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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 할머니 소고/윤석민 국제부 기자(기자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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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 할머니 소고/윤석민 국제부 기자(기자의 눈)

입력
1997.06.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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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할머니를 외면해도 되는가』24일 검찰의 유전자 감식 결과 「훈」할머니와 그의 가족으로 나선 김씨 일가의 유전자가 일치하지 않음에 따라 이들의 혈연관계는 일단 없는 것으로 판명됐다. 하지만 국내 연고자가 안나섰다고 「훈」할머니의 존재마저 사라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본보의 줄기찬 확인 취재결과 그가 일제에 의해 강제로 끌려간 군대위안부 출신의 한국인임은 누구도 부인 못할 명백한 사실이 됐다. 그가 설령 한국 이름과 말을 기억 못하고 가족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해서 잘못된 과거역사의 산물인 이번 문제의 본질까지 왜곡된다면 언어도단이다. 그의 조각난 기억의 편린들은 너무 많은 것을 우리에게 일깨워 주고 있다. 고향 진동과 산중턱에 위치한 절과 가을이면 붉게 물들던 학교안의 나무, 마을을 가로지르던 냇물과 넉넉한 그림자를 드리우던 큰 정자나무, 그리고 기억조차 되살리고 싶지 않던 위안소에서의 끔찍했던 생활….

혹 유전자 감식에 대한 과신은 없었는지도 우려된다. 김씨일가가 「유전자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통보에도 『그럴리 없다』고 계속 의아해 하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이들은 『자매중 한명의 남편이 「애꾸눈」이었다』 『끌려올 당시 조모가 생존해 계셨다』 『가족중 푸줏간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등 「훈」할머니가 기억해낸 사실들은 가까운 인척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짚어낼 수 없는 것들이라고 아직도 말한다.

문제의 핵심은 한국인 군대위안부로 판명된 「훈」할머니에 대한 송환 추진을 비롯, 국가차원의 지원이 선행 돼야 한다는 점이다. 가타부타 논쟁과 가족 찾기는 이후에 시간을 두고 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무연고라고 고국 귀환을 미루는 것은 반인륜적 행위이다. 그럴수록 「훈」할머니를 맞는 고국의 품은 따스해야 한다. 「훈」할머니가 꿈에도 그리던 고향땅을 밟을 수 있다면 50여년동안 그를 먼 이국땅에 방치해두었던 우리와 국가의 책임도 일부나마 탕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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