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병기 이화여대 국악과 교수/외세활용배격 통일방법 이견/격론불구 상호존중 성숙함 보여남북문제에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지 못한 평범한 시민이자 음악가의 한 사람으로 「한반도평화와 화합을 위한 모임」을 주제로한 제2차 남북학술회의에 참석해 남북학자들의 토론현장에서 배우고 느낀 점이 적지 않았다. 누구나 알듯이 아직도 남과 북이 접촉하고 대화하는 모임을 갖는다는 것 자체가 아주 어렵다. 이번 모임도 오랜 기간 힘든 과정을 거쳐서 나라 밖 베이징(북경)에서 간신히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참가자들은 거의가 남북접촉에 경험이 있는데다가 서로 구면인 사람들도 있어서 회의 전에 인사를 나눌 때부터 서먹하지 않고 화기가 감돌았다. 본 회의와 토론에서도 상호간에 납득하기 어렵고 껄끄러운 말이 나와도 이를 되도록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유연하게 받아들였다. 그동안 세월이 지나고 경험이 쌓이면서 그런대로 남북학자들의 토론방식이 성숙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과 북의 학자들은 통일문제를 생각하는 방법에서부터 차이점을 드러냈다. 예를 들면 북측은 남북간의 신뢰나 화합에는 별 관심이 없고 대뜸 통일에 초점을 맞추어 얘기를 했다. 우리민족에 평화가 통일의 절대요건일 뿐 아니라 통일에 의해서만 진정한 평화가 보장되기 때문에 양자를 따로 보지말고 하나로 결부시켜서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일성 주석이 『통일은 화합과 단합을 하면 된다』고 이미 말했는데 왜 평화니 교류니 하면서 통일을 어렵게 생각하느냐는 것이다.
남측의 견해는 개인적인 차이가 있었지만 대체로 남북간의 화해와 교류를 통해 쉬운 것부터 차츰 통일을 준비해야 된다는 공통점을 보여주었다.
북측이 가장 강조한 점은 외세를 배격하고 민족의 자주성을 확보해야만 진정한 평화통일을 이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남측은 자주성이 아무리 중요해도 국제환경을 무시할 수 없고 경제적 힘이 뒤따라야 한다고 했다. 또한 외세는 배격만이 능사가 아니라 이를 활용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남측이 유달리 강조한 점은 북의 개방과 개혁이었다. 그러나 북은 『우리식 사회주의를 잘 하고 있으니 크게 걱정하지 말라』고 못박았다.
남북의 이견이 좁혀지지 않고 때로 격론이 벌어졌지만 감정적인 대립은 전혀 없었다. 휴식시간에는 차를 들면서 환한 얼굴로 담소했다. 회의를 마치고 식사를 할 때는 통일에 관한 모든 주장을 접어 둔 채 서울의 여느 음식점에 모인 친구들처럼 떠들어대고 흥겨워했다. 마지막날 밤늦게까지 아리랑식당에서 술을 마시고 헤어질 때 서로 다시 만나자고 다짐을 했지만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나는 이 학술회의에 참석하고 나서 입춘 후 아직도 얼어붙은 어느날 문득 깨닫는 초봄의 낌새처럼 통일의 봄기운을 느꼈다.
◎신정현 경희대 행정대학원장/비공식 접촉서 서로 입장 더 이해/“민간모임 더 자주 갖자” 양측 공감
이틀간 베이징에서 열린 남북모임에 참가한 필자는 두가지 특별한 감회를 느꼈다. 우선 홍콩반환의 역사적 현장을 목격하면서 새로운 세계사의 시작을 감지했다. 반면 분단 반세기의 고통을 극복하지 못한 채 오늘에 이른 우리민족의 처지가 필자에게는 매우 왜소한 모습으로 비쳐졌다. 그러나 통일의 기회를 모색하려는 시도로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민간차원에서 남북한학자들이 모여 회의를 가진 것은 뜻깊은 일이다. 황장엽사건 등으로 경색된 남북관계를 생각해보면 이번 「베이징회의」가 갖는 의미는 적지않다.
「한반도 평화와 화합을 위한 모임」을 주제로 한 회의에서 논의된 내용들 중에는 민족의 자주성, 한반도 주변정세, 쌍방간 정상회담개최, 남북한 정세협력, 북한의 개혁과 개방, 이산가족재회, 한반도 군사정세, 4자회담개최, 예술과 체육분야의 교류등 다양한 문제점들이 포함되었다. 이런 문제점들에 대한 양측의 입장에는 부분적으로 공통점도 있었지만 상당부분에서 많은 차이점들이 발견됐다. 평화와 통일을 민족자주성에 입각해서 실현해야 한다는 점에서 양측은 공감할 수 있었지만 그러한 과제들에 대한 인식과 실천방법에 있어서는 서로 다른 견해들이 제기되었다. 남측 참가자들은 평화와 통일을 연장선상에서 이해하고 구체적으로 쌍방간 신뢰구축 및 대화와 교류를 통해 실현하자는 견해들을 제시했다. 반면 북측 참가자들은 평화는 어디까지나 통일을 위한 수단임을 강조하고 한반도평화를 위해서는 외세가 배격되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시종일관했다. 그러나 북측주장들 중에 북한은 본래 개혁과 개방을 반대하지만 나진·선봉의 개방조치를 취했음에도 외세의 비협조로 그 성과가 부진하다는 견해표명은 주목할 만했다. 북측이 여전히 「반외세 평화통일」을 내세운 반면 우리측은 실질적인 교류와 협력을 통한 통일접근을 제시한 것은 쌍방간에 넘어야 할 벽이 높게 남아있음을 입증해 주었다.
양측의 참가자들은 공식적인 회의보다는 비공식적 접촉과 대화를 통해 서로의 입장을 드러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모든 참가자들이 같은 민족구성원들로서 민족적 정체성을 다시 찾아보려는 태도를 견지한 것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보다 더 본질문제들에 대한 진지한 토의가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그러나 경직된 분단구조 속에서 양측의 학자들이 만났다는 것 자체가 이번 회의의 큰 성과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남북이 다 같이 이번 회의와 같은 민간차원의 모임을 자주 가져야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도 또 다른 성과일 수 있다. 다만 평화와 통일이 감정만으로는 실현되기 어렵다는 것을 다 같이 인식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마지막날 만찬을 끝내고 늦은 시각에 「회자정리」의 섭섭함을 보이는 양측의 참가자들 모습에서 필자는 왜 우리는 지금까지 반세기를 분단 속에서 살아야 했는가를 새삼 자문해 보았다.
◎이영선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통일·개방문제 타협여지 느껴져/예체능학자 참석 교류물꼬 기대
경제학을 공부하면서 평소 통일에 관심을 지녔던 나는 남북의 학자들이 주로 정치 문제를 다루게 될 「평화와 화합을 위한 모임」에 큰 기대를 가지고 참석했다. 지금까지 주로 경제문제를 다루는 북한 학자들을 만나왔던 나로서는 보다 첨예하게 대립할 수 있는 정치문제를 가지고 남북의 학자들이 어떤 내용과 형식 그리고 어떤 감정으로 서로 대화하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바대로 정치문제에 대한 대화는 쉽사리 「평화와 화합」에 이르지 못했다. 북측은 남측에 평화와 화합을 위해 사대주의를 벗어버리고 외세를 물리칠 것을 강력하게 요구했고, 남측은 외세는 필요에 따라 활용될 수 있는 것이라고 응수했다.
남측은 북측에 개혁과 개방을 요구하였지만 북측은 단호하게 개혁과 개방은 있을 수 없음을 밝혔다. 이는 소위 「우리식 사회주의」에 의거하여 살아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 볼 수 있다.
다행히도 모든 면에서 차이와 갈등만을 보인 것은 아니었다.남북이 합의한 7·4공동성명과 기본합의서의 기본정신을 되찾자는 것과 평화와 화합을 위해 양측의 민간인들의 역할을 확대하고 상호간의 교류를 지속하자는 데에는 일치를 보였다.
남측은 외세에서 벗어나겠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통일이 이루어져 평화가 도래한다면 외세는 필요없게 될 것이라는 점을 인정했다. 북측은 개혁과 개방을 표방하지는 않았지만 조금씩 경제회복을 위해 노력해 가고있음을 밝혔다. 이 역시 서로 타협의 실마리를 마련해 둔 것으로 긍정적 측면이라고 하겠다.
그럼에도 아직도 「평화와 화합」을 위해 가야할 길이 멀다는 느낌을 버릴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정치적으로 크고 중요한 문제들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들은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풀어 나가야 할 것이다. 갈등과 대결속에서도 대화와 타협을 통해 작지만 소중한 일들을 하나씩 실행해 나가는 자세가 필요할 것같다. 경제교류와 이산가족의 교류 그리고 다양한 문화교류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기에 이번 회의에 남측의 정치학자뿐만 아니라 경제학자, 미술인, 음악인, 체육인이 함께 참여했다는 데에서 큰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첫날 회의장에 들어서자 나는 작은 것에서조차 화합을 이루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고 불편함을 느꼈다. 북측 인사들의 명찰과 명패는 한글로 쓰여져 있는 반면 남측 인사들의 이름은 한문으로 쓰여져 있었다. 둘쨋날 저녁 북측이 경영하는 식당에서 평양으로부터 온 한 여종업원이 한문으로 쓰인 내 명찰을 읽지 못하는 것을 보고 통일을 위해 우리가 해야할 일이 너무도 많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안인해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홍콩반환분단현실 비교돼 감회/‘사심없는 협조’ 위한 인식전환을
베이징(북경)에서 맞은 6월30일은 개인사와 세계사에 있어서 매우 뜻깊은 사건들이 함께 한 순간이었다. 개인적으로는 남측과 북측학자들로부터 생일축하를 받아 「통일교수」로 불리었다. 세계인들의 관심을 끈 홍콩 반환을 자축하는 중국인들을 목격한 것도 중국 연구자로서는 여간 의미있는 일이 아니었다. 「민족은 하나다」를 강조하는 북측학자들의 주장은 홍콩 뿐만 아니라 마카오와 대만도 통일함으로써 민족성을 완전히 되찾겠다는 중국인들의 염원에 비교되어 가슴에 와 닿았다. 아직 분단의 벽을 넘지못하고 상호불신과 경계를 풀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이 자못 안타깝기만 했다. 하지만 민족의 화합과 단합을 어떻게 이룰지 허심탄회하게 토론하는 자리가 마련됐다는 점이 퍽 다행스러웠다. 이번 회의에서 느낀 점을 세가지로 요약해보고 싶다.
첫째 남과 북이 같은 단어를 쓰고 있지만 그 용어가 내포하고 있는 해석상의 의미에 엄청난 차이점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면 개혁에 대한 논의다. 중국의 경우 개혁은 두가지 의미로 나누어 「체제내개혁」과 「체제외개혁」으로 구분된다. 「체제내개혁」은 이념과 제도를 답습하되 그 체제의 효율성을 증진시켜 경제발전을 위한 개선책을 지속적으로 모색하는 것이다. 「체제외 개혁」은 변혁의 의미로 보다 혁신적인 체제전환을 통해 구조적 조정을 이룩하는 것이다. 남측 학자들은 북측의 경제난 타개를 위해서는 좀더 적극적인 「체제내개혁」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제시한 반면, 북측에서는 이를 「체제외개혁」을 요구하는 것으로 받아들여 흡수통일 의도로 경계하면서 강한 거부감을 표시했다.
둘째 북측이 개방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주목해야 한다는 점이다. 북측에서는 나진·선봉지역을 특구로 설정해 놓았지만 정치적인 문제 때문에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푸념을 늘어놓았다. 그러나 남측의 축적된 경험을 이용하는 것이 북측의 사회간접시설 건설과 경제발전에 반드시 필요할 수 있다는 점을 북측은 간과해서 안될 것이다.
셋째 자주와 외세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이미 남과 북은 7·4공동성명과 남북기본합의서에서 자주의 원칙에 동의한 바 있다. 그러나 동북아에서 주변 4국의 역학관계에 따른 신질서재편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자주를 지키기 위해 주변국을 활용하는 지혜를 함께 모색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남과 북이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다 해도 상대방이 이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지 않고 경계하면 불신은 깊어지고 신뢰회복의 길은 점점 멀어지게 된다. 이제 남측과 북측은 상호체제를 인정하고 「사심없는 협조」를 위한 인식의 전환을 꾀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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