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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시대로의 시간여행/남부 영국 매너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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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시대로의 시간여행/남부 영국 매너하우스

입력
1997.06.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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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릿­벽면 가득한 초상화·금도장 천장,화려함의 극치/월튼하우스­튜더시대 정취 물씬한 ‘센스 & 센서빌리티’의 무대/뷸리­호수와 정원의 조화,빅토리아풍 검소미어떤 사람을 알려면 그 집을 찾아가 보라는 말이 있다. 집에는 그곳에 사는 사람의 모든 것이 나타나 있다는 뜻이다. 뿐만 아니라 그가 속한 시대와 지역, 집단의 특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오래된 집이라면 그의 역사적 배경까지도 짐작할 수 있다.

영국의 매너 하우스(Manor House), 혹은 트레저 하우스(Treasure House)가 바로 그런 곳이다. 우리말로 풀이하면 영주의 저택. 실제로 길게는 1,000년전, 짧게는 500년전 귀족과 영주들이 살았던 으리으리한 대저택이다. 우리식으로 생각하자면 양반들의 99칸 기와집이라고나 할까. 물론 귀족제도가 유지되고 있는 영국이므로 지금도 귀족의 후예들이 생활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대부분의 매너 하우스는 일반에 공개되어 있다. 대개 건물의 일부분은 집 주인과 식구들이 그대로 사용하고 나머지 부분은 관람객에게 입장료를 받고 공개한다. 이유는 지극히 실용적인 것이다. 수십개의 방과 연회장, 부엌 등 건물만도 유지하기 힘든데다 수만평에 이르는 정원은 개인의 힘으로는 도저히 관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보수비용도 만만치 않다.

영국인들은 내셔널 트러스트(National Trust)라는 일종의 문화재 보호재단으로 이를 해결하고 있다. 집주인이 내셔널 트러스트에 가입하면 국가에서 유지비용을 지원해주는 대신 이를 일반에 공개해야 한다. 살아있는 역사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자는 취지에서다. 어떻게 운영할지는 전적으로 집주인의 의사에 따른다. 합리적인 영국인의 일면을 보여주는 방식이다.

매너 하우스는 영국 각지에 산재해 있지만 특히 영국 귀족의 근거지였던 남부 영국의 매너 하우스들은 1,000년에 이르는 영국 귀족의 역사와 문화를 당시 모습 그대로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남부 영국의 대표적인 매너 하우스로는 롱릿(Longleat)과 윌튼 하우스(Wilton House), 뷸리(Beaulieu)를 꼽을 수 있다. 모두 한국인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윌트셔의 롱릿은 바스 후작의 저택. 현재 주인은 7대 후작으로 장발에 에로틱한 그림, 요란한 파티 등 파격적인 행동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바스에서 1시간 조금 못 걸린다. 16세기에 처음 지어져 1949년 일반에게 공개되었으며 놀이공원과 사파리까지 갖춘 완벽한 위락시설을 자랑한다. 가이드인 헤더 맥카네스는 『연간 25만명이 롱릿을 찾아온다』고 말한다. 집을 돌아보는데 걸리는 시간은 1시간 남짓. 벽면을 가득 메운 초상화들과 금도금된 천장, 손대면 부스러질 듯한 고서로 가득한 서재, 유리창 너머로 바라다 보이는 초원의 양과 말떼들. 얼마나 여유로운 삶이었을까 싶다. 「드레스 복도」에는 옷 욕심이 많았던 4대 후작부인이 입었던 19세기의 의상들이 화려함을 더한다. 부엌에서는 이곳 사람들이 직접 만든 잼을 파는데 맛이 일품이다. (01985) 844400

솔즈베리의 윌튼 하우스는 이보다 조금 더 오래된 450년이 넘는 고택이다. 펨브로크 백작 작위가 17대째 내려온다. 튜더 시대의 모습이 온전하게 남아 있다. 가이드들마저 튜더 시대 복장을 입고 있어 건물 안에 있으면 도무지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없다. 소설가 제인 오스틴과 각별했던 집안으로 영화 「센스 & 센서빌리티」의 극중 무대가 된 곳이도 하다. 이 집에서 특히 재미있는 곳은 부엌. 당시의 모습을 인형으로 그대로 재현했다. 벽난로식 화덕과 냉장고원리를 이용한 창고, 커다란 쥐도 왔다갔다 한다. 밥 짓고 빨래하고 계단을 오르며 목욕물을 날라 바치는 하녀들의 모습은 귀족들의 호사가 누구의 희생을 대가로 했는지 새삼 느끼게 한다. 솔즈베리 시내에서 차로 1시간쯤 걸린다. (01722) 743115

윈체스터에서 1시간30분 거리에 있는 뷸리의 매너 하우스는 이들과 또다르다. 몬태규경 소유의 저택은 18세기 빅토리아 시대의 검소한 모습을 하고 있다. 교회 건축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으며 다른 저택에 비하면 한결 「보통 사람」 사는 집같은 느낌을 준다. 바로 인근에 13세기 중세 수도원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호수와 깔끔하게 다듬어진 정원의 아름다움은 영국 자연의 전형적인 풍광이다. 입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1896년 세워진 국립자동차 박물관이 있다. 바퀴의 발명에서부터 97년형 BMW에 이르는 갖가지 자동차가 관람객의 발길을 붙잡는다. 저택 일대를 내려다 볼 수 있는 모노 레일도 타볼만하다. (01590) 612345. 보다 자세한 문의는 영국관광청 서울사무소. (02)723―8266

◎영국 남부지방/자존심·격식중시 영국인 특성 간직한 ‘유산의 땅’

「Land Of Heritage(유산의 땅)」.

남부 영국(South Of England)을 일컫는 또다른 이름이다. 그만큼 이 지역은 영국역사에서 각별한 전통을 지니고 있을 뿐 아니라 웨일즈와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는 물론이고 잉글랜드 내 타지역과 비교해도 가장 영국적인 곳이다.

서쪽으로는 땅끝을 의미하는 랜즈 엔드로부터 동쪽으로는 영국 성공회의 근거지인 캔터베리가 있으며 로마시대 거점도시였던 바스, 영국 최대의 누드 비치가 있는 브라이튼, 대륙으로 가는 관문 도버도 이 지역에 속한다. 세계 7대 불가사의중의 하나인 거대 석조물 스톤 헨지와 아더 왕의 전설도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또한 영국을 대표하는 윈스턴 처칠과 소설가 찰스 디킨스, 제프리 초서, 토마스 하디, 제인 오스틴도 모두 이곳 출신이다.

16년째 영국에서 살고 있는 한국인 수카양은 『남부는 자존심 세고 격식을 중시하는 영국인의 특성(Snobbish)이 유난한 곳』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영국 영화에서처럼 조용하고 다소 쌀쌀하지만 일단 친구가 되면 깊은 정을 주고 받는다고 한다. 끝없이 펼쳐지는 초록의 구릉 중간중간 낡은 고성과 성당, 화려한 귀족들의 대저택, 수백년된 외관을 손상시키지 않고 내부만 현대식으로 보수한 아담한 이층집은 어디를 가도 볼 수 있다. 그나마 영국내에서는 햇살이 풍부한 편이어서 정원이 유난히 발달한 것도 이 지역의 특성이다.

남부 영국은 한국인에게는 아직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은 곳. 그러나 런던과 바로 인접해 있는데다 역사적 유물, 유적이 곳곳에 널려 있어 영국을 찾는 유럽인에게는 가장 각광받는 지역이기도 하다. 영국항공에서 주 4회 런던행 비행편이 있으며 도착후 기차를 이용하면 대부분 1∼5시간 정도에 갈 수 있다.<윈체스터(영국)=김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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