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세 카레이스키가 평생을 간직한 필사본 시집 한권92세의 카레이스키가 평생을 간직해 온 시집 한 권이 발견됐다.
박영희(여·92)씨. 러시아 이름 「박 지나이다」. 연해주 프리모르스크크라이에 사는 그는 지난 2월 빙판길에서 미끄러져 중상을 입은 뒤 모스크바에 사는 손녀들에게 미리 유품을 남겼다. 「러·일어 사전」 한 권과 시집 한 권이 그 전부.
빨간 표지의 노트 한 권으로 된 박씨의 시집에는 1930년대 전후 시인들의 시와, 자작시 등 191편이 필사돼 있다. 모두가 펜에 잉크를 묻혀가며 정성스럽게 필사한 시들이다. 박씨는 함북 청진 출생으로 일제때 어머니 최화숙씨(74년 작고) 등 가족과 연해주로 이주했다. 일제의 폭압을 피해 조국을 떠날 수 밖에 없었던 당시 한 문학소녀의 감성이 글자 한 자 한 자마다 느껴지는 듯하다.
이 시집은 러시아에서 하이테크 기술정보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김응수(41·서울이데아 대표)씨가 입수했다. 올 4월 모스크바 방문시 현재 러시아 중앙우주항공유체역학연구소 이사인 스타니슬라브 김 박사의 저녁식사 초대를 받았을 때 우연히 김박사의 어머니인 박씨의 이야기를 들은 것. 국문학을 전공한 김씨는 『시집을 들춰보았을 때 처음 대하는 김소월의 시 등 꼼꼼히 필사한 시들에서 카레이스키들의 고난과 역경의 한숨소리와 박 할머니의 생애가 그대로 와 닿는듯했다』고 말했다.
특히 시집에는 김소월 김동환 등을 비롯, 당시 활약하던 문인들의 널리 알려진 작품은 물론 일부는 미공개 작품으로 추정되는 것들도 포함돼 있어 사료적 가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달빛은 밝고 귀뜨람이 울 때는/ 우둑허니 멋없이 잡고 서엇던 그대를/ 생각하는 밤이어, 오오 온흘 밤/ 그대 찾아다리고 서울로 나가나?」. 김씨에 따르면 「월색」이라는 제목의 이 시는 김소월의 작품으로 필사돼 있으나 현재 나와있는 소월의 시집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것. 김씨는 국내 대학 관계자에게 이 시집 수록 작품들의 검토를 의뢰해 놓고 있다.<하종오 기자>하종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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