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영유권분쟁 겨냥 기지역할 톡톡히 할듯/병력 6,000명 1차 진주… 소요사태 진압 임무도홍콩의 중국 반환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중국 인민해방군의 홍콩주둔이다.
홍콩 주민들은 인민해방군 선발대 40명이 4월21일 홍콩에 도착했을 때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꼈다. 49년 대륙의 공산화 이후 홍콩으로 피신해온 본토인들은 중국군을 다시 대하면서 일종의 충격을 받고 있다. 또 89년 천안문사태 당시 중국군의 무자비한 유혈진압도 아직 이들의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홍콩주민의 이같은 반감때문인지 인민해방군 선발대는 5월1일 첫 공식 활동으로 새 군복을 선 보인 것 외에는 홍콩 생활을 철저히 비밀에 부치면서 대민 접촉을 자제하고 인수 준비에만 전념해 오고있다. 이는 해방군에 대한 현지 주민의 반감을 조금이나마 불식시키려는 전술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홍콩인들은 좋으나 싫으나 7월1일부터 중국군의 홍콩주둔을 현실로 받아들여야 한다. 중국은 현재 육·해·공군 등 6,000명의 병력을 우선 주둔시키고 상황에 따라 병력을 늘려나갈 계획이다. 중국군은 홍콩 주민들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는다는 차원에서 기지사용과 의료시설 외에는 식료품이나 군장비 일체를 선전(심천)본부로부터 수송해 사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당국은 또 홍콩주민의 우려와 공포심을 고려, 주둔군의 주임무는 대민봉사와 치안보장이라고 선전하고 있다. 중국당국은 또 주둔군 장·사병들이 모두 고학력자들이며 영어와 광둥(광동)어, 홍콩의 주민생활과 자본주의 시장경제 등 홍콩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 관한 충분한 교육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들 주둔군이 해야할 일은 우선적으로 중국의 주권수호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임무는 경찰력으로 진압하지 못할 소요사태가 발생할 경우 이를 진압하는 것이다. 일국양제에 따른 고도의 자치도 중요하고 외국의 시선도 고려해야겠지만 사회적 안정을 깨는 소요사태의 경우 군사력을 동원해서라도 진압해야 한다는 것이 베이징(북경) 당국의 의지이고 이같은 의지는 이미 천안문 사태에서 입증된바 있다.
홍콩주둔 중국군은 이같은 주권수호와 비상사태에 대비한다는 임무외에 또다른 목적도 갖고있다. 앞으로 홍콩의 스톤 커트 해군기지에 정박할 중국 해군은 4척의 미사일함을 포함한 13척의 함정으로 구성될 예정이다. 이같은 규모의 홍콩주둔 해군력은 동남아 국가들이 영유권과 해양자원 확보를 위해 해군력증강 경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중국이 항공모함을 자체 건조, 원양함대를 창설키로한 전략방침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홍콩은 영국의 아시아주둔 해군기지 역할을 해왔을뿐만 아니라 난사(남사)군도 등 영유권을 둘러싼 동남아국가들과의 분쟁이 발생하거나 대만과의 무력충돌이 발생했을 경우 결정적인 전략요충지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중국은 향후 태평양과 동아시아에서의 군사적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라도 홍콩을 동남아 및 대만을 겨냥한 해군기지로 활용하려 들 것이 분명하다.<이장훈 기자>이장훈>
◎외교관계는 어떻게/국제기구 가입 독자재량/‘홍콩·마카오 판공실’ 중 지도부와 특별채널/조약체결권 등도 위임형식 홍콩특구에 맡겨
내달 1일 정식 발족하는 중국 홍콩특별행정구(SAR)는 대중국 및 대외관계에서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SAR는 앞으로 50년간 현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유지하겠지만 베이징(북경)이나 광둥(광동)성과 마찬가지로 중국의 일개 성 또는 직할시일 따름이다.
하지만 선거형식으로 지방정부의 수장과 의회의원을 뽑고 고도의 자치를 누린다는 점에서 중국의 성이나 시와는 다르다. 우선 홍콩은 당초 대만과의 통일을 겨냥해 구상된 일국양제의 실험장일 뿐만아니라 번영의 지속여부가 현 집권층의 장래와도 직결돼 있어 베이징(북경) 당국의 특별한 관심사가 되고있다. 따라서 SAR는 「항·오(홍콩·마카오)판공실」이라는 특별 채널을 통해 중앙 지도부와 접촉 한다는 점에서 다른 지방정부와 다르다.
일반 지방 정부들은 중앙 정부의 지침을 받거나 업무를 협의할 경우 인사·행정문제는 국무원 판공실(한국의 총리실에 상당), 3,000만달러가 넘는 투자의 경우 국무원 경제관련 위원회, 외교문제는 외교부와 협의를 거치는 등 중앙과의 채널이 다양화해있다.
베이징 당국이 홍콩에 외교부의 홍콩주재원을 직접 파견하고 신화사 홍콩분사를 존속시키며 인민해방군을 주둔시켜 행정, 외교, 기업관리, 군사 등 권력을 분산시킨 것도 홍콩이 일반 지방 정부와는 다른 특수 지역임을 말해준다.
홍콩의 대중관계가 주권반환후 이같이 큰 변화를 겪는 반면 대외관계는 별로 달라지지 않는다. 홍콩은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국제기구의 가입, 국제회의 및 국제 스포츠대회 참가 등에서 독립된 지위를 누리며 이는 SAR의 헌법격인 기본법에 명시돼있고 중·영도 기존의 틀을 유지키로 합의한 바 있다.
올가을 세계은행(IBRD)과 국제통화기금(IMF)연석총회가 홍콩에서 개최키로 결정된 것은 홍콩의 이같은 지위를 증명해준다. 아·태경제협력체(APEC)와 세계무역기구(WTO) 등의 회원자격과 이들 국제기구내에서의 활동도 그대로 존속된다.
중국 당국이 외교의 큰 틀에 대해선 외교권을 행사하지만 조약체결권을 포함해 웬만한 사항은 위임형식으로 SAR에 맡기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중국은 무역분쟁등 국제적으로 미묘한 문제가 발생할 경우 관련국들을 설득시키는 등 홍콩을 전략적으로 이용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외교부 홍콩 「특파원」(주재원)이 300명의 직원을 거느리고 있는 점을 보면 중요사안에 대해서는 사전에 협의가 이뤄질 것임이 분명하다.
홍콩특구의 외교는 또 둥젠화(동건화) 행정장관의 개인적인 외교역량에 크게 의존할 전망이다. 동장관은 홍콩 장래에 대한 미국 등 서방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불식시키기 위해 반환후 서방 순방을 계획하는 등 홍콩과 중국을 위한 외교에 적극 나설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미국과 영국 등 서방국들은 최근 덴버에서 열린 서방선진8개국(G8)정상회담에서 표명했듯이 홍콩반환 이후 중국당국의 민주세력 탄압을 우려하는 분위기여서 자칫 잘못하면 외교적으로 분쟁이 일어날 소지도 배제할 수 없다.<이장훈 기자>이장훈>
◎초대 주둔군사령관 류전우/‘법대로’ 별명 원칙주의자
초대 홍콩주둔 인민해방군 사령관 류전우(유진무·53) 소장은 「법대로」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원칙에 충실하다. 일국양제라는 복잡다기한 홍콩 사회를 이끌기 위해서는 원칙론자인 그가 적임자라 할 수 있다.
17세때 입대한 그는 그러나 야전보다는 주로 교육과 행정분야에 몸담아 강한 외모와 달리 「부드러움」도 지니고 있다. 실제로 서방 언론은 그를 노련하면서도 양식있고 호감가는 신사로 묘사한다.
유소장은 89년 천안문사태 이후 홍콩 주민에게 공포와 증오의 대상이 된 해방군의 이미지 개선이 자신의 최대 임무라고 말한다. 그는 학력이 높고 교양있는 장병중에서 엄선된 주둔군이 이를 무리없이 수행할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다. 그러나 주둔군 관리와 유사시 치안확보라는 그의 임무는 홍콩의 미래와 직결되는 간단치 않은 문제다. 때문에 그는 부패의 온상처럼 인식된 해방군의 오명을 씻기 위해 월 145달러라는 박봉에도 도덕성에서 모범을 보여야 한다. 또 경찰력으로 감당키 힘든 소요사태가 발생할 경우 이를 무력진압해야 하는 악역도 맡아야 한다. 해방군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중국 정치 특성상 홍콩의 앞날도 그의 행보에 따라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이종수 기자>이종수>
◎판사처 주임 내정 장언주/반환협상 이끈 외교거물
반환후 홍콩의 외교업무를 관장할 외교부 홍콩판사처 주임으로 내정된 장언주(강은주·58) 전 주영대사. 그는 외교부장 물망에 오를 정도로 중국안팎에서 인정받는 32년 경력의 실력파 외교관이다. 서방외교관들은 그를 온화한 성격에 빈틈없는 영어실력, 그러나 「노(NO)」라고 말할 줄 아는 외유내강형의 인물로 평가하고 있다.
그는 12년간 주영대사관에서 근무한 중·영 관계 전문가로 84년 「홍콩반환에 관한 중·영 공동선언」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일찍이 중앙정부로부터 실력을 인정받았다. 90년 외교부 서구사장(국장급), 91년 외교부 부부장으로 고속승진했으며 93년 홍콩정청의 민주화개혁을 놓고 중국대표로 영국과 담판, 첸지천(전기침) 외교부장의 신임을 얻었다. 최근에는 10월께 정치국원 겸 부총리로 승진예정인 전외교부장 후임 물망에 올랐다.
장쩌민(강택민) 국가주석과는 장쑤(강소)성 동향출신인 그는 베이징(북경)외국어대를 졸업한뒤 미 하버드대에서 국제관계학을 전공했다. 65년 외교관으로 첫 출발한 그는 67년 문화대혁명의 광기를 비켜갔고 대만과의 외교전, 홍콩반환협상 등을 담당하기도 했다. 상하이(상해)출신인 부인 주만리(주만려)씨도 외교관으로 현재 네덜란드주재 대사로 있다.<윤태형 기자>윤태형>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