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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는 며느리」는 나쁘다?(장명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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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는 며느리」는 나쁘다?(장명수 칼럼)

입력
1997.07.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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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가 제도적으로 노인을 돌보게 되면 자식들은 부모를 사회에 떠맡기려하고, 효도라는 미덕은 급격하게 붕괴될까. 서양 수준의 사회복지 제도를 서둘러 도입하는 것은 경솔한 짓일까.유교문화권에 있는 나라들이 공통적으로 부딪치는 딜레마에 대해서 일본은 모범적인 선례를 만들지 못했다. 세계최고의 장수국인 일본은 일찍이 효도에 대한 미련을 정리하지 못했고, 오늘 많은 가정들이 노인을 집에서 돌보는 「가이고」(개호)부담으로 허덕이고 있다. 70년 남자 69세 여자 74세이던 일본의 평균수명은 24년만인 94년 남자 76세 여자 83세로 7∼9세나 길어졌고, 65세 이상 노인인구는 7%에서 14.5%로 늘어났는데, 노인대책은 이 빠른 노령화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가이고」란 말을 붙인 수많은 신조어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전근발령을 받은 아들이 연로한 부모를 아내에게 맡기고 혼자 임지로 갈 수 밖에 없는 가이고 단신부임, 부모 간병을 위해 직장을 쉬는 가이고 휴직, 주부가 자기 부모를 간병하러 친정에 가있는 가이고 별거, 70대 80대의 아들 딸이 100세 가까운 부모를 돌보다 과로로 쓰러지는 노노 가이고, 치매나 중풍에 걸린 배우자를 오래 간병하다가 사건을 저지르게 되는 가이고 살인과 자살, 노인을 돌보다 지쳐서 집을 나가버리는 가이고 가출과 이혼, 노부모때문에 결혼도 못하는 가이고 독신…. 오늘 일본 가정의 최대 문제는 가이고다.

「고령사회를 좋게 만드는 여성모임」의 히구치 게이코(동경가정대 교수) 회장은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가이고가 젊은 여성들의 결혼 기피 풍조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시부모 간병으로 어려움을 겪는 며느리들을 주변에서 많이 보면서 젊은 여성들은 그런 결혼생활에 공포와 회의를 품게 되고, 더구나 자신이 친정부모를 모셔야 하는 입장일 때는 아예 결혼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젊은 여성들의 결혼기피와 출생률 저하는 일본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가장 큰 문제인데, 미흡한 노인대책이 악순환을 불러 점점 사태가 나빠지고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일본정부는 89년 노인대책을 종합한 골드플랜을 발표했고, 다시 이를 보완한 신골드플랜을 내놓았으나, 슈퍼 골드플랜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는 소리가 높다. 2000년까지 달성하기로 한 정부의 목표는 고령화의 속도와 수요에 크게 못미쳐 이미 신골드플랜을 끝낸 오사카(대판)시의 경우 노인시설 입소희망자가 3,000명이나 밀려있는 실정이다. 『도쿄대학에 입학하는 것보다 양로병원에 들어가는 것이 더 힘들다』는 말이 있을만큼 시설이 부족하고, 재택노인을 위한 서비스도 부족하다. 집에 사는 노인들은 실비로 주 2회 가정봉사원의 도움을 받을 수 있고, 데이서비스센터를 주 1회 이용할 수 있고, 노인홈에 1, 2주 단기입소할 수 있으나, 간병이 필요할 만큼 건강이 나쁜 경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추진되고 있는 것이 가이고 보험이다. 40세 이상은 의무적으로 가이고 보험에 가입하여 노년에 대비하자는 것인데, 의료보험과 일부 중복될뿐 아니라 1인당 월 2,500엔(1만9,000원 정도)이라는 부담이 만만치 않다는 반대여론도 있다. 보수적인 국회의원들은 자식이 부모를 모시는 일본의 전통미덕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가이고 보험에도 반대하고 있다. 이 법안은 현재 국회 분과위를 통과한 상태다.

『노인문제란 여성문제다. 여자의 평균수명이 남자보다 길기 때문에 여자의 노년 설계가 점점 중요해지고, 또 노인 돌보기와 간병의 부담은 결국 며느리가 지게 된다. 외아들 외딸이 결혼하면 한 여성이 시부모와 친정부모 등 네 사람의 노인을 돌봐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나쁘지 않은 며느리도 너무 힘이 들면 노인을 방치하고 결과적으로 불효할 수 있다』

히구치 교수는 일본의 노인복지 제도가 뒤떨어진 것은 일본의 며느리들이 너무 참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다면서 자신은 『나쁜 며느리가 좋은 사회를 만든다』는 역설적인 구호를 자주 사용한다고 말했다. 일본의 고령화 몸살은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시작되었는데, 효도의 신화에서 벗어나 제도를 서두르라는 충고, 고령화의 부담을 결코 만만하게 봐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깊이 새길 필요가 있다고 본다.<편집위원·도쿄(동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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