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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만남 의미와 토론 결산(제2차 남북학술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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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만남 의미와 토론 결산(제2차 남북학술회의)

입력
1997.07.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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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착 남북관계 개선 ‘주춧돌’/잠수함·황장엽사건후 첫 대규모 민간접촉 ‘일대사건’/참석층·토론내용 폭넓어져… 모임 정례화 한목소리한국일보사 주관으로 6월30일, 7월1일 2일간 중국 베이징(북경)에서 열린 「제2차 남북학술회의―한반도 평화와 화합을 위한 모임」은 1차 회의인 95년의 「남북 해외학자 통일 학술회의」를 확대, 발전시킨 것이다.

이번 모임은 학술회의 참석자가 각계 인사로 다변화해 논의의 수준과 범위를 넓혔다는 점이 우선 두드러진다. 95년의 1차 회의 때는 남북과 해외의 남북 문제 전문가들만이 자리를 함께 했으나 이번에는 남북의 각계 전문가들이 골고루 참여했다.

남측에서는 미술계(이두식 한국미술협회 이사장), 체육계(이학래 대한유도회 부회장), 음악계(황병기 이화여대 국악과 교수) 등 각계인사가, 북측에서는 종교인으로 장재철 조선종교인협의회장과 문예인으로 전영남 김일성종합대 교수 등이 각각 참석했다. 모임의 주제와 토론내용이 다양해진 것은 물론이다.

북한측은 이를 두고 분단이후 처음 이뤄진 민간차원의 대규모 직접 접촉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물론 여기에는 정부를 건너 뛰어 남한의 여러 사회단체와 연대를 강화하겠다는 통일전선전술 차원의 배려가 깔려 있다. 그러나 남북간 교류확대가 결국은 북측의 변화를 유도해내는 효과가 있다는 점에서 이번 모임은 남북 관계사에 한 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이와 함께 개최 시점도 의미가 크다. 남북관계는 지난해 9월 북한 잠수함침투사건, 올해 2월 황장엽씨 망명사건의 여파로 급속도로 후퇴했다. 황씨가 제3국을 거쳐 서울에 온 지 두달 밖에 안된 시점에서 민간차원의 대규모 남북접촉이 이뤄졌다는 것 자체가 매우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는게 남북문제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잠수함침투 사건과 황씨 망명사건 이후 최초의 대규모 남북접촉이 된 이번 모임은 그래서 최근의 남북관계에서 일대 사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번 모임은 북한이 8월5일 미국 뉴욕에서 4자회담 예비회담에 응하기로 하는 등 최근의 대외정책 전환 조짐과 맞물려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북한문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번 모임을 김정일의 공식적인 권력 승계를 앞두고 북한이 대외정책의 획기적 변화를 모색하는 징조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이번 모임에서는 참석자들이 단순히 자신들의 주장만을 발표하는 수준에 머물지 않고 공감대를 찾아 구체적 실천방안을 모색했다는 점도 평가받을만 하다. 민족의 파멸을 부를 전쟁을 방지하고 한반도 평화정착, 그리고 통일을 앞당기기 위해서 하루 빨리 냉전적 대결구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인식에는 모두가 견해를 같이 했다.

물론 구체적인 실천방안에 대해서는 여전히 거리가 있었다. 남측은 이산가족재회, 비무장지대 공동개발, 문화 예술분야의 교류확대, 책임있는 당국자간 대화의 조속 재개 등을 제시했다. 그러나 북한측은 외세배격, 남북한 및 해외 민간단체의 연대 등 구호를 나열했다.

양측은 이같은 모임이 정례화해야 한다는데 의견을 같이했다. 모임의 성과를 집약한 종합토론에서는 물론, 주관사인 한국일보사와 양측 주최측 관계자들의 접촉에서도 모임의 정례화를 적극 추진키로 했다. 그래서 「2차 남북학술회의」는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든든한 주춧돌을 놓은 것으로 평가받을만하다.<베이징=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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