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병」까지는 몰라도 대통령 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우리나라에는 너무 많다. 요 얼마동안 국민들은 TV를 통해 대통령 하겠다는 사람들의 포부, 그들의 경륜, 그들의 인물됨을 지켜 보았다. 그러고도 흔쾌히 『바로 저 사람이다』라고 생각한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 인물이 그 인물이고, 그 대답이 그 대답이어서 그 정도로는 충분한 판단자료가 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일 것이다.그렇게 된 이유는 TV라는 매체가 갖는 한계성에도 있지만 무엇보다 정치지도자라는 인물이 갖는 생래적 특징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정치지도자는 보통의 다른 지도자들보다 되기가 훨씬 어렵다. 보통 지도자들은 「권력의지」를 반드시 요하지 않지만, 정치지도자는 이 권력의지가 필수요건이다. 권력의지는 글자 그대로 권력을 잡으려는 의지, 남을 지배하려는 의지, 권력이 가장 센 자리에 앉고 말겠다는 의지이다. 그것도 단순히 앉아보겠다는 의지가 아니라 생과 사를 걸고서 기어이 그 자리를 쟁취하겠다는 의지이다. 생과 사를 거는 것만큼 투쟁의지 또한 남달리 강해야 하는 의지이다.
정치지도자는 이런 권력의지가 없으면 일차적으로 실격이다. 왕도를 중시하는 유교사회에서는 이런 권력의지는 패도에 속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같은 권력의지를 부정시하는 전통이 아주 강하다. 그러나 그런 유교사회에서도 권좌에 오른 사람들은 예외없이 권력의지가 남달랐던 사람들이다.
예나 이제나, 내가 아무리 덕망이 있어도, 내가 아무리 깊은 학식이 있어도, 그리고 내가 아무리 국가를 관리할 탁월한 능력이 있어도, 이 권력의지가 약하면 훌륭한 학자, 존경받는 사회지도자는 될 수 있어도 정치지도자는 되지 못한다.
그렇다고 이 권력의지만 강하게 가지고 있다 해서 훌륭한 정치지도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국민이 바라는 정치지도자는 권력의지 못지 않게 지식과 형안을 함께 가지고 있어야 한다. 지식은 전문지식이 아니라 참과 거짓을 분간할 줄 아는 분별지, 그리고 미래를 투시하고 미리 내다보는 예견지 등 보통 지식이다. 이런 지식은 전문지식을 쌓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타고난 자질과 노력에 의해 스스로 터득해야 하는 것이다. 맹자는 이를 자득이라 했다. 스스로 닦아서 얻어지는 것이지 누가 가르쳐서 되는 것이 아니라는 뜻에서이다.
형안은 밝은 눈이다. 이 밝은 눈은 사람을 알아보는 눈이다. 정치지도자는 한눈에 사람을 꿰뚫어 보는 지인지감이 있어야 한다. 첫눈에 그 사람의 성향, 능과 무능, 그 사람의 사상, 그 사람의 인격과 품위, 이 모든 것을 동시에 파악할 수 있는 안목이 있어야 한다. 정치의 세계만큼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밀도 짙게 전개되는 사회는 없다. 형안이 없이는 그야말로 인사가 망사가 된다.
정치지도자에게는 이 지식, 형안과 함께 도덕성 청렴성 책임성 등의 덕목도 말할 수 없이 중요하다.
그러나 정치지도자의 비애며, 정치세계의 혼돈은 이 필수요건들이 겸해서 갖춰지는 경우가 아주 드물다는데 있다. 권력의지가 강한 사람은 지식·형안이 없고, 지식과 형안이 있는 사람은 권력의지가 약하다. 권력의지가 강한 사람은 도덕성 청렴성 책임성 등의 덕목 또한 약하고, 반대로 덕목이 강한 사람은 권력의지가 약하다. 이 비일치성이 어느 시대 어느 사회나 가릴 것 없이 정치의 세계를 끊임없는 지탄의 세계로 몰아 넣는다.
우리는 권력의지가 남달리 강한 사람을 적잖이 본다. 그러나 그들 중에서 지식과 형안을 가진 사람을 보기는 참으로 어렵다. 덕목도 찾기 쉽지 않다.
우리의 많은 정치지도자들 중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과 박정희 전 대통령은 권력의지와 지식 형안을 겸비해서 가진, 드문 정치지도자라 할 수 있다. 이 두 대통령은 많은 공과가 있지만 공이 과를 덮고도 훨씬 남을 정도로 크다. 오늘날 북한을 보면서 우리가 이 두 전직 대통령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이 큰 복이라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의 후보자들 중에는 권력의지는 선명한데, 지식 형안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희망이 아직 안보인다는 말인가, 기다리면 나타난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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