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효과 자명함에도 집단이기로 차일피일/조속한 의약분업만이 의료개혁 출발점 될것의약분업은 말 그대로 진료와 처방은 의사가, 조제·투약은 약사가 담당하는제도이다. 의약분업은 바로 각 직능이 자신의 전문적인 역할을 효과적으로 수행함으로써 보다 양질의 의료를 제공할 수 있게 하는 제도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선 의사의 처방전이 없어도 약국에서 증상을 말하면 약사가 이에 맞춰 약을 조제·투약해주고 있고, 병·의원에서 역시 의사가 진단·처방과 함께 조제까지 담당하고 있다. 물론 약사가 없는 대부분의 병·의원에서 실제로 조제를 담당하는 것은 의사가 아니라 간호사 혹은 다른 비전문직이다.
이처럼 의와 약에 대한 서비스가 분리되지 않고 혼재되어 제공되는 상황에서는 전문성의 결여로 약물이 오용될 가능성과 함께, 이윤동기가 개입됨으로써 약물이 남용될 가능성도 커지게 된다.
우리나라는 세계 어느나라 보다도 약물사용량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체 보험진료비중 약제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30%를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가들의 10% 내외 수준과 비교해 매우 높은 수준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우리나라의 항생제 내성균주 발생률이 세계 최고라는 점도 약물 오남용의 한 증거가 된다.
의약분업을 실시하면 의사는 처방전을 작성하고 약사가 이에 따라 조제·투약하게 되어 처방전이 병원 밖으로 공개된다. 따라서 의사는 처방에 책임감을 느끼게 되며, 약사에 의하여 처방에 대한 감사(Checking)가 이중으로 이루어져 약물사용에 대한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다. 전문적인 검토를 거쳐 전문의약품으로 분류된 것은 의사의 처방전이 있어야만 구입이 가능하므로 자가투약에 의한 오·남용을 방지할 수 있다.
또한 의약분업시 처방이 상품명이 아니라 성분명으로 작성된다면 의사와 약사는 특정 제약회사의 약을 사용함에 따르는 이윤에 좌우되지 않고 환자에 충실한 의료활동을 하게 된다. 이에 따라 제약회사의 지나친 판매경쟁이 사라져 의약품의 가격이 인하되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의사로서는 매약에 따르는 이윤이 없어지므로 과다한 처방을 내리게 만든 경제적인 동기가 줄어들게 된다. 즉 필요이상의 처방은 약사에게 돌아갈 몫만 크게 하기 때문에 의사는 필요한 약만 처방하므로 의약품의 오남용의 소지는 줄어들게 된다. 약사의 임의조제권 또한 없어지므로 약사에 의한 불필요한 약의 권유가 크게 억제된다.
뿐만 아니라 의약분업 하에서는 조제 외에 상담, 복약지도와 같은 약국 서비스영역이 부각될 것이므로, 이를 통해 소비자가 얻을 수 있는 만족의 정도도 높아질 것이다. 이처럼 의약분업의 실시는 의사와 약사에게는 상당한 금전적 손해를 안겨 주지만 그동안 소비자에게 가해졌던 과도한 의약품 사용과 비싼 가격으로 인한 피해와 불이익을 감소시킬 것이다.
의약분업 실시에 따른 긍정적인 효과가 많다는 것이 자명함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의약분업이 차일피일 미뤄져 온 것은 무엇보다도 의사와 약사의 집단적인 압력에 의해 정부가 국민을 위한 결단을 내리지 못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의약분업에 대한 시범사업이 이미 84년에 행해졌었고, 관련 전문가 누구나가 의약분업의 당위성에 대해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91년 7월 의약분업을 실시하기로 했다가 무산된 경험을 갖고 있다. 당시 양 이해집단과 정부는 의약분업의 전제조건이 갖추어지지 않았다는 근거를 제시했다. 그러나 이제 다시 그런 말을 반복하기에는 너무 오랜 시간이 흘렀다. 의지만 있었다면 10년이 훨씬 넘는 기간은 전제조건들을 마련해나가기에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오히려 의약분업의 조속한 실시를 가로막는 그 전제조건이라는 것은 의약분업을 실시함으로써 더불어 마련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제 국민의 건강권이 이익집단의 볼모가 되는 후진적인 의료제도에서 탈피하여야 할 시기가 도래했다. 보건의료의 선진화니, 개혁이니 하는 구호들이 사실 거창한 것일 필요는 없다. 의약분업과 같이 국민의 건강권을 보호할 수 있는 정책의 시행이 바로 개혁이며 21세기 선진화를 위한 진정한 변화가 되는 것이다. 한약분쟁과 같은 혼란을 통해 99년까지 어떻게든 실시하기로 법률에 명시된 의약분업의 올바르고 조속한 시행이야말로 그동안 유보되어 왔던 의료개혁의 첫출발이 될 것임을 확신한다.<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서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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