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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차별은 피차에 해롭다/특히 운전중엔…/성석제(남자가 본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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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차별은 피차에 해롭다/특히 운전중엔…/성석제(남자가 본 여자)

입력
1997.07.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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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가 여성에 대해 다채롭고 교묘한 방법으로 차별을 계속해왔음은 주지의 사실이고, 아직까지도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억울한 일을 당하고 참아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을 것이다. 반면에 그런 사실을 알고 있는 남성이라는 이유로 여성의 부당한 행동을 참고 견뎌야 할 때도 있다.중부고속도로에서 내가 겪은 일이 그렇다. 경부고속도로에서 중부고속도로로 진입하자마자 곧 중부고속도로가 경부고속도로와 제한속도가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려는 듯, 저마다 속력을 뽐내기 시작했다. 나는 앞서가는 차를 따라 시속 1××㎞의(××라고 한 것은 속도광들의 경쟁심을 자극하지 않기 위한 것임)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이럴 때 앞차와는 ‘1××’m의 간격을 두는 게 상식이다. 그런데 내 바로 뒤에서 따라오는 차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나와 같은 차종이었으나, 나와는 달리 날렵한 흰색에 역시 나와는 달리 깨끗이 세차를 한 그 차는, 내 지저분한 차의 엉덩이에 입이라도 맞추고 싶다는 듯 바싹 붙어서 무려 시속 1××㎞로 달려오고 있었다. 나는 그 차의 운전자가 카 레이서거나 카 레이서 출신의 건달이거나 카레이서가 되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운전실력을 배양하는 청년인 줄 짐작하고 차선을 주행선으로 바꾸었다. 당연히 그 차는 1××㎞ 이상의 속도로 나를 추월해 나갔는데 그 때 나는 그 차의 열린 차창으로 기나긴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아리따운 처녀 두 사람이 타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 그 순간, 내 머리 속에는 「흠. 저 처녀들이 평소에 얼마나 여성 차별적 남성 운전자들에게 시달림을 받았을까. 오늘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풀려고 나왔구나」하고 이해했다.

그러나 그 차는 곧, 제한 속도를 지키며 달려가는 화물트럭에 막혀 속도를 줄여야 했다. 문제는 그 다음. 그 처녀들은 이해심 덩어리인 내가 보기에도 좀 심하다 할 만큼 오랜 시간동안 하이빔을 비추고 경적을 울려가며 계속해서 스트레스를 풀었다. 그러다 안되겠던지 주행선으로 나오려는 듯 움찔움찔 핸들을 틀었다 말았다 했다. 나는 내 바보 같은 차가 바로 옆에 붙어 있으니 조금 있다가 나오라는 뜻으로 하이빔을 살짝 켰다 껐는데 그게 그 처녀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성차별적 행동으로 보였던가 보다. 그들은 맛 좀 보라는 듯 내가 달리던 주행선으로 차를 확 꺾었다. 나는 원치 않는 입맞춤을 모면하기 위해, 그것보다는 살기 위해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갓길로 뛰쳐나가야 했다. 하얀 팔을 흔들며 멀어져가는 그 차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나는 한 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성차별은 피차에게 모두 해롭다」<소설가>

성석제씨는 「재미나는 인생」 「아빠 아빠, 오 불쌍한 우리 아빠」 등을 펴낸 소설가이자 시인이다. 60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지금은 경기 군포시 산본의 아파트에서 어머니와 아내 아들 딸과 살고 있다. 운전경력은 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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