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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현양을 기억하세요?/김한중 연세대 의대 교수(아침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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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현양을 기억하세요?/김한중 연세대 의대 교수(아침을 열며)

입력
1997.07.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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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여기 더 있으면 안될까요』 『총각들 많으니까 밖에 나가면 데이트 할래요』 『제가 나이가 어려서 아저씨들하고 데이트는 안되겠네요』삼풍백화점 붕괴후 13일동안 버티다 구조된 유지환양이 구조대원에게 건넨 농담이다. 아직도 기억나는 웃음 반 놀라움 반. 죽은 이의 「차디찬 몸」을 만져본 사람이라면 따스한 체온이 느껴진다는 것, 맥박이 뛰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를 안다. 그래서 미소지을 수 있다는 것, 농담 한마디 건넬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를 안다.

지난달 29일은 삼풍백화점 붕괴사고가 일어난 지 2년이 되는 날이었다. 삼풍사고는 성수대교 붕괴와 더불어 우리 평생 경험한 사고 중에 가장 어이없는, 가장 참담한 사고였다. 그러나 이제 삼풍사고는 매몰사고 사상 가장 긴 생존시간을 기록하며 사람이 갖고 있는 「놀라운 생명력」을 일깨워 주었을 뿐, 수많은 희생자와 그 가족을 남긴채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 가고 있다. 그나마 한해니 두해니 하는 이런 되새김마저 없다면 아마도 영영 잊혀진 사건이 될지도 모른다.

돌이켜 보면 삼풍사고만큼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여러가지 문제점을 극명하게 드러낸 사고도 많지 않다. 그간 빠른 속도로 경제발전은 해왔으되 발전의 궁극적 목표인 「사람」을 잊어버리고 표피적 수치와 겉모습에 몰두해온 우리의 모습을 발가벗겨 놓았던 것이다. 빨리 잘 살아보자는 욕심에 눈멀어 무원칙 편법 부실을 용인하고 「생명 가치」를 무시해온 우리의 관행이 안전의식의 부재를 낳고 각종사고를 발생시켰던 것이다.

그러나 이 못지않게 중요한 삼풍사고의 교훈은 우리 사회가 자신의 문제를 객관적으로 평가해 우선 순위를 설정하고 이를 해결해 나가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매년 2만6,000명 이상이 불의의 사고로 죽어 암, 뇌혈관 질환에 이어 사망원인 3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사망자의 나이를 고려한 추정손실연수를 계산하면 사고의 영향은 나머지 5대 사망원인인 암, 뇌혈관질환, 심장병, 만성 간질환의 영향을 모두 합한 것보다도 더 크다. 이처럼 엄청난 문제를 도외시하고 우리 사회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겠다는 것이 도대체 말이 되는 이야기인지 모르겠다.

삼풍사고가 주는 또 다른 교훈은 우리 사회의 「집단망각증」이다. 우리 사회는 과연 스스로의 반성능력이 있는 것일까. 우리 사회는 왜 그렇게 과거의 큰 사건을 미래의 발전을 위한 기회로 연결시키지 못하는 것일까. 삼풍사고 발생 100일째 되는 시점에서 한 주간지가 국민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삼풍사고가 언제 발생했느냐」는 질문에 3개월 전이라고 정확히 대답한 응답자는 44.6%로 절반에 못미쳤으며,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의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 대한 보상문제가 어느 선까지 이루어졌느냐」는 질문에 대해 전혀 합의되지 않고 있다고 정확히 응답한 사람은 7.7%에 불과했다. 2년이 지난 지금 다시 조사할 필요는 없다. 아마 거의 잊었을테니까.

501명이 희생되고 937명이 다친 6월29일, 이날도 구룡들의 행진은 계속됐다. 용들은 어떤 가치를 갖고 있을까. 이 나라를 어떻게 만들겠다는 것인가. 삼풍사고를 일으킨 우리 사회의 고질병인 생명소홀, 객관적 문제인식의 결핍, 그리고 집단망각증에 걸려 있는 것은 아닌지.

새 아침을 열며, 하고 싶은 이야기는 새 생명의 품위를 지켜가고 있는 두 젊은이의 아름다운 모습이다. 지난 겨울 나는 안전을 주제로 열렸던 「열린 음악회」에서 2년전 국민들에게 뜨거운 감격을 안겨주었던 최명석군과 박승현양을 만났다. 두 젊은이는 주어진 새 생명을 상업화할 수 없다는 이유로 어려운 가정형편에도 불구하고 각종 상업광고 출연을 거부했었다. 근로복지공단 홍보실에서 근무하며 근로자를 위해 일할 기회를 갖게 된 것이 정말 기쁘다고 이야기하던 박승현양,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고 조용히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 최명석군에게서 우리의 밝은 미래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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