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민선자치가 재개된지 2년이 되었다. 지방자치가 처음 시작된 것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52년 4월이었다. 이때 백마고지나 철의 삼각지대 등 전선도처에서는 이땅의 젊은이들이 목숨을 바쳐 싸우고 있었으며 정부와 국회는 부산에서 피난살이를 하는 중이었다.초대 지방의회는 이처럼 불행한 시기에 태어났으며 그후 채 10년도 넘기지 못한채 61년 군사혁명위원회 포고령 4호에 의해 30여년간의 긴 동면상태에 들어가게 되었다. 지방자치는 이처럼 처음부터 고난 속에서 태어나 역경 속에 중단되어야 했던 기구한 운명이었다.
그러나 91년 지방의회 구성을 거쳐 2년전 본격적으로 재개된 지방자치는 문민시대를 맞아 평화와 풍요로움 속에서 축복받은 재출발을 할 수 있었다. 만인의 기대 속에 출범했던 민선자치 두돌을 맞으며 주민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궁금해진다. 각급 언론들이 앞질러 여러가지 시각의 보도를 한 것처럼 주민들도 다양한 평가들을 하고 있을 것이다.
여하튼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중앙집권적 행정체제와 권위주의적 분위기를 탈피하여 지역 일꾼을 내 손으로 뽑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신선한 기쁨이었으며 지방자치에 대한 경험이 별로 없는 가운데에도 각고의 노력끝에 이룩한 그간의 성과는 일단 높이 평가해야 할 것이다. 이를테면 관청과 주민간의 거리가 좁혀졌고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제반 시책들이 가시화했으며 각급 기반시설 확충과 아울러 지역과 경제발전을 위한 갖가지 아이디어가 총동원되었다.
그러나 여러 자치단체들이 내세우는 비슷비슷한 시책들은 관광지 기념품점에 진열된 상품처럼 내실이 없다는 시각도 있다. 또한 차기 선거를 1년 밖에 남겨 놓지 않은 현 시점에서 임명제때 보다도 일하기가 더 어렵다느니, 주민과 지역 이익보다도 표를 의식한 선심성 행정이라느니 하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낭패감이 드는 것은 나만의 느낌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은 결코 어느 누구의 일방적인 잘못으로 돌릴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공동책임임을 알아야 한다. 단체장은 주민생활과 의식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주민의 정서와 의식 또한 단체장의 생각과 행동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나는 평소 지방자치란 오케스트라와 같다는 생각을 해왔다. 단체장이 지휘자라면 주민들은 각기 다른 모양의 악기를 다루는 연주자와 같기 때문이다. 지휘자의 역할이 제일 크지만 모든 연주자들 또한 자기 역할에 충실하면서 이웃과 화음을 이룰때 명곡이 되지 않겠는가. 지방자치도 이와 같이 모든 사람들이 자기 역할을 다하면서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뤄야 크게 발전할 수 있으므로 결국 현명한 주민들이 앞서가는 지방자치를 성취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제일 먼저 필요한 것은 높은 자치의식이다. 애향심을 바탕으로 한 성숙된 시민의식이 지방자치의 기초가 되기 때문이다. 두번째로 명지휘자를 선택할 줄 아는 높은 안목이 필요하다. 학연 혈연 지연 등에 영향받고, 바람에 휩쓸리는 선거풍토는 사라져야 한다. 지방행정에 대한 높은 경륜과 소신을 갖춘 능력있는 인사가 뽑히는 선거풍토가 이루어져야 하며 돈없는 사람이라도 당당히 나서서 겨룰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만 한다.
세번째로는 지역 스스로의 자구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중앙의존적인 자세를 탈피하고 스스로의 장점과 능력을 개발함으로써 지방화시대의 문을 열어가야 할 것이다. 네번째로는 중앙정부 또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지방정부를 통제와 규제의 대상이라고 보는 한 발전의 속도는 느릴 수 밖에 없다.
지방자치는 바로 나의 일이요, 나의 생활임을 자각하고 우리 모두가 악기의 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연주자임을 느낄 때에 지방화시대는 꽃을 피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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