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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년 축하” 후배문인들이 ‘질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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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년 축하” 후배문인들이 ‘질주’ 출간

입력
1997.07.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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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단의 접장’ 이제하를 위하여/“예술 감수성 세례에 보답”/시·소설·작품론 등 엮어 본인도 소설작업 재개/‘광화사’ 개작 ‘열망’ 펴내「청솔 푸른 그늘에 앉아/ 서울친구의 편지를 읽는다/ 보라빛 노을은/ 가슴에 안았다고 해도 좋다/ 혹은/ 하이얀 햇빛이 깔린/ 어느 도서관 정원이라 해도 좋다/ 밀물처럼 온몸을 스며흐르는/ 아아 피곤한 그리움이여…」.

이렇게 노래하던 고1 청년이 어느덧 육순이 됐다. 소설가이자 시인, 화가, 영화평론가 이제하씨. 「환상적 리얼리즘·광기의 미학을 추구하는 작가」 「우리 시대의 르네상스적 예술가」 등 그의 작업에 대한 평가만큼이나, 그에게는 많은 후배문인이 따른다. 그 후배들이 지난달 24일로 갑년을 맞은 그를 기리는 신작 소설·시·산문을 써서 책 한 권을 만들었다. 이씨의 자화상이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질주」(열림원간). 이와함께 출판사 문학동네는 이씨가 86년 한국일보에 연재했던 장편 「광화사」를 개작한 「열망」(전 2권)을 시작으로 그의 소설전집 12권을 차례로 간행할 예정이다.

「질주」는 희귀한 책이다. 학자들의 화갑기념 논문집이나 예술의 타 분야에서 후학들이 선배의 성가를 기리는 작품집을 묶는 경우는 많지만 문단에서 선배작가의 갑년을 축하하는 책을 낸 경우는 유례가 없다.

이씨는 서울 평창동 작업실 겸 거처에서 마르티스 종인 애견 「투투」와 함께 산다. 후배들이 찾아오면 그는 커피도 끓여주고 빵에 버터를 발라 구워 주기도 하고 같이 포커도 하면서 예술적 감수성을 함께 「세례」해 준다.

그 후배들, 김채원 구효서 윤대녕 김이태 성석제 조경란 문상원씨가 단편소설, 최승호 김혜순 남진우 김경미 황인숙 장석남 허수경 조은 김기택 이진명씨가 신작 시, 시인 김정환 이문재 신현림, 소설가 최성각 김형경씨가 산문을 각각 썼다. 문학평론가 김준오 권오룡 서정기씨는 작품론을 기고했다.

제목 「질주」는 김채원씨의 글에서 땄다. 「그는 깊은 고요 속으로 질주해 들어가고 있었다. 점점 심화되어 가는,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나 어떻게든 붙들고 있는 그 무엇, 세상에 내보이든 내보이지 않든 진정한 그 어떤 것과 맞붙어 보는 고요」. 윤대녕씨는 소설 「사막의 거리, 바다의 거리」에서 이렇게 이씨를 쓰고 있다. 「그를 생각하면 어김 없이 푸른 물이 목까지 차 오른다. 신새벽에 트럼펫 소리를 듣고 깨어났을 때처럼… 미색지 안에서 그는 원색4도의 말간 얼굴로 웃고 있다. 오늘 나 어디로 가랴」.

이씨는 최근 활동이 활발해졌다. 매킨토시7600 기종을 들여놓고 컴퓨터로 그림을 그린다. 최근 출간된 김채원씨의 소설 「달의 강」 삽화를 그렇게 그려서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 70여점의 삽화를 곁들인 자신의 신작 그림소설 「뻐꾹아씨, 뻐꾹귀신」도 곧 출간한다. 한 7년여 쓰지 않던 소설작업도 재개, 계간 「문학동네」 여름호부터 장편 「모래틈」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이씨는 전집에 수록될 새 장편 「선생님」을 예술가로서의 삶을 결산하는 작품으로 구상하고 있는 듯했다. 『일제시대 말에 태어난 주인공이 평생 생의 스승을 찾아 헤매는 이야기입니다』

가끔 후배 작가들의 작품집 표지화를 그려주는 일을 그는 스스로 「접장질」이라고 부른다. 그는 사실 티 내지 않는, 「옹립받지 못한」 우리 문단의 「접장」이다. 작품집 「초식」(73년)으로 한국 단행본 소설 출간의 사실상 효시가 됐던 것이 그렇고, 문학상 수상을 거부해 충격을 던졌던 것도 그렇고, 유행이나 시대상황과는 무관한듯해 보이는 작품들을 써 오면서도 언제나 후배 문인들의 영감의 원천이 되었던 것이 그렇다. 「모두들 겨우 당대의 꽁무니만 쫓으면서, 허덕이면서 죽어가고 있어…」(「유자약전」중에서) 라고 그가 묘사한 그런 세상에서 말이다.<하종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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