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진출 기대 외국기업 대부분 “계속 남겠다”/경기회복세… 남중국 경제수도 부상여부 주목홍콩의 중국반환을 며칠 앞둔 요즘 홍콩 증시는 폭등세를 보이고 있다. 홍콩 증시의 항성(항생)지수는 최근 사상최초로 1만5,000을 넘어서는 등 활황세를 타고 있으며 거래량도 폭등하고 있다.
이같은 증시의 활기는 홍콩경제에 대한 낙관론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홍콩경제가 반환후 적어도 5, 6년은 순항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중국지도부가 홍콩의 지속적인 안정과 번영을 지상과제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홍콩을 영국 식민지 시절보다 더욱 발전시켜야 한다는 정치적 부담을 안고 있다.
또한 홍콩의 경제가 중국 경제와 직결될 정도로 맞물려 있기 때문에 1,200억달러의 외환보유고중 300억달러를 홍콩 외환 안정기금으로, 30억달러를 증시 안정기금으로 각각 준비해두는 등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 중국은 특히 홍콩의 주권반환을 맞아 홍콩 마카오 대만을 포괄하는 대중화경제권 건설을 구상하고 있다. 이는 금융과 정보 서비스 중심지인 홍콩을 핵으로 광둥(광동)성 경제특구들과 함께 구축된 화난(화남)경제권을 더욱 발전시킨다는 전략이다.
홍콩 경제는 이같은 낙관론에 힘입어 최근 2년간 부진했던 경기가 회복세로 돌아섰다. 96년 1·4분기에 3.3%까지 떨어졌던 경제성장률이 96∼97 회계연도에는 4.7%로 증가한데 이어 1·4분기에는 5.5%까지 상승했다. 홍콩 정청이 30일 반환식 직전 홍콩특구에 넘겨줄 재산도 외환보유고 700억달러, 재정잉여금 450억달러, 토지기금 150억달러 등 모두 1,300억달러에 달해 당분간은 별다른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때문에 식민지 경영의 상징인 자딘 메디슨사를 비롯한 영국자본들도 홍콩에서 철수하려던 종전의 경영전략을 변경, 홍콩과 중국에서 비즈니스를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7월1일 공교롭게도 창사 165주년을 맞는 자딘은 84년 중국과 영국간에 홍콩반환에 관한 공동성명(홍콩반환협정)이 발표됐을 때 본사의 법인 주소를 영국령 버뮤다로 옮겨 베이징(북경) 당국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지만 최근 헨리 커스웍 회장이 직접 주룽지(주용기) 중국 부총리를 만나 화해 제스처를 보이기도 했다.
케이블&와이어리스사를 비롯해 캐세이 퍼시픽, 드래곤 에어 등 영국계 기업들은 중국과의 합작을 통해 홍콩내 기업활동을 보장받는 동시에 대륙 진출의 기회를 노리고 있다. 다른 외국 기업들도 마찬가지이다. 홍콩에 진출한 외국기업의 지역본부 및 사무소는 85∼89년 연평균 122개에서 90∼96년에는 168개로 증가했고 올초 홍콩내 영국 상공회의소 340개 회원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2000년이후에도 홍콩에 남아 사업을 계속하겠다고 답변한 회원사가 93%에 달했다.
하지만 식민지 경영에서 독과점의 특혜를 누려온 영국 자본은 필사적인 몸부림에도 서서히 쇠락의 길을 걸을 것이 분명하다. 대신 화교자본이 홍콩 경제의 중심축이 될 것이라는 점도 자명하다. 홍콩 증권 당국에 따르면 현재 상장사를 대상으로 국적별 5대 자본의 주식시가를 비교해 본 결과, 리카싱(이가성), 궈빙샹(곽병상) 형제 등 5대 화교자본의 주식 시가총액은 1조853억 홍콩달러(119조원 상당)로 전체 증시의 30.90%를 차지, 홍콩내에서 화교자본이 영국자본보다 우위를 점하고 있다.
홍콩의 유망 사업도 기존의 소매업 신문방송업 교육업 요식업 영화업 대신 컴퓨터와 통신 등 첨단산업 금융·보험업 호텔 토목건설 부동산 중개업 등이 새로운 유망 업종으로 떠오르고 있다. 중국경제의 견인차가 되고 있는 광둥성과 더불어 홍콩이 남중국지역의 경제수도로 부상할 수 있을 지가 주목된다.<이장훈 기자>이장훈>
◎홍콩 3대 재벌/창장·중신타이푸·신훙지그룹 ‘막강 파워’
1840년대 홍콩에는 최고지도자라는 의미인 「타이판(대반)」이 최고의 부와 권력을 누렸다. 이들은 아편 비단 생사 등을 수입하며 엄청난 부를 쌓았으며 사병을 거느리는 등 세력 또한 막강했다.
150년이 지난 지금 홍콩반환을 앞두고 「3대 재벌」이 타이판의 명맥을 잇고 있다. 이들은 경제계 뿐 아니라 정계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 「상인치항」이라는 말을 실감케 한다.
리카싱(이가성·68) 창장(장강) 그룹회장은 홍콩의 카네기로 불리는 인물. 이회장이 소유한 창장실업과 허치슨왐포아 홍콩전기 등 3개 기업의 총자산은 지난해 기준으로 약423억 달러로 홍콩에서 최고다. 14세때 중학교를 중퇴, 빈손으로 출발한 그는 50년대말 조화사업에 뛰어들어 대성공을 거뒀으며 60년대 부동산으로 업종전환, 승승장구했다.
84년 중·영 협상때 덩샤오핑(등소평)을 도왔으며 중국지도부와도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최근 홍콩특별행정구 주비위 부주석을 맡는 등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룽즈젠(영지건·55) 중신타이푸(중신태부)그룹 회장은 1942년 상하이(상해)생으로 룽이런(영의인) 중국 국가부주석의 장남. 78년 홍콩에서 5,000만원으로 사업을 시작, 기업자산 약 2조원, 개인재산 4,500억원의 거부가 됐다.
그는 아버지의 도움으로 87년 시틱(CITIC) 홍콩법인을 설립, 90년 CITIC 퍼시픽을 증시에 상장하면서 재계에 두각을 나타냈다.
궈빙샹(곽병상·46) 신훙지(신홍기)그룹 회장은 지난달 발행된 경제월간 캐피털지에서 리카싱을 제치고 가장 재산이 많은 화교기업가로 선정된 인물.
부동산 증권 교통 의류 등을 망라한 신훙지그룹의 올 주식평가액은 241억달러. 가족재산도 115억달러로 홍콩재벌중 선두다.<윤태형 기자>윤태형>
◎역사굴곡 딛고 우뚝 신창그룹 일가/39년 창업후 일군 진주에 한때 문닫아/문혁땐 되레 대형콘도사업 공격경영/‘반환선언’ 불황늪 구조조정으로 뚫어
홍콩의 기업사는 홍콩역사 그 자체다. 홍콩의 신창그룹 제프리 예(엽) 회장 일가의 삶도 홍콩의 시련과 번영의 역사를 대변하고 있다. 38층의 세계무역센터, 홍콩대 과학기술센터 등을 건설한 신창그룹은 홍콩 성장에 있어 건설부문 선두주자이자 상징이었다.
신창그룹의 1세대는 현회장의 부친 KN 고드프리 예. 1930년대초 상하이(상해)시 공무원이었던 그는 신싱(신흥)건설을 창립했다. 그는 우여곡절 끝에 회사를 동업자에게 넘겨주고 다시 신창그룹을 창업, 1939년 홍콩에 진출했다. 1941년 일본군이 홍콩에 진주하자 그는 일제하에서 사업을 한다는 것은 결국 일본을 도와주는 결과가 된다고 판단, 이듬해 회사문을 닫고 상하이로 돌아갔다. 45년 일본군이 물러간 뒤 그는 홍콩에 돌아와 홍콩 재건에 앞장섰다. 55년엔 제프리 현 회장이 하버드대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귀국, 가업을 이었다.
67년 문화대혁명은 이들에게 분수령이었다. 문혁의 여파로 파업과 폭동이 끊이지 않았고 강력범죄가 거리를 활보하고 다녔다. 중국이 홍콩을 강점할 것이라는 소문까지 돌아 경제가 크게 위축됐다. 그러나 제프리는 망설임없이 대규모 콘도사업에 착수했다. 60년대 후반∼70년대 중반 아파트 5,900여동, 빌딩 44개를 건설, 성공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그는 84년 최대 위기를 맞게 된다. 「홍콩반환에 관한 중·영 공동선언」이 발표되자 홍콩이 중국에 반환될 것이라는 충격에 불황이 몰아닥친 것이다. 신창그룹은 자금난에 허덕이다 결국 계열사를 매각했다. 그는 자신감을 잃었고 회사는 후퇴를 거듭했다.
이때 3세 경영인이 등장, 회사를 위기에서 구해냈다. 89년 천안문사태 직후 뉴욕의 투자사에서 일하던 현 회장 아들 비니가 귀국, 방만한 그룹을 주력업종인 건설과 부동산, 보험 등 몇개사로 분리, 주식회사로 전환시키는 등 구조조정에 나선 것. 92년 회사가 본궤도에 오르자 비니는 『건설은 나의 관심분야가 아니다』며 전문경영인에게 회장직을 물려줄 것을 결심했다.
가족기업에서 출발, 역사의 굴곡을 딛고 연수익 3억5,000만달러 규모의 재벌기업으로 키워낸 3대 경영인의 모습에서 홍콩의 과거 현재 미래가 느껴진다.<윤태형 기자>윤태형>
◎대한관계/한국 작년흑자 99억불 ‘4대 시장’
한국과 홍콩은 그동안 정치·경제적으로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해왔다.
우리나라와 홍콩이 정식 외교관계를 맺은 것은 49년 홍콩에 영사관을 개설하면서부터. 우리 정부는 지난달 홍콩 반환 후에도 현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총영사관 유지협정을 체결했다.
경제적으로 홍콩은 우리의 4대 수출시장의 하나로 96년말 현재 홍콩과의 교역 규모는 수출 111억3,100만달러, 수입 11억4,300만달러로 흑자가 99억8,800만달러에 이른다. 홍콩에 진출한 업체는 500여개이고 은행 26개 등 금융 관련 회사만도 70여개가 현지에서 영업을 하고 있다.
물론, 문화 관광교류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지리적 여건과 쇼핑명소라는 인식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홍콩을 방문하고 있다. 지난해 25만여명이 홍콩을 다녀왔고 5만8,000명의 홍콩인이 우리나라를 방문했다. 현재 우리 교민은 1,200여명에 이르고 장기 체류자는 5,700명에 달한다.
외무부는 7월1일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더라도 현체제를 50년간 유지하고 중국과 외교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홍콩과의 관계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배국남 기자>배국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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