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새 TV채널인 「TV센터」가 최근 북한의 김일성 사망 3주기를 앞두고 김일성-김정일 체제를 비판하는 특집 기획물을 제작, 방영했다. 첫회분 「붉은 김일성」은 지난달 29일 모스크바 주변의 안방 시청자들에게 전달됐고 김정일편은 6일 방영됐다. 이 기획물은 러시아 주간지 「노보예 브레미야」(신시대)와 일간지 「이즈베스티야」를 거친 중견 언론인 레오니드 믈레친 TV센터 해설위원의 각고의 노력이 낳은 결정물이다. 2년전부터 이를 준비해 온 그의 노력으로 이미 타계한 미하일 카피차 전 소련 외무차관의 김일성 부자에 대한 육성평가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들을 수 있었다.믈레친 해설위원은 김일성 왕조의 허구를 파헤친 이 작품에 대한 내외의 평가가 크게 신경 쓰이는 듯 했다. 러시아주재 북한대사관측은 예상했던 대로 방영중지를 요구하는 등 거세게 반발하고 나섰다.
이런 상황에서 주러 한국대사관은 이 기획물을 알리는 과정에서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러시아대사관 공보원이 「붉은 김일성」의 방영을 앞두고 특파원들에게 돌린 보도자료에는 「당관 공보원과 센터TV의 레오니드 믈레친 해설위원은 …(중략)김부자를 비판하는 해설 특집 프로그램을 다음과 같이 방영합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공보원이 이 기획물을 제작, 방영한 것처럼 돼있다. 이 문건이 외부로 공개됐을 경우, 「한국정부가 러시아 방송기자를 매수해 북한을 음해하는 공작을 펼쳤다」면서 북한측이 역선전에 나설 수 있는 결정적인 빌미를 제공할 뻔했다. 그것도 북한측이 한 일간지의 사설때문에 독이 올라있는 때에.
한심스러운 것은 공보원측이 이 기획물의 제작과정에 전혀 간여하지 않았음에도 마치 「한건」한 듯이 언론에 생색을 내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국가의 대외홍보 일선에서 활동하는 관리들은 이처럼 생색내기에 급급하다가는 자칫 국가망신을 시킬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모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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