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선 앞두고 줄잇는 여론조사/그러나 대의원과 일반인 사이엔 현격한 지지도 차이/위원장 따르자니 민심과 다르고 안따르자니 앞날이 힘들다/주자들은 위원장잡기 바쁘고 주자→위원장→대의원의 먹이사슬은 깨질 수 있을까『지구당 위원장의 뜻을 따르자니 패거리 정치라는 비난을 듣겠고, 소신대로 찍자니 앞으로 정치해먹기 어렵겠고…』 대통령후보 경선(7월21일)을 앞둔 신한국당 지구당 대의원중 상당수는 이렇게 고백했다. 그래서 민심이냐, 당심이냐라는 말이 나온다.
대통령은 누가 뽑는가? 물론 국민이다. 그러나 각 당의 대통령후보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민심은? 기댈 곳도, 갈 곳도 없다. 우리 정당들이 채택하고 있는 대통령후보 경선제도. 그 속과 겉을 살펴본다.
최근 신한국당 대통령 후보 경선주자에 대한 여러 언론사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며 혼돈에 빠지는 국민들이 많다. 대통령 후보를 선출하는 전당대회 대의원 과 유권자 간에 현격한 지지도 차이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원론적으로 생각하면 유권자나 당원이 전당대회 대의원을 선출하고 이들이 대통령 후보를 선출하는 것이 정당 정치의 기초일 것이다. 그래서 국민에게 가장 인기있는 사람이 후보로 선출되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된다. 그러나 우리는 전당대회 직전까지 누가 대통령 후보로 두 손을 들 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신한국당 대의원과 일반 유권자를 상대로 최근 실시한 한 여론조사 결과를 비교해 보자. 대의원 대상 여론조사에서는 이회창 전 대표가 33.0%로 1위, 뒤이어 이인제 경기도지사가 12.5%였고, 이한동 고문 10.7%, 김덕룡 의원 7.0%, 이수성 고문 5.5%, 박찬종 고문 3.2%, 최병렬 의원 0.8% 순이었다. 하지만 유권자들을 상대로 한 지지율은 이인제 26.1%, 이회창 24.5%로 선두 자리가 바뀌었다. 다음으로는 박찬종 18.6%, 이수성 9.8%, 김덕룡 3.8%, 이한동 3.7%, 최병렬 2.9%로 나타났다.
물론 이에 대해서 여러 설명이 있을 수 있다. 정치권 주변에 오랫동안 몸담았던 대의원들의 시각이 유권자들과 다를 수 있고 그들의 「눈」이 오히려 정확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유권자들이 참신하다고 생각하는 후보를 대의원들은 「애송이」로 볼 수도 있다. 또 유권자들의 지지도가 대의원 지지도로 연결되기까지 일종의 「타임래그(시차)」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논리로 유권자들과 대의원 간의 현격한 지지도 괴리를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대의원이 민심을 고려 않고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경선주자들을 지지하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훨씬 설득력이 있다.
신한국당 한 관계자의 말.
『당에서는 당원을 300만명 정도로 추산하지만 실제로는 150만명에 불과하다. 이를 250여 지구당으로 나누면 지구당 별로 5,000∼6,000명이다. 하지만 지구당대회를 하면 많아야 400∼500명 정도가 참석한다. 당비를 내는 사람은 한지구당에 40∼50명 선으로 당비를 모아 정당을 운영하기는 커녕 동원비를 줘야 사람을 모을 수 있다. 이런 실정에서 당원이 대의원을 선출하기도 어렵고, 설령 그렇다해도 이들이 당원이나 유권자에 대한 대표성을 가질 수 있겠는가?』 그의 말은 정당제도가 우리 정치에서 기형적으로 발을 붙이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지구당 위원장은 총재가 뽑으면서, 대의원은 당원보고 뽑으라고 하는 것은 우스운 일 아닌가?』 신한국당의 한 당직자가 한 말이다. 그래서 지구당 위원장의 힘이 커질 수 밖에 없다. 위원장들은 대의원 구성에서 경선 참여에 이르기까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러한 구조는 경선 과정에서 계파 정치의 부작용으로 나타난다. 경선주자들의 싸움은 곧 위원장 확보를 위한 전쟁이다. 계파보스는 위원장을 자파로 영입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지구당 위원장들은 각 주자들에게 추파를 던지며 몸값을 올린다.
신한국당 한 대의원의 말. 『지구당 위원장이 경선주자 1명에만 줄을 서면 지사로 불리고, 2명에게 줄서면 순진한 사람, 3명은 기생, 4명이면 「갈보」라고 비난받는다. 경선일이 임박해지면 지구당사람들이 입도선매될 가능성도 있다』
특정 계파의 위원장은 정치생명 연장을 위해 보스를 필사적으로 지지한다. 대의원들은 앞으로 시·도의원공천이나 시·군·구의회 의장 추천을 받기 위해 위원장 눈치를 살핀다. 경선주자―지구당위원장―대의원으로 이어지는 먹이사슬이라고 할까?
서울의 신한국당 한 대의원은 대다수 지구당 위원장이 경선에서 중립을 지킬 것이라는 보도에 대해 『중립을 표방했다구요? 이미 내부적으로 결정되어 있는데 무슨 소립니까?』라고 비웃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문제를 정당의 잘못된 구조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정당에 참가하고 이를 운영하는 사람이, 그리고 유권자들이 더 큰 문제라는 지적도 많다. 당원이나 대의원이 되는 것에 대해서는 냉소적이면서도, 자신이 지지하는 주자가 당선되기를 바라는 유권자들의 이중적 태도가 정치발전을 저해한다는 것이다. 또 경선주자가 지구당을 방문했을 때 『A후보는 밥값이라도 주고 갔는데…』라며 눈치를 주는 대의원들도 마찬가지다.
이같은 모든 문제점과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현재로서는 그렇다고 말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민심이 기댈 곳은 하나 밖에 없다. 대통령 후보 선출은 비공개 장소에서 비밀투표로 진행된다. 대의원들이 의식혁명을 한다면?<조재우 기자>조재우>
◎신한국 3개 지구당 분석/대표성 희박한 대의원들/자영업·무직·노동자가 전체의 3분의 1 차지/직장인은 절대 부족/연령별론 40∼50대 다수/학력도 지구당별 천차만별
21일 집권당으로는 사실상 처음 실시되는 신한국당 대통령 후보 자유경선에 참여할 대의원들에게 국민의 눈이 쏠려 있다.
국민은 이들이 일반 유권자의 「표심」을 제대로 전달하는 투표자가 되기를 고대하고 있다. 그러나 『거의 불가능할 것』이라는 견해가 아직까지는 지배적이다. 그동안 대의원들이 각계 각층의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대표성 보다는 위원장과의 친밀도나 위원장에 대한 충성도 중심으로 지명되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신한국당은 5월 투표에 참가하는 대의원을 1만2,393명으로 확정짓고 지구당별로 35명을 선출토록 했다. 전체 253개 지구당에서 선출되므로 일단 지역별 대표성은 있다고 할 수 있다.
취재팀은 대의원들의 대표성을 파악해보기 위해 서울의 지구당 두 곳과 경기도의 한 지구당 등 3개 지구당 대의원 105명의 신상명세를 입수, 연령, 학력, 직업별로 분석했다.
서울 A지구당 대의원 35명 중 가장 많은 직업은 노동과 자영업·임대업(각 5명) 등이었다. 반면 경기B지구당과 서울 C지구당은 무직이 각각 5명, 8명으로 가장 많은 직업군이었다. 자영업자는 A지구당 5명, C지구당 5명으로 역시 높은 분포를 보였다.
일반 유권자의 다수층인 회사원은 A지구당 4명, B지구당은 1명이었고 C지구당에는 아예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영업, 무직, 노동자 등이 대의원의 3분의 1가량을 차지할 정도로 직업에 있어서 대표성은 매우 희박했다.
유권자의 50%가량인 20∼30대의 「표심」도 배제돼 있었다. A지구당에는 40대와 50대가 32명으로 절대다수이고 C지구당에는 50대가 20명으로 전체 57%를 차지했지만 20∼30대는 단 한명도 없었다.
다만 B지구당만이 청년부장 등 30대 당직자를 대의원으로 뽑아 6명의 30대가 끼어있을 뿐이다.
대의원들의 학력분포도 일반 유권자와는 거리가 있다. A지구당은 고졸 20명, 중졸 7명, 대졸 6명, 초졸 2명으로 비교적 고른 분포였다.
그러나 B지구당은 유권자의 다수층인 고졸(13명)보다 대졸자가 16명으로 오히려 더 많았고, C지구당은 대졸(12명)과 고졸(23명)자로만 구성되는 등 지구당 별로 천차만별이었다. 이에 대해 박종웅 신한국당 기획조정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대의원들의 대표성 시비 이전에 기본적으로 당원 수가 적은 우리 정치현실을 감안해야 한다. 예를 들어 회사원 중에서 대의원을 골라 뽑아놓는다 하더라도 직장을 가진 회사원이 평일에 투표하러 나오기는 어렵다. 또 20∼30대가 유권자의 50%를 차지하고 있지만 그들 중에 정당활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과연 몇명이나 되는가? 따라서 화이트 칼라들이 나서 적극적인 정당활동을 하는 풍토가 조성돼야만 대의원 구성도 민심을 제대로 반영할 수 있는 대표집단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염영남 기자>염영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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