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사피엔스라는 이름이 붙은 동물의 조상이 지구상에 그 모습을 드러낸지는 이미 400만년이나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들의 조상이 이른바 문명이니 문화니 하는 것을 만들게 된 세월은 그 400만년의 고작 1%도 채 안된다고 들었다. 4만년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극히 최근의 일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따라서 인류는 아직 문명생활에 익숙하지 않다고 할 수도 있다. 우리는 야만인의 때를 완전히 씻어내지 못한 것이다.인간도 동물인지라 가장 강한 본능 두가지를 지니고 세상에 태어난다. 사람은 먹어야 자기를 유지할 수 있고 이성과 짝을 지어야 종족을 유지할 수 있다. 사람에게서 식욕을 제거하면 그는 굶어서 죽게 되지만 만일 성욕을 제거하면 후손이 태어나지 않기 때문에 멸종의 위기를 맞을 수 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 도달한 경험은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만이 다른 동물들과 구별되는 까닭은 무엇인가. 호모 사피엔스는 다른 동물들이 가진 강한 본능 이외에 또다른 본능 하나를 지니고 있는데 그것을 「제3의 본능」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사람만은 식욕·성욕 그리고 「플러스 알파」라고 해야 마땅하다고 믿는다.
그 「알파」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이것이다』라고 분명하게 대답하기는 어렵지만 인간의 신앙심·이성·희생정신·염치·체면, 그리고 진과 선과 미를 추구하려는 강한 의욕 등이 「알파」에 속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런 것들이 인간으로 하여금 문화의 창조를 가능하게 만든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인간 이외의 동물들은 우리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이 지구에 살기 시작했으면서도 본능 외에는 아무것도 후손들에게 물려줄 것이 없는 무가치한 생존만을 되풀이해온 것이다.
약육강식을 바탕으로 한 적자생존의 원리를 가지고 모든 살아있는 것들의 진화를 체계있게 정리한 이는 찰스 다윈이지만, 생존경쟁의 그 원리를 사회학에 도입하여 제국주의의 이론을 은근히 뒷받침해준 이는 허버스 스펜서였다. 극단적으로 표현한다면 경쟁을 통해 약자는 죽고, 강자만이 살아남게 된다는 것이다. 약자를 먹여살리는 것은 부도덕하다는 주장을 내세운 정치학자도 있었다.
우리나라는 부모들의 자녀교육열이 높다못해 뜨거워 해마다 20조원 가까운 사교육비를 지출하는 역사에 없는 나라가 되었다는데, 20조원이라면 교육부의 1년 예산을 능가하는 액수일 것이다. 그런데 부모가 이렇게 큰 돈을 들여가며 아이들을 교육한다고 야단법석인데 그 동기가 도대체 무엇인가. 그 아이들을 좀더 「사람다운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좋은 대학에 보내서 앞으로의 생존경쟁에서 보다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게 하기 위해서인가.
경쟁에는 한계가 있을 뿐 아니라 그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경쟁의 타당성이 가장 많이 인정되는 분야가 스포츠다. 경쟁을 통해서 100m를 10초이내에 뛰는 빠른 사람, 마라톤을 2시간10분대에 주파하는 놀라운 인간이 만들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반성할 일은 100m를 5초에 뛰는 사람, 마라톤을 달려 1시간 이내에 골인하는 사람이 과연 필요한가 하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그렇게 총알처럼 달리는 사람이 생겼다고 해서 인류가 그만큼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조국의 근대화가 「목을 따는 것」같은 치열한 경쟁으로 이만한 수준에라도 다다랐다고 믿는 것은 착각이다. 오늘의 이 번영은 대학입시경쟁이 이렇게 지옥처럼 살벌해지기 이전에 대학을 나온 사람들이 주도했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그 기성세대가 이 무의미하고 무가치한 입시경쟁을 방치한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것 같다.
지금이라도 우리가 해야할 일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교육에 힘쓰는 일이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사회에서! 젊은 사람들이 그렇게 무리하게 준비하지 않아도 대학에 들어갈 수 있게 왜 만들어주지 못하는가. 대학의 문턱을 왜 낮추어주지 못하는가.
생존경쟁을 위한 교육은 그만하고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교육에 힘쓰자.<김동길 전 연세대 교수>김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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