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 주면서도 북 민심 못얻는 이유 숙고해봐야/민간단체 최초 회의… 북 “모임 계속 갖자” 제의「한국일보」는 2년 전에 남북학자들의 회의를 남북한 관계사상 처음으로 주선했다. 남북관계가 경색되어 있던 당시에 북한측이 참가를 수락하였기 때문에 우리측 참석자들은 이 회의를 계기로 남북관계가 개선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지난 2년간의 남북관계는 북한 잠수함사건과 황장엽씨 망명으로 그 이전보다 더욱 경색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이 다시 남북학자들의 회의개최 제의를 수락해 한국측 참석자들은 설레는 마음으로 회의에 임하게 되었다. 특히 올해는 7·4남북공동성명이 나온 지 25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에 이번 회의는 시기적으로도 의미있다고 생각했다.
이번 회의는 공식회의와 점심과 저녁시간의 비공식회의로 구성됐다. 남북의 참석자들이 점심과 저녁을 같이 하면서 보낸 시간은 양적으로 공식회의의 시간과 같다. 공식회의에서 토의한 것을 점심과 저녁시간에 술을 들면서 다시 토의하는 기회를 가졌던 것이다.
공식회의의 결과는 다음과 같은 점에서 남북 참석자들의 기대에는 좀 미흡했던 것 같다. 첫째로 남북은 평화, 자주, 민족대단결, 화합, 통일문제에 원칙적으로 합의하면서도 그 구체적 의미와 실천방안에 대해서는 여전히 대립했다. 양측의 자세는 2년 전과 다를 바가 없었다. 둘째로 북측은 우리측의 자세에 여전하게 반응했고 우리측은 북측의 자세를 고정된 것으로 보아 별로 논란하지 않았다. 2년 전에는 남북 양측이 서로를 설득시키기 위해 열심이었으나 이번에는 서로의 자세를 체념적으로 받아들였다. 셋째로 북측은 이번 회의가 남북의 민간단체가 공동주최한 최초의 회의이고, 이 회의는 단순한 학술회의가 아니라 남북이 공동으로 평화와 화합운동을 추진하는 모임이라고 주장했다. 북측은 앞으로는 남북의 민간인들간의 모임을 계속 갖자고 제의하였다.
우리측은 북측의 이같은 정책이 평화협정에 도움이 되고 남북 정부대표들간의 대화에는 장애가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으나 이 의견을 북측참석자들에게 피력하지는 않았다. 이번 회의에서 북측이 뚜렷한 목표와 전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그렇지 않은 우리들의 마음에는 좀 걸리는 것이었다.
점심과 저녁시간의 비공식회의는 공식회의와는 매우 대조적이었다. 이때는 남북한 참석자들이 서로간 아무 대립이 없는 하나의 민족, 형제자매였다. 우리들은 뿌리가 같은 사람들이고 한민족의 과거와 장래에 대해서도 뜻이 같다는 것을 서로 확인했다. 공식회의 때와는 달리 서로의 입장을 설득하려고 하였고 또 서로간 설득도 당했다. 그러나 양측은 모두 공식적 목표와 전략은 잊어버리고 폐부에서 우러나오는 얘기를 나누었다. 남북의 참석자들은 이러한 시간을 통해 정이 들었고 헤어질 때는 섭섭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이번 회의를 통해서도 2년전 회의 때와 마찬가지로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에는 문제가 있다고 느끼게 되었다. 북한에 대한 식량지원만 하더라도 우리정부는 식량을 지원하면서도 북쪽의 당국자들은 물론 북쪽 동포들로부터도 고맙다는 마음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북측 참석자들을 통해 느끼게 되었다. 우리 정부는 북을 지원하면서도 북의 민심을 보지 못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숙고해보아야 할 것이다.
남북관계의 개선을 위해서는 인내심과 장기적 안목에 기반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절실하게 느낀 2일간의 회의였다.<이정복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이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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