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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측 참석인사 4인의 참관기(제2차 남북학술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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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측 참석인사 4인의 참관기(제2차 남북학술회의)

입력
1997.07.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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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나” 짧은 만남 긴 여운짧은 만남후 긴 여운. 한국일보사 주관으로 6월30일과 7월1일 중국 베이징(북경)에서 열린 제2차 남북학술회의에 참석했던 각계 인사들은 자신들의 소감을 한마디로 이렇게 표현했다. 회의 참석자들은 북측에 걸었던 기대와 현실 그리고 희망과 가능성에 대해서 많은 것을 생각했다고 입을 모았다. 학술회의 참석자들의 참관기를 두번에 나누어 싣는다.

◎임용순 성균관대 정외과 교수/조직적 행사주관 이해증진 기여/개인간 접촉시간 부족엔 아쉬움

한국일보사로부터 북한 학자들과 학술회의를 갖자는 제의를 받고 베이징(북경)행 비행기를 탔을 때 마음이 약간 상기되기도 했다. 필자가 북한학자들을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러나 북한학자들을 만날 때면 항시 무엇인가 기대를 하게 된다. 조국의 통일을 항시 염두에 두고있기 때문이리라.

필자는 과거 수차례 북한학자들이 참여하는 학술회의에 참여했지만, 이번 회의가 가장 조직적이고 효과적으로 운영된 회의였다.

북한학자들과의 회담이 늘 그렇듯 그들이 주장하는 내용에는 별 변화가 없었다. 조국통일을 앞세우고 연방제 통일론의 당위성을 주장하기는 예나 이번 회담이나 마찬가지였다. 외세를 배제한 통일, 민족의 주체성을 확립, 평화정착 등 적어도 그들이 쓰는 용어상으로는 아무 변화도 느껴지지 않았다.

일반론의 차원에서 우리측 참가자들은 그들의 주장에 별로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문제는 평화체제의 유지나 통일의 세부적인 각론에서는 그들의 주장이 우리의 입장과 크게 다르다는데 있다. 북한측이 늘 자기들의 입장을 고집하면서 우리측이 북한의 입장에 동의한다는 인상을 유출하려고 애쓰는 모습도 변함이 없다.

과거의 회담과는 다른 점도 발견할 수 있었다. 북한측이 내거는 주장은 여전했으나 주장을 제기하는 방법이 전과는 달리 좀 유연성이 있었다. 북한측 참석자들은 감정적으로 자기들의 주장을 내세우는 것을 무척 삼가려는 모습을 보였다.

개인적인 접촉을 통해서 상호의 이해를 증진하는 노력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개인적인 접촉은 집단사고방식을 완화시키는데 도움이 되리라 본다.

이번 회담에서 특기할 것은 비교적 젊은 학자들이 많이 참여했다는 사실이다. 북한에서도 신구 학자들간의 세대교체가 이루어지고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인상을 받았다.

한국일보가 주관한 이번 행사는 훌륭히 이루어지기도 했지만 행사자체이상으로 남북의 이해를 돕는데 기여했다고 생각된다. 한반도의 평화정착을 위해서 이같은 회의가 자주 열렸으면 한다.

이같은 회의가 제3국에서 개최되기 보다는 서울이나 평양에서 개최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앞으로는 회의가 끝난 후 남북학자들이 개인적으로 접촉하고 자유로이 의사를 교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최측이 마련해 주었으면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결론적으로 이번 회의를 통해서 필자는 많은 생각을 하게되었고 또한 이같은 기회를 준 한국일보사에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최봉구 남북신뢰회복추진협의회장/역사적 소명의식에 토론은 진지/식사·만찬장선 분위기 화기애애

남북관계의 개선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에서 남북민간단체의 공동주최로 「한반도 평화와 화합을 위한 모임」이 열렸다는 사실자체만으로도 소기의 성과를 달성했다고 자부한다. 양측의 각계 전문가들이 참가한 가운데 열린 이번 회의는 기대이상의 신뢰를 구축했고 쌍방이 많은 공감대를 형성했다. 또 상호간 공통점을 발견하는 큰 성과를 거두고 연내에 평양 또는 서울에서 다시 회합을 갖기로 약속하고 헤어졌다.

이번 학술회의가 열리기까지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처음에는 학술회의를 3월에 갖기로 했었다. 하지만 실무회의단계에서 황장엽 망명사건이 터져 모임자체가 무산될 뻔한 위기도 있었다.

이번회의는 쌍방 참석자들의 폭넓은 이해와 신뢰를 바탕으로 알차고 생산적으로 진행됐다. 회의 전날 밤 늦게까지 북측이 남측 주제발표문의 용어에 신경을 곤두세워 곤란한 상황이 조성됐다. 그러나 북측은 회의가 시작되자 시종 진지하고 부드러운 자세를 취해 마지막 만찬까지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조성됐다.

남북관계의 개선은 상호간 이해와 신뢰의 바탕위에서 가능하다고 판단된다. 회의도중 남북 참가자들간에 용어해석차이로 사소한 오해가 있었지만 이해와 신뢰로 난관을 넘었다. 남측에서는 북측의 제도개선을 뜻하는 의미에서 「개혁」, 교류와 협력을 통해 발전한다는 의미로 「개방」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반면 북측은 남측이 주장하는 개혁과 개방을 각각 북한 현체제의 포기와 외세에 의한 북한사회의 붕괴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괴리감을 느끼게 했다.

북측 주최측을 대표한 장재철(조선종교인협의 회장)씨는 『이번 회의가 꼭 필요한 때 열렸다』며 『민간단체간의 만남이 확대돼 상호이해의 폭을 넓혀야 정부차원의 대화도 쉽게 이뤄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 회의를 통해 「우리는 하나다」라는 것을 절감했다. 민족의 운명을 결정하는 한반도 평화, 민족화해, 민족자주, 민족단합, 민족발전을 위한 선결조건은 남북간 신뢰회복의 추진이라는데 남북참석자 모두가 의견을 같이했다.

참가자 모두 민족적 양심과 역사적 소명의식을 갖고 평화와 단합을 위해 진지한 모습을 견지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특히 구영록(서울대 정치학과) 교수와 북측의 박동근(조국통일연구원실장)씨는 구면인데다가 해박한 지식과 경륜으로 이번 회의를 공동 진행, 토론회가 끝날 때까지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유지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상호 신뢰구축이 한반도 평화유지에 밑거름이 될 것이라는 것을 새삼 강조하고 싶다.

◎이두식 한국미술협회 이사장/환한 표정 담소 동네이웃 만난듯/북 예술교류 긍정반응 큰 기대

6월29일 중국 베이징(북경). 홍콩이 중국으로 되돌려지기 직전 베이징은 온통 경축 무드에 젖어 있었고 우리 일행은 조용히 그곳에 도착했다. 나는 급격히 변화하는 중국땅에 수차례 여행한 적이 있었지만 남북의 만남을 위해 온 것은 처음이기에 온몸이 긴장됐다.

중국 최고급호텔인 캠핀스키호텔은 남북모임의 장소이자 우리의 숙소였다. 거리는 홍콩반환으로 인해 축제분위기에 있었지만 남측과 북측의 인사들은 상대적으로 착잡한 심정을 가슴 한편에 품은 듯했다. 나는 남북학술회의에 참가한 것이 처음이지만 이제까지 남북회담은 만나지않는 평행선, 독선적 주장, 곤혹스러움과 황당함, 도출되지않는 결론 등 부정적인 이미지로 다가왔기 때문에 가슴속에 답답하고 묵직한 느낌이 자리잡고 있었다.

첫날 북측인사들과의 만남은 생각했던 것보다는 자연스럽게 진행됐다. 대부분 처음 만나는 사람이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긴장됐던 표정들이 점차 풀리고 부드럽게 변했다. 간간이 재담이 나오고 폭소도 터졌다.

더욱이 두차례의 만찬장소에서는 환한 표정으로 서로 담소를 나눔으로써 동네이웃이나 가까운 친구들끼리의 만남과 같았다. 공식회의장에서는 용어해석을 싸고 이견이 오갔지만 사석에서는 어떠한 이야기를 해도 잘 받아주었다. 공석에서도 이러한 분위기와 태도가 100% 이어지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나는 예술가의 일원으로 참가했고 통일문제에 깊은 지식이나 연구가 없었기에 주로 남북측 주제발표와 토론에 귀를 기울이는 자세로 임했다. 그리고 종합토론 때 마지막 순서에 할당된 발표자리에서 북한에 미술교류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역설하고 적극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허리가 두동강나 갈라져있던 반세기동안 우리민족은 비극을 맛보아야 했고, 서로 견제하며 대결함으로써 경제적으로 큰 손해를 당해야 했다. 우리에게 20세기는 비극의 시대였다. 내가 이번에 참가한 것은 정치적 토론이나 이데올로기의 토론이 아닌 우리민족의 예술적 감성의 우수성을 서로 이야기하며 공감대를 확대하자는데 뜻이 있었다. 따라서 북측의 고위인사에게 나의 뜻을 전달하고 앞으로 교류의 물꼬를 트는데 조금이라고 기여하고 싶었다.

북측은 나의 제안이 그리 부담스럽지 않았던지 별 이의없이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기대를 갖고 지켜볼 일이다.

남북교류에 있어서는 학술토론과 정치회담과 함께 문화예술적 교류도 꼭 포함돼야 한다. 혹 내가 미술협회이사장직에 있는 동안 미술교류가 성사된다면 모든 힘을 다해 남북화합과 통일에 일조하도록 하겠다는 다짐을 작업실 북쪽 창가를 보며 해본다.

◎이병규 한국일보 정치부 차장/홍콩반환 축제속의 이국모임/분단현실 실감 안타까운 마음

한국일보사가 주관한 제2차 남북학술회의가 열린 6월30일과 7월1일 베이징(북경)에서는 잇따라 축포가 터졌다. 현란한 밤불꽃놀이가 곁들여진 이 축포는 보는 사람의 마음을 들뜨게 했다. 이 축포는 홍콩의 중국반환을 반기는 중국인들의 축제였다.

하지만 학술회의에 참석한 우리는 착잡함을 느껴야만 했다. 한반도 평화와 화합을 위한 모임이라는 명칭이 말해 주듯이 우리는 이제 겨우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살자는 정도의 얘기를, 그것도 어렵사리 만나 주고 받았기 때문이다.

모임은 자주 만나 많은 얘기를 나눠야 한다는 평범한 사실을 새삼 확인시켜 주었다. 모임의 성사를 위한 예비접촉에서 풀리지 않았던 문제들은 회의가 시작되자 자연스럽게 해결됐다. 또 주제발표와 토론중에 드러난 이견은 네차례의 식사를 함께 하는 방식으로 마련된 「장외회의」에서 차차 좁혀졌다. 송별연이 끝난 뒤 헤어짐을 아쉬워 하면서 함께 탄 버스속에서 「아리랑」 「우리의 소원은 통일」 「고향의 봄」을 합창했을 때는 남과 북은 물론, 너와 나도 없는 것같았다. 북측 참석자들은 차에서 먼저 내리는 남측 참석자들을 배웅할 때 한참동안이나 자리를 뜰 줄 몰랐다. 이번 모임에는 남북문제를 전공하는 학자 일변도의 참석을 지양, 예술 음악 체육 등 다양한 전공분야의 전문가가 참석했다.

「개혁」 「개방」 「외세배격」 「자주확립」 등의 용어가 오고갈 때와 그림과 음악, 축구 등의 얘기가 나올 때의 분위기는 판이했다. 상호 체제와 관련된 문제는 평행선을 달렸지만 예술과 체육을 주제로 한 대화는 오순도순하기까지 했다. 이는 남북간의 대화와 교류가 나아갈 방향을 예시해 준다.

이두식 한국미술협회 이사장은 남북미술교류전을, 이학래 대한유도회 부회장은 축구 등 남북체육교류를 즉석 제의했고 북측의 장재철 단장은 『평양에 돌아가 관계기관과 겸토한 뒤 회신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결론은 자연스럽게 『상호간에 부담이 많은 정치 사회 분야보다는 예·체능분야의 교류가 우선적으로 이뤄지는 게 바람직하다』는 쪽으로 모아졌다.

이번 모임 역시 남의 나라땅 베이징에서 가질 수 밖에 없었다는 사실은 안타깝기만한 남북의 현실을 말해준다. 95년 1차 학술회의 때 우리는 『다음 모임은 서울이나 평양에서 갖자』고 다짐했으나 그냥 다짐만으로 끝난 것이다.

모임이 열리고 있을 때 베이징의 밤하늘을 수놓은 축포는 우리에게 냉엄한 경고를 하고 있었다. 세계가 소용돌이 치며 급변하고 있는데도 민족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역사의 낙오자가 될 수도 있다는 경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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