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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에선 국산품의 자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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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에선 국산품의 자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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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06.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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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리쎄븐 가방/나이키·리복 등 이어 이스트팩 공세에 휘청/90년대이후 매출 하락학창시절의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학생용 4각 가방과 「007가방」으로 90년대초까지 가방의 대명사로 통했던 「쓰리쎄븐 가방」. 중소 가방업계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켜 온 이 업체가 유명 외국브랜드에 밀려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중소업체의 고유영역이던 가방산업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80년대 교복 자율화 이후. 외국 유명브랜드가 봇물처럼 밀려 들어 오면서 중소가방업체들이 하나 둘 문을 닫기 시작했다. 「쓰리쎄븐 가방」도 「나이키」 「리복」 「아디다스」 「휠라」 등 외국 유명 스프츠용품의 진출로 시장을 크게 잠식당했지만 핸드백 서류가방 여행용가방 골프백 유아용가방 등 다양한 품목을 생산하며 힘겹게 버텨왔다.

그러나 95년부터 밀려 들기 시작한 미국산 학생가방의 공세는 중소 가방업계의 뿌리를 뒤흔들었다. 「이스트팩」으로 대표되는 배낭형 학생가방은 대학가는 물론 중·고교, 심지어 초등학교에까지 파고 들어 학생용 가방시장을 단숨에 석권했다.

『90년대초 외국 유명 스포츠용품의 등장에다 최근엔 수입브랜드 선풍으로 남대문과 동대문시장 등지의 가방 도소매 거래처가 모두 끊겨 버렸어요. 백화점이나 대형 할인매장으로 납품을 하고 있지만 매출액의 30%이상을 매장임대료로 내야 하고 아예 매장 철수를 요구받는 경우도 있어 버티기가 힘듭니다. 재고가 쌓이고 자금회전이 안되니 덤핑으로라도 넘길 수 밖에요』 「쓰리쎄븐 가방」 추영식 이사는 「이스트팩」에 이어 「잔스포츠」 「아웃도어」 등 다른 외국브랜드들도 속속 침투, 대학생 가방의 90%가 외국브랜드일 것이라 말했다. 중국산 가방수입도 점차 늘어나 중저가 시장의 잠식도 심각한 상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90년대 이후 매출이 격감, 지난해는 95년에 비해 매출이 절반 이하로 줄었다. 감원을 통해 인건비 부담을 줄이고 일본산 자동화 기계를 도입, 수공업 수준에서 탈피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전망은 그리 밝지 못하다.

추이사는 『올 신학기에도 신세대들을 겨냥 「디그니티」 「젤러트」 등 다양한 브랜드를 내놓았지만 외국 유명브랜드만 찾는 외제선호 의식의 벽을 넘지는 못했다』며 『이대로 가다가는 중소 가방업체들 대부분이 무너지고 한국시장은 외국브랜드로 가득찰 것』이라고 안타까워 했다.<배성규 기자>

◎코발트 다리미/우수한 품질불구 브랜드 인지도 낮아/40년 시장개척 ‘흔들’

외국업체의 집요한 국내시장 공략으로 허물어진 대표적인 품목이 소형가전제품이다.

90년대 초반까지 국내 시장 점유율 70% 이상을 자랑했던 고유 브랜드 「코발트 다리미」도 필립스 내쇼날 등에 대부분의 시장을 내주고 말았다. 40년동안 부단한 노력으로 개척한 시장이었지만 외국기업에 빼앗기는 데는 불과 2년여밖에 걸리지 않았다. 다리미 단일품목으로 외길을 걸어 온 코발트전기(주)는 『시장개방의 거센 여파를 예상했으나 발빠르게 대처하지 못해 자구책 마련이 늦었다』는 후회속에서 뒤늦게 품목 다양화, 해외진출 등을 통해 회생을 꾀하고 있지만 그 또한 어려움이 많다.

국내 최초로 다리미제품 KS마크를 획득했던 「코발트다리미」는 대기업에 주문자상표 부착생산(OEM)방식으로 납품할 뿐 아니라 자체 판매망까지 갖춘 국산 브랜드. 95년 이전에는 다리미 단일품목 매출이 100억∼120억원에 달했다. 필립스 등 외국기업이 본격적으로 시장개척에 나선 뒤 매출이 70억원 수준으로 뚝 떨어졌고 공장가동률도 5년전의 50%를 밑돌고 있다.

소비자보호원 등에서 실시하는 품질 검사에서는 제품 내구성, 안전성, 사후관리(AS) 등이 필립스 등에 뒤지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으나 브랜드 인지도와 세련된 디자인을 강점으로 밀고 들어온 외국제품에 큰 타격을 입었다. 동남아 중국 등의 값싼 노동력을 활용하는 다국적 기업에 맞설 가격경쟁력도 없었다. 외제 선호에 물든 소비자들은 품질은 뒷전이고 「같은 값이면 외국산」을 선택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지난해 우리 경제를 덮친 심각한 불황으로 꽁꽁 얼어붙은 내수시장은 더욱 급격한 매출감소를 가져왔다.

코발트전기(주) 김재찬 상무이사는 『「한국 다리미의 자존심을 지킨다」는 생각으로 99년까지 시장탈환을 목표로 경쟁력 제고에 매진하고 있다』며 『시장개방 이후에도 중소제조업체들이 살아 남을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적인 지원책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나마 코발트전기(주)는 우수한 품질과 전통의 자체 유통망을 갖추고 있어 살아남을 수 있었다. 경기가 좋을 때는 30여개에 달하던 국내 소형가전업체들은 시장개방 이후 모래성이 허물어지듯 무너져내렸다. 아직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업체는 손꼽을 정도. 이들 중 일부는 이미 공산품 멸종보고서에 이름이 올랐는지도 모른다.<김경화 기자>

◎중국산 대공세/농산물·섬유 등 작년 86억불 들여와/소비재수입 절반 차지/미·일 등 수출도 가격경쟁력 뒤져 중국에 점유율 역전

외국산의 국내시장 잠식률이 높다 싶은 부문의 중소업체에 그 이유를 물어보면 대부분 『중국산 때문에 죽을 맛』이라고 대답한다. 중국산이 국내시장에 얼마나 반입되고 국내기업에 얼마만큼의 피해를 주고 있을까.

96년 대중국 수입은 95년보다 15.4% 증가한 86억달러. 96년 한해동안 전체 수입이 1,502억달러였으니 중국산 수입은 5.7%에 불과하다. 또 대중국 수출은 114억달러로 오히려 28억달러의 무역흑자를 냈다.

이런 외형상의 통계로는 중국을 두려워 할 이유가 전혀 없어 보인다. 그런데 왜 기업들은 「중국 타령」을 하는 것일까. 사정을 들어 보면 그럴만도 하다. 96년 우리나라 총수입액의 11.2%가 소비재 수입이었다. 중국산 수입액은 대부분 소비재다. 따라서 「중국산 수입 5.7%」는 전체 소비재 수입의 절반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산은 대개 농산물 저가의류 완구 섬유 가전제품 등이다. 과거 낮은 인건비와 가격경쟁력을 무기로 우리가 세계 시장을 점유했던 품목이다. 따라서 중국 위협은 중소기업의 피부에 와 닿을 수 밖에 없다.

중국제품의 강세는 국내시장 소비 양극화 현상과도 관련이 있다. 소비자들은 선진국의 유명브랜드나 고급제품을 찾거나 아예 값싼 소비재를 찾아 알뜰구매를 하는 극단적인 소비행태를 보이고 있다. 중가 위주인 국산품은 진퇴양난이다.

세계시장에서도 마찬가지. 미국 전체 수입시장에서 80년 후반 국산품의 점유율이 4.6%였으나 96년 2.9%로 하락한 반면 2%에 불과하던 중국산은 96년 6.4%에 달했다. 88년 일본 수입시장에서 국산 점유율은 6.3%였으나 96년 4.6%로 하락했다. 반면 중국산은 5.3%에서 11.5%로 점유율을 늘렸다. 국내외에서 국산품이 중국산에 박살이 나고 있으니 중국이 무섭다는 소리가 자연스럽게 나오고 있는 것이다.<조재우 기자>

◎비제조업도 ‘멸종’ 예외없다/금융·유통·건설 등 기술·서비스 낙후 개방따른 대지진 예고

국내외 시장환경 변화의 거센 도전을 받고 있는 것은 공산품 뿐만이 아니다. 금융 유통 건설 등 비제조업 부문에서도 멸종 카운트다운이 이미 시작됐다.

경제의 대동맥격인 금융업은 「개혁, 아니면 절멸」의 위기에 몰려 있다. 98년부터 외국은행과 증권사의 국내진출이 허용되는 등 금융시장 완전개방이 코앞에 닥쳐왔는데도 뿌리깊은 관치금융 관행과 부패고리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내 금융업은 외국의 다국적 금융업체들에 비해 자금 동원력이 형편없이 뒤떨어질 뿐만 아니라 적절히 자금을 운용하는 금융기술이나 대고객 서비스 수준도 크게 뒤진다. 이 상태에서 외국 업체들이 몰려 오면 큰 타격을 입을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정부 주도로 추진중인 최근의 금융개혁도 「빅뱅」급 개혁 없이는 금융업의 기반 자체가 허물어 질 것이란 우려에서 나왔다.

지난해 시장이 완전 개방된 유통업계도 유통 선진국의 도전에 부닥쳐 있다. 이미 국내에 본격 진출한 「까르푸」(프랑스) 「마크 앤드 스펜서」(영국) 등 대형 유통업체가 국내 시장을 급속도로 잠식하고 있고 국내 업체끼리의 경쟁도 한층 치열해지고 있다.

국제적인 구매망을 갖춘 다국적 유통업체들은 다양한 제품과 최상의 서비스로 소비자들을 급속도로 흡수, 이미 중소규모 유통업체들에게 큰 타격을 입혔다. 재벌그룹의 대형백화점이나 할인전문점 등이 역마진 출혈 경쟁으로 근근히 버티고 있는 정도다. 대한 상공회의소 민중기 이사는 『내년께부터는 중소 유통업체 뿐 아니라 대형업체들도 경영 부실로 인수합병(M&A) 대상이 되거나 문을 닫는 상황이 나타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건설부문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나라가 특히 취약한 설계 감리 사업관리(CM) 등 고부가가치 부문에서 선진국과 경쟁할 경우 살아 남을 만한 기술경쟁력을 갖춘 업체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올해 시장개방이 본격 시작되면서 고속철 신공항사업 등 대규모 프로젝트의 상당 부분이 이미 외국업체에 돌아갔다.

이대로 가다가는 우리 업체는 수익성이 낮은 시공 분야로나 밀려나리라는 우려도 있다. 수주 시공 감리 등에서 투명성 보장이 어려운 우리 건설업계의 부패구조도 경쟁력을 취약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윤영선 기획조정실장은 『외국업체와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생산환경에 적절히 대응하는 경영 능력을 기르는 한편 국제시장에서 살아 남을 수 있는 특화기술을 키우는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김경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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