제 대학에 가더라도 적응하기 어렵다.
『친구중 절반은 편입학원을 같이 다니고 있습니다. 집안형편이 어렵거나 지방 출신 학생들만 취업하려고 이리저리 알아보고 있지요. 돌이켜 보면 내게 2년간의 전문대 생활이 도움을 준거라고는 4년제 대학 편입 자격을 준 것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지난 79년 「고도산업사회에 대비, 사회 각 직업분야에서 실무요원으로 주역을 담당할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단기고등교육기관」으로 설립되기 시작한 전문대. 그러나 20년이 되어가는 시점에서 전문대가 당초 목표한대로 성과를 거두었다고 보기 어렵다. 많은 교육전문가들이 전문대에 대한 사회·정책적 무관심에 분노를 터뜨리지만 전문대가 처한 현실이 당장에 나아질 것으로는 기대되지 않는다.<염영남 기자>염영남>
◎관계자가 진단한 전문대의 위기/‘교육개혁안’에서도 철저히 소외/현 제도 4년제 대학 중심/‘교개위’에 전문대측 1명뿐/3,4학년 심화과정 개설과 ‘전문’ 명칭 삭제 등 숙원은 거의 반영안돼
취재팀이 만난 전문대학 교수 등 관계자들은 공통적으로 사회적·정책적 푸대접과 그 때문에 상처받는 전문대학을 걱정했다.
인천 경인여자전문대 이종만 교수는 교육개혁심의위원회 위원 40여명중 전문대 교수가 1명에 불과한 것이 전문대학의 위상을 드러내는 단적인 예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교육개혁에서 전문대학에 해당되는 것이 뭐가 있습니까. 전문대 입장이 거의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전문대 발전에 관한 정책과제 연구용역 조차 4년제 교수들의 몫입니다』
전문대학 관계자들은 몇년간에 걸친 교육개혁과정에서 자신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도록 노력했으나 별무성과였다. 그들의 요구는 크게 두가지. 첫째 3, 4학년 심화과정을 전문대에 개설하는 한편 이 과정을 마친 졸업생들에게 학사학위를 부여해 달라는 것. 둘째는 전문대학에서 「전문」을 빼달라는 것 등이다.
심화과정은 전문대생들과 졸업생들에게 2년간 배운 실기능력을 더욱 발전시킬 수 있는 길을 열어주자는 것이다. 그래야만 학생의 이탈을 막고 기술교육을 내실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문대학의 요구는 4년제 대학이 중심이 된 교육개혁의 높은 파고에 묻혀 실종됐고 단지 교육부는 4년제 기술대학을 따로 설립키로 결정했을 뿐이다. 더욱이 대학설립이 자유로워지고 교육시장의 개방이 진행되면서 전문대학의 위기의식은 4년제 대학보다 더욱 심각한 상태다.
일부 지방전문대는 일시에 도태될 것이 불보듯 뻔하고 수도권지역 전문대학도 지방 4년제 대학과 치열한 「밥 그릇」싸움을 벌여야할 판이다. 하지만 4년제 대학 중심의 현행 교육제도 내에서는 일방적으로 불리하다는 것이 인덕전문대 윤여송 교수의 주장이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죠. 애초에 불공정한 경기규칙을 만들어 놓고 경쟁하라는 꼴입니다. 그러다 보면 결국 쓸만한 전문대도 무너지지 않겠습니까』
전문대가 재정 확보를 목적으로 방만하게 학교를 운영해왔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높다. 대헌전문대 노영준 교수는 전문대학이 2만∼3만명씩 정원을 늘려 수용능력을 초과했다고 말했다.
『전문대학이 4년제 대학처럼 학과와 계열을 백화점식으로 운영하고 있어요. 학생수가 2,000명이 넘는 전문대가 많지만 시설이 뒷받침되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죠. 내실화를 기해야할 때입니다』<조재우 기자>조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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