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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가을의 반성/나종일 경희대 교수(특별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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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가을의 반성/나종일 경희대 교수(특별기고)

입력
1997.06.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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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달간 북한점령·통치 비현실적 구상만 난립/그 경험의 반성서 부터 분단의 극복 시작해야온 세계에서 냉전이란 이제 까마득한 과거의 일이 되고 말았는데도 한반도에서는 아직도 냉전이 감돌고 있는 이유중의 하나는 우리가 과거를 충분히 소화하고 반성하지 못하는데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한반도에 있어서 분단이 극에 달한 상태가 47년전의 동란이었다면 분단의 극복도 우선은 이 경험의 반성에서부터 시작하여야 한다.

전 서독총리인 빌리 브란트는 「정치의 요체란 잔혹한 현실에서 올바른 추론을 이끌어내는 것」이라고 한 일이 있다. 우리가 과거의 실패경험을 실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 한 한국전쟁은 「끝나지 않는 전쟁」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이 전쟁에 관한 사실 발굴의 문제만이 아니고 사실을 보는 시각의 문제이기도 하다.

한국전쟁에 관련된 주제들중에 가장 관심을 받지 못한 것이 50년 10월부터 2개월여에 걸친 우리의 북한 점령과 통치 경험에 관한 것이다. 최근 남한에 보도된 「비공개 연설」에서 북한의 김정일은 『식량문제를 해결못하면 북한이 다시 한번 노예가 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것은 주민들에게 반세기전에 있었던 「고통」을 상기시켜서 당면한 문제의 탈출구를 마련하려는 것으로 북한에서 남한(또는 유엔)의 통치가 매우 나쁜 기억으로 남아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허버트 버터필드는 「불편한 과거가 있으면 이것을 파묻어 버리려고 하지말고 저녁식사에 초대하라」고 권유한 일이 있다. 비록 짧은 기간중에 일어난 일이지만 북한 통치에 관련된 문제들은 여러가지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경험이다.

첫째로 냉전기간을 통하여 「자유세계」가 공산화했던 지역을 수복하고 통치해본 유일한 경우였다.

둘째로는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역사상 되풀이되어온 강대국들 사이의 세력균형에 관한 문제였다. 이것은 단순히 서방진영과 공산진영 사이의 문제만이 아니고 각기 자기 진영 내부에서도 이견과 갈등이 엇갈리는 문제였다. 즉 서방진영 내부에서는 맹주격인 미국과 미국의 서방동맹국들 사이에 그리고 공산진영 내부에서는 소련과 중국사이에 각각 의견과 이해가 어긋날 수 밖에 없었다.

그 다음으로 한반도 내부에서는 정권차원에서 서로 정통성을 둘러싸고 각축을 벌여온 두 정권사이의 갈등문제이며 일반 민중의 차원에서는 나름대로 사태의 변동을 가늠하고 평가하며 생존을 추구하는 틀을 이루는 문제이다.

끝으로 이 문제는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현실 정치적인 연관이 끝나지 않은 「살아있는」문제로서 현재는 물론 앞으로 한반도 통일과제의 전개에 깊이 개입될 것이다.

북한 점령계획을 입안하면서 미국이나 한국 정부는 이념투쟁적인 면을 고려하였지만 이것을 실제에서 조직적인 정치교육으로 시행하지도 못하였고 현실에서 자유주의 체제의 「우월성」을 증명해 보일만한 실적을 쌓을 기회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측의 일반적인 평가는 북한에서 일반 주민이 점령통치에 우호적이었고 반공산주의적 성향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물론 북한 당국의 평가와는 정면으로 배치된다. 이 문제에 관하여서는 앞으로 정치일변도가 아니고 이념적, 단순 흑·백 논리적 시각이 아닌 탈냉전적 숙고가 필요할 것이다.

한국 정부는 북한 통치권 주장에는 열심이었지만 통치의 준비는 매우 결여된 상태였다. 또 미국을 비롯한 서방 강대국들의 구상이나 계획은 매우 비현실적인 것이어서 실제에서 이행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예를 들어 영국은 북한을 유엔이 통치하고 그 이후에 전한반도에 걸친 총선거를 통하여 이승만 정부를 대체할 새정권을 창출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는데 이것은 그저 자기네의 이상과 희망을 피력한 것에 불과하며 현지의 실정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독단적이고 무지한 생각이었다.

미국은 자기의 동맹국들과 남한 정부사이에서 균형을 취하면서 일시적으로 북한을 유엔군정아래 둔 다음에 북한에 국한된 선거를 통하여 북한을 남한에 통합시킨다는 정책을 취하였다. 이런 입장을 은밀히 통고 받은 후에 한·미간에는, 적어도 정부간 차원에서는 별 이견이 없었다. 그러나 북한 현지에서는 행정권한을 둘러싼 말썽이 많았다. 50여년전의 경험으로 미루어 보아서는 앞으로 한반도 문제에 가장 큰 관건의 하나가 우리의 정치·사회적 발전에 관한 국제사회의 평가가 되리라는 사실을 지적한다.<한국전쟁연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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