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는 어느날 어부로부터 바다에서 건져 올린 황금솥을 선물받았다. 「가장 현명한 사람에게 전해주라」는 신탁에 따라 가져왔다는 것이었다. 이를 받은 탈레스는 「자기는 가장 현명한 사람이 아니다」며 이를 같은 철학자 비아스에게 넘겨준다.비아스도 똑같은 이유로 이를 다른 철학자에게 돌린다. 탈레스의 손을 떠난 솥은 이러한 이유로 6명의 손을 거쳐 다시 탈레스에게 돌아온다. 탈레스는 생각 끝에 이를 신전에 헌납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우리는 이들을 그리스의 7현인, 그리스 철학자중 가장 현명한 일곱학자로 부르며 칭송한다.
서로를 배려하는 7현인의 이야기는 너무 아름답다. 신한국당 「7룡」들의 경선은 어째서 치고 받기만 하는지 답답하다. 날이 갈수록 이전투구의 양상을 띠어가고 있다. 당내 당이 등장하고 대표직 사퇴를 둘러싸고 내분이 심화하는가 하면 지방색을 조장하고 경선거부나 탈당까지 암시하고 있다.
도저히 한솥 밥을 먹어온 같은 당원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양상이다. 서로에 대한 배려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인신공격에 으름장이나 협박성 발언이 난무하고, 이것도 부족해 한쪽에선 분당을 생각케하는 당무거부까지 들고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해도 너무한다.
국민들은 대권주자 7명의 경선에 큰 기대를 걸었었다. 여당인 신한국당이 지난 4년간 정치를 잘했기 때문이 아니다. 지금의 나라꼴을 생각하면 책임부터 묻고 싶지만 공정하고 멋진 경선으로 자성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하는 마지막 바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기대는 산산이 깨졌다. 7룡에게 7현인의 도량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지만 경선과정에서 말만이라도 흉내내 주기를 바라는 것은 지나친 욕심일까. 우연의 일치지만 7현인처럼 7룡이 경쟁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멋있는 일인가. 7명의 용이 주연으로 등장하는 대권드라마는 구성자체부터 파격적이다.
행운을 상징하는 「7」은 인간이 가장 좋아하는 숫자의 하나로 피타고라스는 이성과 건강함이 담겨있는 수라고 했다. 기독교에선 성스런 숫자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7일간에 천지창조를 했다. 불교도 49재 등에서 살필 수 있듯이 7이란 숫자를 아주 중시한다.
용이 일곱이나 등장했으니 경쟁이 치열한 것은 이해한다. 지금까지 한 정당에서 7명이 대권을 다툰 일이 없었다. 이는 그만큼 민주주의가 정착되어가고 있다는 증거지 결코 삼류 싸움판의 구실이 될 수는 없다. 이러한 대열에 끼였다는 자체만도 7이란 숫자의 상징처럼 행운이다.
이를 감사할 줄도 모르면서 일곱빛깔의 무지개 꿈을 꾼다고 대통령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비온 후 맑은 하늘의 무지개 같은 꿈을 이루려면 당내 경선과정부터 깨끗하고 공평해야 한다. 우선 정책대결이란 기본틀에 대의원들이 일곱색 실을 한올한올 엮어주는 일이 뒤따라야 한다.
현재와 같은 갈등이 계속된다면 이러한 기대는 백일몽으로 끝나기 쉽다. 누가 후보가 되든 신한국당은 거대한 소용돌이에 휘말릴 가능성이 크다. 경선결과에 승복하겠다는 말은 들리지도 않는 가운데 지면 분쟁을 일으킬 핑계거리를 만들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발언만 감지되고 있는 판이다.
신한국당 7룡들은 이성을 되찾아 처한 상황을 냉정하게 판단, 스스로의 옷자락을 여며야 한다. 7현인들이 상대방을 가장 현명한 사람이라고 추어올렸듯이 서로를 배려하고 격려하는 경선분위기로 진흙탕 싸움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7이 이성의 숫자란 사실을 우연으로 돌릴 수만은 없다.
그렇지 않으면 공정하고 깨끗한 경선을 위해 돈의 살포, 지방색 조장, 인신공격, 붕당, 폭력, 당무 및 경선거부를 금하는 「경선칠거지악」이라도 만들어 위반자는 경선에서 탈락시키거나 몰아낼 수 밖에 없다. 이를 위해서는 투표권을 가진 대의원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경선판을 흐리는 「미꾸라지」는 투표혁명으로 매운 맛을 보여주려는 결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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