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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세스 번역 김정란 교수/‘그여자,입구에서 가만히…’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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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세스 번역 김정란 교수/‘그여자,입구에서 가만히…’ 출간

입력
1997.06.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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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적 편안함·말버릇을 거부하는 시어들김정란(44·상지대 교수)씨는 최근 베스트셀러 「람세스」의 번역자로 더 잘 알려졌지만 본업은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이다. 76년 등단해 「다시 시작하는 나비」 「매혹, 혹은 겹침」두 권의 시집과 평론집 「비어 있는 중심-미완의 시학」을 냈다.

그가 최근 세번째 시집 「그 여자, 입구에서 가만히 뒤돌아보네」(세계사간)를 냈다. 강렬한 이미지, 핏방울이 튀듯 뼈와 살의 시어가 돌출해 나오는 그의 시들은 읽기가 편치 않다.

「대낮의 편안한, 규정된 부피를 부정하는/ 칼처럼 달이 뜨고/ 바람이 잔잔히 불기 시작했다 / 살이 저며지고 있다/ 아니, 오해 마시기를/ 이건 부패가 아니다/ …/ 희디흰 뼈 눈부시게 드러나고/ 바람과 바람의 결 사이에 촘촘히 박혀 있던/ 잊혀진, 강렬한 말들이 핏줄 위에서 널을 뛰기 시작한다/ 잔혹한 외출/ 최소한의 삶으로 버티던 여자 하나, 모랫벌을 달려가/ 시퍼런 바닷물 속으로 걸어들어간다」(「잔혹한 외출」 중)

김씨는 『내 안에서 신음소리를 내며, 자신의 소외된 힘의 정당성에 대해 이토록 끈질기게 이의 제기를 하는 이 여자를, 이 영혼의 누이를, 이 부드러우면서 견고하고 못된 이 여자를 대체 어쩌면 좋단 말인가』라고 반문한 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인가, 나는 확실한 맥을 낚아챘다… 가장 많이 여자가 됨으로써 여자가 아나라 인간이 된다는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시집은 그런 여성적 영혼의 싸움, 「편안한, 규정된 부피를 거부하는 칼」 같은 시어들로 충만해 있다. 「요즈음은 도통 말하는 게 싫다/ 세상엔 너무 많은 말들이 떠돌아다녀/ 난 그게 징그러워/ 아무 것도 담지 못하는 텅 빈 깡통들/ 동동 세기말의 하수구에 떠 다니지/ 때때로 나는 텔레비를 부숴버리고 싶어/ 오 듣지 않을 권리도 좀 다오 빌어먹을/…/ 나는 세계를 버린다 나는 세계를 건너뛴다」(「동동 떠다니는 말들」 중)

『그의 시는 시적이라고 여겨졌던 것들에 대한 철저한 불신에서 시작한다. 낯익은 몇 개의 감정으로 날선 세상을 덮어가려 제 안방처럼 만들어놓지 않으면 편안할 수 없는 삶과 그 말버릇을 그의 시어들은 외면한다』(문학평론가 황현산)<하종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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