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혁신통한 구조조정 필수”/“양적 확대 급급 산업불균형·낮은 경쟁력 초래/과학기술생산연계 고부가첨단산업 육성을”35년간 국내 과학기술계에 몸담아온 최형섭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장은 『정치온실에서 커온 경제가 이제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세계경쟁무대에 나가 활동해야 할 때』라며 『기술혁신을 통한 산업구조 조정이 필수적』이라고 지적했다. 최회장은 특히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과학-기술-산업으로 연결되는 기술개발체계 구축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과외를 철폐하고 전문대학을 확대양성하는 등 교육제도의 대폭적인 개선만이 건전한 2세를 양성할 수 있다는 교육개편론도 제시했다. 「19세기」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원리원칙주의자인 그는 『사회지도층부터 국민까지 모두 다시 시작하는 자세로 21세기를 맞이하면 가능성은 무한하다』고 확신했다.<편집자 주>편집자>
― 사회전반에 침체와 혼란이 거듭되고 있습니다. 이같은 현상의 출발점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근본원인은 이 사회가 민주화하는 과정에서 사회 기강과 윤리의식이 해이해진 데 있다고 봅니다. 민주화를 오만과 방임으로 이해한 것이 현재의 상황을 초래한 것이지요. 사회전체를 생각하기 보다는 자신만을 위한 이기심이라든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조건 돈만 벌면 된다는 황금만능주의 등 사회성이 결여된 생각과 행동도 모두 여기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1인당 국민소득이 1만달러를 겨우 넘어섰는데 소비행태가 선진국 수준을 넘어서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치인 및 경제인사 등 사회지도층은 더 심각한 지경입니다. 뿌리깊은 정경유착에만 서로 의지한채 국민들을 도외시하고 있는 것이 지금까지의 실태였습니다. 따라서 정치 경제의 발전이 있을 수 없고 국민도 등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리더십이 부족한 것도 지금 이 상태를 초래한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 요즘 경제상황은 개선조짐이 보이지만 여전히 늪에 빠져 있습니다. 구조적 모순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는데 한국경제의 현실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이룩해놓은 발전기반을 밑거름으로 선진공업국을 향해 도약해야 할 전환점에 와있습니다. 하지만 과거에 비교적 소홀히 다루어왔던 노사문제, 물가상승을 위시한 인플레이션문제 등이 경제성장의 저해요인으로 뚜렷하게 부각되고 있습니다. 또 양질의 기능인력 부족, 산업발전에 필요한 에너지 및 자원부족, 국민생활수준 향상과의 괴리 등 전반적인 문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특히 기술진보에 의한 국민총생산(GNP) 성장 기여율이 미국 일본 프랑스의 3분의 1이 안될 정도로 매우 저조합니다. 정부의 지나친 보호아래 기술보다는 설비투자확대에 치중한 나머지, 각 부문간 불균형이 심화하고 산업구조가 취약해 진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국제경쟁력이 약해지고 내실성이 결여된 외형적 성장의 영역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봅니다』
― 산업경쟁력이 주요 이슈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경쟁력 강화방안이 있다면 무엇을 꼽을 수 있을까요.
『우리경제가 내포하고 있는 취약점을 해소하는 실마리는 산업구조의 전환과 이에 필요한 기술의 향상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기술혁신을 통한 생산성 향상, 제품의 고급화, 신제품 개발 등으로 수출력을 계속 강화할 수 있도록 산업구조를 개편하는 길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기술혁신을 통한 경쟁력 신장의 예를 일본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일본은 제강기술의 개발로 생산성을 높여 미국과 유럽을 궁지에 몰아넣었으며, 카메라 TV 자동차의 품질향상으로 세계 시장을 석권했습니다. 또 VCR 등 가전제품의 개발로 구미업계를 놀라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하루 속히 집중적으로 기술혁신을 해야 합니다』
― 기술혁신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신다면.
『기술혁신은 두말할 것도 없이 부단한 연구개발활동의 결과입니다. 하지만 그 방법론에 대해서는 의견이 많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크게 3가지의 방법론을 제시하고 싶습니다. 우선 우리가 현재 도입하고 있는 외국 기술의 양을 10배이상 늘려야 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지금보다 더 많은 모방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모방은 학습과정의 일환으로 모방을 통한 능력배양은 시간, 노력, 자본을 절약할 수 있으며 세계 무역시장에서 즉각적인 경쟁력을 가져다 주기 때문입니다. 물론 「창조를 위한 모방」이어야 합니다. 두번째로는 두뇌인력의 확보입니다.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도입된 기술과 결합,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 수 있습니다. 두뇌인력이란 단순히 박사 석사뿐 아니라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모든 사람입니다. 여기서 새삼 강조해야 할 것은 두뇌인력의 개발은 양이 아니라 질이라는 점입니다. 마지막으로 주변여건 또는 조직행태의 변화입니다. 결국 조직관리와 경영형태가 새로운 아이디어의 자유로운 유통을 조장하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만들어져야 합니다』
― 정부는 벤처기업 육성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어떤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해야 할까요.
『벤처산업은 말 그대로 모험적이면서도 가능성이 큰 사업들 입니다. 벤처산업을 꾸준히 지원하고 육성해야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벤처산업을 국가 경제의 주력부문으로 삼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벤처산업은 큰 성공으로 이어질 수 있지만 그만큼 실패할 가능성도 매우 크기 때문입니다. 성공을 전제로 한다면 그 것은 벤처산업이 아닙니다. 외국에서는 벤처기업의 성공률을 5%로 보고 있습니다. 나머지 95%는 모두 실패했다는 것이죠. 우리나라 경제를 놓고 도박을 할 수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벤처산업은 경제불황의 돌파구가 아니라 국내 경제에 신선한 충격을 줄 수 있는 보조부문으로 인식하고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이와함께 벤처산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산학연이 일체되는 산업구조를 갖추어야 합니다』
― 우리나라는 자본이나 자원이 한정돼있습니다. 투자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려면 어느 산업부문을 집중육성해야 할까요.
『덴마크의 경우 낙농국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덴마크 GNP의 95%는 공산품이 차지합니다. 예로서 전투기 F16 부품의 40%를 덴마크의 중소기업들이 공급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농촌에 가면 200∼300명의 종업원을 둔 정밀기계업체가 수두룩 합니다. 덴마크를 발전모델로 삼자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도 정밀기계산업, 컴퓨터시스템 등 고부가가치 산업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집중육성해야 할 것입니다』
― 우리나라 사교육비는 해마다 눈덩이처럼 늘어나고 있습니다. 교육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바람직한 방향은 무엇입니까.
『최근 단과대학의 허용기준을 완화한데 이어 내년부터 이공계 대학정원을 증원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대학졸업자만 계속 늘린다고 교육문제나 경제난이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더구나 실험장비는 물론 교수도 부족한 상황에서 학생만 늘린다면 교육환경은 더욱 악화할 것입니다. 대학은 오히려 숫자를 줄여야 합니다. 대학은 졸업장을 따는 곳이 아니라 학문을 연구하는 곳으로 육성하고 꼭 필요한 사람만 가도록 해야 합니다. 대신 전문대학 과정을 폭넓게 만들고 고교 교과과정을 사회에 적합하도록 조정해야 합니다. 또 입시와 관련된 과외는 모두 폐지해야 합니다. 사회지도층부터 사교육의 폐해를 절감, 과외폐지에 솔선수범해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강제적인 조치를 취해도 된다고 봅니다. 궁극적으로는 사교육에 들어가는 막대한 비용을 공교육에 끌어들여 별도의 사교육이 필요 없게 만들어야 합니다』
―21세기를 앞두고 정보화 열풍이 점점 거세지고 있습니다. 정보화를 추진하는데 가장 먼저 해결할 일은 무엇입니까.
『우리나라는 현재 정보사회 정착을 위한 준비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컴퓨터 대중화가 가장 선결과제입니다. 이를 위해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고 행정전산화(OA) 생산자동화(FA) 경영정보구축 등 전국 정보네트워크를 하루 속히 마련해야 합니다. 이와함께 교통관리체제 개발, 통신시스템 근대화, 유통기구의 시스템화 등 일련의 사회개발적인 과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정보산업전문요원 양성, 컴퓨터 관련기술개발 촉진, 정보지향적인 사회환경정비 등도 급선무입니다』
― 국내 과학계에 오래 몸담아 오시면서 느낀 국내 과학기술의 현주소를 평가해 주십시오.
『기술적인 측면에서 보면 경공업 위주의 노동집약적 산업, 석유화학, 제철같은 장치산업, 가전 조선 자동차 등 조립산업에 필요한 기술은 수준급입니다. 특히 경공업 기술은 남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될 정도이고 반도체 제철 등은 일류급에 속합니다. 그러나 기술집약적이고 두뇌집약적인 소위 첨단산업에 필요한 기술은 아직 요원한 상태입니다. 기술개발력 수준을 선진국과 비교하면 미국을 100으로 할 경우 서독은 35.6, 일본은 30인데 반해 우리나라는 0.2에 불과한 것이 현실입니다. 결국 우리나라 과학기술도 내실성이 결여된 외형적 성장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이같은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지요.
『과학기술의 중요성은 삼척동자도 압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과학기술의 중요성이 말로만 오갈 뿐 제대로 실천에 옮겨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치가 불안하다보니 효과가 당장 나타나지 않는 과학기술은 항상 뒷전일 수 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또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루면서 과학―기술―생산이라는 3각 체계를 제대로 연계시키지 못한데도 원인이 있습니다. 조속한 시일내에 이같은 3각 체계가 연계되도록 전체적인 경제구도를 다시 그려야 할 것입니다』
― 북한의 경제상황이 갈수록 악화하고 있습니다. 국가 차원에서 어떤 식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북한이 개방체제를 선택하도록 유도해야 합니다. 형식적인 협력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먹고 살기 힘든 북한 경제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겁니다. 북한은 노동집약적 산업체제에서 조립산업으로 이행해가는 단계이기 때문에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노하우를 알려준다면 충분히 도움이 될 것입니다. 물론 필요한 기술도 이전해주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합니다. 북한이 개방으로 나아간다면 통일은 자연히 이뤄질 것입니다』
― 국민이나 사회지도층에 하시고 싶은 말씀은.
『구태의연한 생활자세를 떨쳐버리고 새로운 각오로 다시 시작합시다. 모든 국민이 건전한 인생관을 바탕으로 자신의 목표를 향해 전력투구할 때 우리나라는 비로소 제자리를 잡게 될 것입니다. 또 사회지도층 인사들은 다른 사람보다 덜 자고 덜 쓰면서 애쓰는 꾸준한 노력과 인내력, 물질만능주의에 휩쓸리지 않는 지조가 필요합니다. 나보다는 우리의 일, 우리의 이익보다는 남들의 장래를 염려하는 희생을 해야 합니다』<인터뷰=선년규 기자>인터뷰=선년규>
□약력
▲20년 경남 진주시 본성동 출생
▲44년 일본 와세다대 이공학부 졸업
▲58년 미국 미네소타대학원 공학박사
▲59∼61년 국산자동차주식회사 부사장
▲62∼66년 원자력연구소장
▲66∼71년 한국과학기술연구소장
▲71∼78년 과학기술처장관
▲76년∼ 학술원 회원
▲84∼87년 포항제철 고문
▲87년∼ 산업과학기술연구소 고문
▲88∼92년 유엔 과학기술개발자문위원회 위원
▲91∼93년 국가 과학기술자문회의 위원
▲96년∼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