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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농사를 가르쳐준 사람들/김병모 한양대 교수(아침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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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농사를 가르쳐준 사람들/김병모 한양대 교수(아침을 열며)

입력
1997.07.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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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철이다. 도시에서는 축대가 무너지고 농촌에서는 논밭이 떠내려가 근심이 많다. 그러나 장마와 홍수는 우리 민족이 매년 겪는 일이다. 옛 말에 논 몇마지기 떠내려 가면 풍년이 든다고 하였다. 비가 많이 오면 천수답에도 물이 고이기 때문이다. 우리 농토 중에서 천수답이 차지하는 면적은 미미하지만 천수답이 물난리를 막아 주는 역할을 경제수치로 보면 경기도의 일반회계 예산인 3조원과 맞먹는다고 한다. 논에다 물을 가두어 잡초를 못 자라게 하는 논농사 기술은 어디서 배운 것일까.흉년이 들어 쌀이 모자라면 민심이 흉흉해 지는 게 우리의 정서이다. 북한도 쌀농사만 잘 된다면 지금처럼 국제적 수모를 겪지 않아도 될 것이다. 세계에서 쌀을 주식으로 하고 있는 인구가 50%를 넘은지 오래되었다. 그 이유는 쌀이 맛이 있는 반면에, 그 맛에 중독성이 있어서 한번 먹기 시작한 사람은 좀처럼 쌀맛을 잊을수가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 민족이 쌀맛을 알게 된 것은 3,000년전 청동기시대 부터이다. 쌀은 몽골 지방이나 시베리아에서는 재배되지 않는 열대성 작물이다. 한반도는 쌀농사를 하기에 매우 어려운 환경 조건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도 쌀 농사를 고집하고 있는 이유는 쌀의 독특한 맛과 경제적인 고소출성때문이리라. 한국인의 언어는 시베리아 계통의 알타이 말이고, 신라 왕족들도 시베리아의 샤만(무당)들 같은 복장을 하고 살았지만 그들의 후손인 우리들의 입맛은 오로지 쌀뿐이다. 왜 그럴까.

고고학적으로 보면 우리 나라에 수 만개나 남아 있는 고인돌 풍습은 동남아시아에서 크게 유행한 매장습관이고 그 지역 사람들은 우리 조상들처럼 왕이나 씨족의 조상이 알에서 태어났다는 난생신화를 믿고 살아왔다. 우리에게 쌀농사 기술을 가르쳐 준 사람은 누구였을까. 쌀 농사의 고향 사람들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쌀 농사의 고향은 어디인가. 열대지방이다. 기나긴 역사의 시간 동안에 우리 민족의 조상들과 동남아 사람들이 경제방식과 문화 의식에서 공통점을 지닌 채 살아왔다면 그들과 우리 조상들과는 어디선가의 만남이 있었을 것이다.

한반도에 도착하는 태풍은 필리핀에서 출발한다. 지구의 자전 현상 때문에 생겨난 「흑조」라는 해류가 북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흑조는 역류하지 않는다. 그 해류의 이동방향으로 플랑크톤이 이동하고 그 뒤를 따라 모든 먹이사슬이 이동한다. 인간은 그 먹이사슬 뒤끝에 선 존재이다. 그런 먹이사슬의 이동이 수만년간 계속되었다. 조선시대에 제주도에 표착한 네덜란드인 하멜도 그 해류를 타고 왔으며 베트남 전쟁후 쪽배를 탄 피난민들도 그 해류를 타고 한국에 도착하였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23만명의 외국인 근로자가 있다. 그들의 고향은 쌀농사 지역인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지이다. 우리는 그 사람들을 손님으로 대접하고 있지 못하다. 이유는 기술력, 노동력이 떨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보다 사실상의 이유는 아마도 한국인의 못된 배타성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우월한 민족이고 우리보다 일시적으로 못사는 사람들은 열등한 민족이라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우리는 벌써 우리의 형들과 누이들이 독일에 가서 광원으로, 간호원으로 일한 사실을 잊었단 말인가. 우리는 그때 열등한 민족이었나.

역사를 돌이켜보면 배타적 민족주의로 주변의 나라들을 상대한 영국, 독일, 일본은 그들의 꿈만큼 큰 나라를 이루지 못하였다. 반면에 주변 민족과 국가들의 언어와 풍습을 존중했던 그리스나 로마는 큰 꿈을 이루었다. 그것이 바로 「팍스 로마나」이고 그 전통을 이어가려는 것이 「팍스 아메리카나」이다.

이 장마 동안에 우리 나라에 와 있는 손님들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다.<문화인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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