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경제 바닥속 군만 기능유지/일부선 연착륙회의론 서서히 고개8일로 김일성 3년상이 끝난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북한을 이끌어온 김정일은 국가주석과 조선노동당 총비석직을 모두 공석으로 두었다. 유훈통치라는 이름아래 「호주」없이 굴러온 북한의 지난 3년과 앞으로의 진로를 조망해 본다.<편집자 주>편집자>
유훈통치 3년을 맞은 북한의 현주소는 총체적 위기 상황이다. 주민들은 항일투쟁식의 「고난의 행군」을 강요받고 있으며 서방 정보기관들은 북한의 「연착륙」가능성에 회의적인 시각을 갖기 시작했다.
▷정치◁
최고통치자가 공석인 기형체제이다. 김정일은 군 최고사령관과 국방위원회 위원장이라는 군사직책만 갖고 통치를 하고 있다. 북한 외교관들이 죽은 김일성 명의의 신임장을 제출하는가 하면 북한의 정책결정자들이 누구인지 공개되지 않고 있다. 95년에 열렸어야 할 최고인민회의(국회)가 아직까지 열리지 않았고 당의 모든 사업을 조직·지도하는 당 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은 김일성과 오진우의 사망으로 김정일 한명 뿐이다. 정책결정이 조직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관측이 강하다.
▷경제◁
90년 이후 각종 경제지표는 밑바닥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93년 제3차 7개년 경제개발계획이 마무리된 뒤 새로운 개발계획이 추진되지 못한 채 4년째 기약없는 「완충기」가 계속되고 있다. 제철 등 주요 기간산업의 가동률이 30% 아래 머물고 있으며 북한당국은 유엔 분담금을 줄이기 위해 통계수치를 하향, 조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같은 식량·경제난은 구걸외교와 밀수·위조지폐 제조 등 범죄행위로 이어졌다.
▷군사◁
김정일 체제의 근간이라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기능이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100만 정규군 병력과 10만 특수전 병력이 유지되고 있으며 1년 군사비로 50억달러 이상이 투입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사정 1,000㎞ 이상의 「노동호」 「대포동호」미사일이 개발돼 위협이 되고 있다.
▷사회·주민생활◁
무직자가 대량으로 양산되고 민심이반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어린이와 노약자들이 가족과 정부의 방치속에 숨져가는 참상이 귀순자 등을 통해 전해지고 있다. 전력난으로 야간활동이 전국적으로 불가능 해졌다. 탈북자가 늘어나고 있으며 황장엽씨 같은 거물급에 김경호씨 일가 17명 등 범위가 다양해져 대량난민 발생과 북한 공동화 상황마저 우려되고 있다. 북한은 사회통제를 갈수록 강화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은 이를위해 주체사상을 붉은기사상으로 대체해 가고 있다.<김병찬 기자>김병찬>
◎향후 대외정책/대미외교에 역량집중 예상
김일성 3년상 뒤에도 김정일정권의 대외정책 기조는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관측된다. 북한은 특히 식량난 등 경제난 타개의 열쇠를 미국이 쥐고 있다고 보기 때문에 대미접촉에 외교역량을 집중시킬 것으로 보인다. 경수로건설과 관련한 합의이행과 미사일회담 등으로 북·미간의 독립적인 대화채널을 확보, 이를 통해 식량지원과 경제제재 완화조치 등을 얻어 내려 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또 남한을 배제시킨채 미·일과의 관계개선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인정, 남한과의 대화에도 신축성을 보일 가능성이 있다. 북한이 「3+1방식」 「선 식량지원보장」 등을 내세워 1년2개월여 동안 끌어왔던 4자회담을 사실상 수락한 것도 「남한 배제전략」의 한계를 인식했음을 말해 주는 대목이다. 한 대북 전문가는 『북한이 미국과의 관계개선이 남한과의 대화없이 불가능 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시작한 것 같다』며 『그러나 북한이 남한을 대화 상대로 인정했다기 보다는 미국과의 관계개선 때문에 불가피한 선택을 했다고 봐야한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해서 북한이 긴장조성 등 모험주의 노선을 택할 가능성은 별로 없다는게 지배적인 견해이다. 북한은 식량난 해결을 위해서도 국제사회의 인도적 지원이 계속 필요하다. 따라서 북한은 4자회담 등을 통해 「평화체제수립」을 매개로한 「실리외교」에 전념할 것으로 보인다.
같은 맥락에서 일본과의 수교협상에도 보다 적극적인 자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일본과의 수교협상재개에는 여중생납치사건의 해결 등 현안이 가로 놓여 있다.<권혁범 기자>권혁범>
◎권력 세대교체/원로들 잇단 사망/신진세력 급속 부상
김일성사후 3년간 많은 혁명 1세대들이 정확한 사인 발표도 없이 「지병」내지 「불치병」으로 그의 뒤를 이었다. 이들이 2∼3월, 7∼9월 등 환절기와 김일성 기일 무렵에 잇따라 사망하는 경우가 많은 점도 특이하다.
한편 김정일을 주축으로 한 신진세력들은 급격히 권력핵심부로 부상, 세대교체를 이뤄가고 있다. 현재 당·군·정의 「얼굴」들은 살아있는 구세대들이지만 실제 권력의 무게중심은 혁명유가족이나 김정일의 친인척, 또는 김일성종합대 동창 등 신진세대로 옮아갔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군에서는 인민무력부장 오진우(95년 2월), 대장 손종준(95년 3월), 인민무력부 부부장 김봉률(95년 7월), 대장 태병렬(97년 2월), 인민무력부장 최광(97년 2월), 인민무력부 1부부장 김광진(97년 2월) 등이 죽었다. 대신 인민무력부 총정치국장 조명록, 군총참모장 김영춘, 인민무력부 1부부장 김일철, 해군 상장 김윤심 등이 군권의 중심부에 진입했다. 그러나 이을설 호위사령관 등 원로들의 영향력은 살아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당·행정 분야에서는 부총리 강희원(94년 10월), 황남도당책 백범수(95년 9월), 최고인민회의부의장 여연구(96년 9월), 당중앙검사위원장 이낙빈(97년 4월) 등이 세상을 떠났다. 당에서는 김정일 부동의 오른팔로 평가 받고 있는 매제 장성택(조직지도부 1부부장)을 비롯, 김정일의 홍위병 역할을 할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1비서 최용해, 전시체제에서 최고사령부로 개편되는 당 중앙군사위원회군사위원 이용철, 과학공업 담당 출신의 당 중앙위원회 위원 박송봉 등이 김일성 사후 두각을 나타낸 차세대 실세들이다.<김병찬 기자>김병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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