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이야 한낱 남루에 지내지 않는다/ 저 눈부신 햇빛속에 갈매빛의 등성이를 드러내고 서 있는/ 여름 산 같은/ 우리들의 타고난 살결, 타고난 마음씨까지야 다 가릴 수 있으랴/ 청산이 그 무릎아래 지란을 기르듯/ 우리는 우리 새끼들을 기를 수 밖엔 없다/ 목숨이 가다 가다 농을쳐 휘어드는/ 오후의 때가 오거든/ 내외들이여, 그대들도/ 더러는 앉고/ 더러는 차라리 그곁에 누어라/ 지어미는 지애비를 물끄러미 우러러보고/ 지애비는 지어미의 이마라도 짚어라/ 어느 가시덤불 쑥굴헝에 놓일지라도/ 우리는 늘 옥돌같이 호젓히 묻혔다고 생각할 일이요/ 청태라도 자욱이 끼일 일인 것이다.』 <서정주의 「무등을 보며」> 시인이 6·25피란시절 겉보리 몇말 받고 마을 어린이 훈장노릇을 하던 「곤궁한」시기에 썼다고 훗날 술회한 이 시를 새삼 기억하게 된 것은 한장의 사진 때문. 본보 6월9일자 창간특집호에 실렸던 두만강변 북한 부녀의 올해 5월 그 어느 날의 정경을 담은 사진 바로 그것이다. 사진은 북한의 한 「아버지」가 강가의 물을 손으로 떠 「딸」에게 먹이는 장면을 담고 있다. 아버지의 안쓰러운 시선속에 딸은 물을 달게 마신다. 이 정경은 허기를 물로라도 달래야 하는 북한의 참혹한 기아실상과 함께 그런 가운데서도 무너지지 않은 「타고난 살결, 타고난 마음씨」를 아울러 전한다. 그것은 곤궁했던 과거의 바로 우리의 자화상이기도하다. 사진속의 아버지는 「섬뜩한」레닌모를 쓰고 있지만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적」이 아닌 도와야 할 이웃으로 다가선다. 서정주의>
영국의 경제학자 앨프리드 마셜은 제자들에게 경제를 연구함에 있어 냉철한 이성과 함께 뜨거운 감정을 가져야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솔선해서 런던의 빈민가를 둘러보곤 하였다고 한다. 북한 식량지원과 관련해서 항상 강조되는 것은 냉철한 이성. 하지만 그것이 「기름낀」 이성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편집국으로 통하는 2층 계단벽에 게시된 「두만강 북한 부녀」의 사진을 오늘도 눈으로 밟는다. 부족했던 뜨거운 감정으로 북한의 기아문제를 바라보기 위해.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