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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시인’ 채호기씨/세번째 시집 ‘밤의 공중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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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시인’ 채호기씨/세번째 시집 ‘밤의 공중전화’

입력
1997.07.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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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의 부분부분을 잔혹하게 파고드는 시어시인 채호기(40)씨의 시는 「육체의 시」라고 불린다. 그의 시에는 사람의 몸의 일부분, 육체의 특정 부분을 지칭하는 구체적 시어들이 들어 있지 않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래서 그는 우리 시단에서는 드문 「몸의 시인」으로 통한다. 「지독한 사랑」 「슬픈 게이」에 이은 세번째 시집 「밤의 공중전화」(문학과지성사 간)에서도 이런 그의 특징은 여지 없이 드러난다. 이전의 시보다 더욱 구체적으로 육체의 부분 부분을 잔혹하다 할 정도로 파고 든다.

「끔찍하다/ 내 살 속에 사람이 들어 있다」(「내가 나를 모른다는 것은 희망적이다」중). 「기차에서 내렸다. 그는 곧 사십이 될 것이다/ 그의 과거는 모두 벗겨져버렸고 질식할 것 같은 하얀 알몸이 미래의 쟁반 위에 놓여졌다」(「서른 아홉 살의 암살」중).

문학평론가 김주연 숙명여대 교수는 채씨의 이런 시에서 한 세기 전 『내게 있어서 정신이란 육체』라고 외친 니체를 떠올리면서, 어쩌면 우리 모두가 그동안 「내 살」에 너무 무관심했던 것은 아닌가 하고 되뇌인다. 서구문화의 유입으로 갈라져버린 정신과 육체, 그 합일을 위한 작업이 채씨 시작의 구체적 동기라는 것이다. 채씨 자신도 『육체라는 것이 없이는 이 세계 안에 있을 수가 없다. 타자하고 가장 가까워질 수 있는 것은 육체다』라며 몸과 살에 대한 집착은 타자와의 「소통」을 위한 것이란 의도를 내비친다. 「너의 눈을 바라보며/ 너의 입술에다/ 너의 얼굴에 투명하게 자란/ 너의 솜털에다 말하는 게 아냐/ 아무 것도 더 이상 쓸 수 없는/ 검은 벽에다/ 추락의 깊이를 짐작할 수 없는/ 밤의 절벽에다/ 말들이 스스로 몸을 던지는 걸거야」(「밤의 공중전화」중). 소통 안되는 육체의 말은 검은 벽, 밤의 절벽에 자살하는 무의미한 말들일 뿐이다.

그의 시는 그 낯선 언어때문에 쉽게 읽히지 않지만, 이번 시집에는 「눈」만 등장하는 「밤의 주유소」같은 명징한 시편도 들어 있다. 「길은 어둠으로부터 나와 어둠으로 사라진다/ 충혈된 눈처럼 불 밝힌 주유소/ 어둠 속에 꽃처럼 피어있다/ 길 위의 인생/ 심장에 휘발유를 주유하는 곳/ 발작처럼 명멸하는 빛 아래/ 텅 빈 직선 도로 같은 인생은/ 전모가 드러났다 사라지는 절망 같은 것/ 스쳐지나고 마는 희망 같은 것」.<하종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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