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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을 남길까 말까(장명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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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을 남길까 말까(장명수 칼럼)

입력
1997.06.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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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고있는 집 근처에 넓은 공동묘지가 있어서 나는 매일 아침 공원에서 묘지에 이르는 길을 걷는다. 공동묘지를 산보하다니, 겁이 많은 나로서는 상상도 못했던 일인데, 일본의 무덤들은 무섭지 않다. 공동묘지는 공원 절 학교 주택가와 이웃하며 동네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 무덤은 살아있는 이들로부터 격리되지 않고 삶 속에 있다. 사람들은 늘 죽은이들에게 인사하러 무덤에 가고, 마을 축제나 특산품 시장도 그곳에서 열린다.작은 집에 사는 일본인들은 무덤도 작게 만든다. 다다미 3장 넓이, 1평반 정도로 바둑판처럼 구획된 묘지들은 명당이니 뭐니 따질 겨를이 없이 나란히 줄지어 있다. 그 좁은 무덤도 개인이 차지하지 않고 한 집안이 대대로 사용하게 돼 있다. 「○○○가의 묘」라는 비석아래 여러개의 유골함을 넣는 공간이 있고, 공간이 차면 선대부터 묘역에 재를 뿌려 다시 공간을 만든다.

이처럼 최소한의 땅을 무덤으로 쓰고 있지만, 죽은 사람이 단지 묻히기 위해 후손이 사용할 땅을 잠식해서는 안된다는 논의가 활발하다. 「장송의 자유를 지지하는 회」는 무덤을 남기지 말자는 운동을 펴고 있다. 자신의 장례방식에 대해 적극적으로 생각하고 가장 바람직한 방법을 찾자는 뜻에서 「장송의 자유」란 말을 쓰고 있으나, 그들의 목표는 화장한 후 산이나 바다에 재를 뿌리는 자연장을 확산시키는 것이다.

이 단체의 회장인 야스다 무츠히코(안전목언·70)씨는 도쿄(동경)대 법학부 출신으로 35년동안 아사히(조일)신문 기자로 일했으며, 퇴직한후 환경문제 전문 프리랜서로 글을 쓰다가 6년전 자연장운동을 시작했다. 회원은 5,500여명, 그동안 106명이 이 단체를 통해 자연장을 치렀다.

『일본인들이 무덤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400여년전부터이고, 서민이 무덤을 갖게 된 것은 100년도 채 안된다. 부처님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가르쳤지 사후에 어떻게 하라고 가르치지는 않았는데, 일본인들은 무덤이 불교식이라고 오해하고 있다. 핵가족화와 독신세대 증가, 인구의 도시집중으로 점점 더 많은 묘지가 필요해지고 있다. 골프장과 묘지가 자연파괴의 2대 주범이다』

야스다씨는 『화장한 유골을 다시 대리석 무덤에 가두고 그 앞에서 영생극락을 비는 것이야말로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라고 꼬집고, 『자신의 사후처리를 스스로 결정하지 않고 왜 고정관념에 맡기려는가』라고 물었다. 50여년전 일본의 화장률은 50%정도 였지만, 지금은 극히 일부 지방에서만 토장을 허가하여 거의 100%가 화장을 하고 있는데, 화장을 하고도 묘지에 묻히려는 것은 고정관념 때문이라고 그는 개탄했다. 자연장 비용은 합동장으로 할 경우 10만엔(75만원), 개인장은 30만엔, 비행기로 공중에서 뿌리는 개인장은 38만엔 정도다. 묘지는 위치에따라 다르지만 보통 400만∼500만엔이 필요하다.

『네루는 인도 대평원과 갠지스강에, 저우 언라이(주은래)는 양쯔(양자)강에, 마리아 칼라스는 에게해에, 아인슈타인은 델라웨어강에, 장 가뱅은 지중해에, 엥겔스는 도버해협에 뿌려졌고, 일본주재 미국대사로 미일 친선의 가교역할을 했던 라이샤워는 90년 세상을 떠나며 태평양의 미일 중간해역에 재를 뿌려달라고 유언했다. 그들의 결정을 멋있다고 말하면서 당신은 왜 멋있는 결정을 피하는가』

야스다씨는 한국도 묘지난이 심각하다고 들었다면서 일본 한국 중국이 함께 이 운동을 펼쳐나가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에서는 화장을 하면 대부분 산과 강에 재를 뿌린다고 나는 설명했다. 그러나 그 요란한 무덤들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무덤을 남기지 않고 떠난 사람을 그리워 한다면 사이버묘지에서 성묘할 수도 있다. 최근 히로시마(광도)시의 간온인(관음원)이란 절은 인터넷 홈 페이지에 공동묘지를 마련, 고인의 경력과 사진을 넣은 무덤들을 개설하기 시작했다. 고인의 경력과 생전의 모습, 육성으로 녹음한 유언, 장례식 장면등을 담은 디스켓을 제작해 주는 회사도 생겼다. 무덤은 곧 구식이 될지도 모른다.

파도치는 망망대해에 몸을 뿌리는 것, 그것은 허무가 아니라 자연의 순환에 참여하려는 적극적인 의지라고 운동가들은 주장한다. 나도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려는가.<편집위원·도쿄(동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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