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에 생존해 있는 일본군 군대위안부 「훈」할머니가 한국에 온다. 반세기만의 귀국은 일본군 군대위안부문제에 대한 우리의 짧은 인식을 다시 한번 생각케 한다. 훈할머니의 생존사실이 밝혀진 후 여론은 뜨겁게 달아올랐었다. 그러나 김모씨 가족과의 유전자감식 결과 혈연이 아님이 드러나자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싸늘하게 식어버렸다.훈할머니의 문제는 이산가족 찾기와는 차원이 다르다. 가족이 밝혀지지 않았다고 외면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가족문제가 어떠하든 훈할머니가 한국인 위안부란 사실이다. 혈연을 찾을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지만 우리의 관심은 이 점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훈할머니는 모국어는 물론 이름 고향까지도 잊어버렸다. 이 때문에 한국인이 아니라고 의심할 수도 있으나 모든 정황을 차분히 짚어보면 한국인이란 결론에 도달한다. 그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일본인 다다쿠마(지웅력)씨의 증언이나 그가 부르는 아리랑만으로도 한국인임을 금방 알 수 있다.
한국인임이 확실한 이상 그가 기억을 되살리도록 돕는 일이 지금부터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이는 정부와 국민의 따뜻한 배려없이는 불가능하다. 이것은 군대위안부에 대한 일본군의 만행을 규명하기 위해서 꼭 필요하다. 이러한 점에서도 그의 귀국이 갖는 뜻을 음미해야 한다.
군대위안부는 훈할머니 등의 개인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민족이 겪은 굴욕과 아픔의 상징이다. 이의 해결없는 전후청산은 생각할 수 없다. 일본정부가 위안부 강제동원에 관여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위안부문제에 대한 「반짝 관심」만으론 일본의 뻔뻔스러운 장벽을 넘을 수 없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아픔을 어루만져 주고 꾸준히 관심을 갖는 것이 위안부문제 해결의 첩경이다. 아직도 할머니들은 우리의 관심 밖에서 인고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훈할머니의 귀국을 따뜻하게 맞이하는 것은 위안부문제에 대한 이같은 우리의 인식을 새롭게 한다는 점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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