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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농촌(한국의 30대: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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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농촌(한국의 30대:23)

입력
1997.06.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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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이농… 오늘 귀농… 내일 부농/빠듯한 도시생활이 싫어서 농사를 새 직업으로/귀농자 절반이 30대… 실패 있지만 뿌린만큼 수확『빠듯한 직장생활이 싫어서 고향마을로 다시 돌아왔지요. 직접 농토를 경영할 수 있는데다 일한 만큼 소득을 올릴 수 있어 보람을 느낍니다. 시골의 투박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고 애들이 마음껏 뛰노는 모습이 좋습니다』

경기 이천시 장호원읍에서 과수원을 경영하는 석재인(33)씨. 88년 전문대를 졸업하고 제약회사에서 3년간 영업사원으로 일하다 91년 고향인 장호원읍으로 내려와 축산업을 시작했다. 처음 5년간은 경험부족과 가격불안정으로 2,000만원을 손해보는 쓰라림을 맛봤다. 그러나 95년부터 아내, 부모님과 함께 복숭아와 배밭 6,200평을 경작해 연간 6,000만∼7,000만원의 순수익을 올리고 있다. 이제 제법 여유도 생겨 지난해 여름 제주도로 5일간 휴가를 다녀왔다는 석씨는 『대도시 근교의 장점을 살려 과수원 등을 경영할 경우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농촌마을에 30대 귀농바람이 불고있다. 60, 70년대 경제개발 드라이브에 편승, 농촌을 등지고 떠났던 청년들이 하나, 둘씩 고향마을로 돌아오고 있다. 아직은 적은 숫자지만 이들의 귀농은 노동력과 활력을 상실한 채 고령화의 길을 걷고 있는 농촌에 생기를 불어넣으며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농림부에 따르면 90년이후 지난해말까지 귀농가구수는 모두 5,345가구로 매년 39∼80%의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불황의 찬바람이 몰아친 96년 10∼12월 석달사이에 1,649가구가 귀농하는 폭발적 증가세를 보였고 올들어 4개월동안에도 850가구가 귀농하는 등 증가세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이중 0.1㏊ 이상의 토지를 소유·경작하고 있는 귀농가구수도 지난해 922가구에 이른다. 95년도(662가구)에 비해 28%가 늘어난 수치다.

90년이후 귀농가구수중 30대 이하가 차지하는 비율도 2,830가구(전체의 45.7%)로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30대의 귀농은 명퇴나 사업실패 등에 따른 도피성이 아니라 농사일을 새로운 직장으로 개척하기 위한 적극적인 성향을 띠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요즘 들어서는 처음부터 농촌에 남아 땅을 일구며 청춘을 바치는 젊은 층도 늘고 있는 추세다.

경기 광주군 정지리에서 시설원예를 하고 있는 안인상(39)씨도 그같은 경우. 농고를 졸업하고 진로를 고민하다 부모님이 도심생활을 싫어해 바로 쌀농사를 시작했지만 84년 수해로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그러나 안씨는 농협에서 빌린 융자금 1,000만원을 가지고 시설원예에 손대 현재는 연간 1억원의 순수익을 올리는 부농으로 성장했다. 안씨는 시설원예를 처음 시작할 당시 돈을 아끼기 위해 남이 쓰다 버린 파이프를 밤새 뜯어온 일과 판로개척을 위해 식당가를 이잡듯이 뒤진 일을 추억으로 갖고 있다. 안씨는 현재 4,800여평의 비닐하우스와 유리온실에서 상추 쑥갓 치커리를 수경재배하거나 무공해 재배, 백화점에 납품하고 있다.

안씨는 『농산품은 품질고급화를 통해서만 승부를 낼 수 있다는 것을 경험으로 깨달았다』면서 『자신이 경작하는 품목에 대해 최고의 전문가가 되겠다는 자세와 처음 1∼2년의 고생을 참을 각오가 있으면 농사일을 시작해도 좋다』고 말했다.

경남 거창군 마리면 고학리에서 버섯재배를 하는 박태환(34)씨는 대구등지서 10여년간 모직기술자로 일하다 95년 귀농해 매년 3,000만∼4,000만원의 순수익을 올리고 있다. 귀농 2년만에 주위로부터 「버섯박사」라는 별명까지 얻은 박씨는 지난해는 거창느타리 법인조합을 결성해 기술을 보급하고 있다.

농촌지도소 관계자들은 30대 귀농자들의 성공이유로 철저한 프로근성을 든다. 도시생활에서 체득한 경쟁본능을 바탕으로 사업착수에 앞서 시장조사는 물론 경작법, 판로개척에 이르기까지 철저한 준비작업을 하기 때문에 성공의 확률이 높다는 것. 이같은 이유로 각 도의 농촌지도소 강사들은 대부분 30대 영농인이다.

또 이들은 일에만 매달리지는 않는다. 과수원을 경영하는 석씨의 경우 주말에는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수시로 이천 성남 등 인근 도시로 나가 영화나 연극관람, 백화점 쇼핑을 즐긴다. 가끔 외로움을 달래려 친구들을 초대하면 시골 농부답지않은 옷차림과 생활태도를 보고 모두 『부럽다. 어떻게 하면 너처럼 성공할 수 있느냐』고 물어오기도 한다.

하지만 이같은 장미빛 성공사례 뒤에는 실패의 우울담도 적지 않다. 지난해 조사된 귀농사유중 1위(32.8%)는 도시소득 미흡이었다. 아직은 전문직종 종사자보다는 일반회사원, 노무자 등 대체인력이 풍부한 직종에 종사해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 사람들이 치밀한 계획없이 무작정 귀농을 결심하는 경우가 다수인 탓이다. 이들은 농사에서도 전문지식이 부족하고 프로근성도 약해 1, 2년이내에 도시로 역 U턴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물론 상당한 손해를 감수하고 난 이후다.

농림부 농정기획과 이동원(31) 사무관은 『귀농이 정착되려면 농산물가격안정과 기술·유통지원, 일손부족 해결 등 인프라를 제공해 흡인요인을 정착시켜야 한다』면서 『수입개방의 악재가 있지만 이같은 문제가 해결되고 여기에 30대들의 프로정신이 접목되면 농촌부활은 기대할만 하다』고 말했다.<이범구 기자>

◎6년전 고향 정착한 정찬석씨/3만평 경작,작년 순소득 8,000만원

『무엇보다 마음이 자유롭습니다. 사업관계로 늘 짜증나는 도시생활에서 탈출해 고향에 내려오니 맑은 공기와 따뜻한 인정이 느껴집니다』

91년 서울에서의 사업을 정리하고 전북 김제시 진봉면 상궐리 하수내마을로 돌아온 정찬석(36)씨는 귀농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다.

정씨가 현재 경작하는 농지는 논 1만8,000평과 밭 1만3,000평. 밭은 보리와 감자 참외를 가꾸고 있으며 시설원예도 일부 경작하고 있다. 시설원예에 손대면서 무척 바빠졌지만 지난해 8,000만원의 순소득을 올리면서 마을 제일의 부농으로 힘찬 출발을 했다.

정씨가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한 것은 사업실패 때문이었다. 선배의 권유로 대학입시를 포기하고 서울에서 자수업에 뛰어들었다. 사업은 날로 번창해 동대문구 청량리와 서초구 서초동에 2곳의 공장을 두고 50여명의 종업원을 거느리는 중소기업 사장의 반열에 올라섰다. 그러나 서울올림픽이 끝난 뒤 자수업이 사양화하면서 부도를 내 술로 분을 삭이는 생활이 이어졌다. 1년 뒤 음주사고로 두달간 병원신세를 지면서 정씨는 새로운 세계를 찾기 시작했다. 노모가 계시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아내의 반대가 심해 처음에는 혼자 내려와 지냈습니다. 끝없이 설득하고 부탁해 아내와 가족이 내려온 뒤 농사에 매진할 수 있었죠』 정씨는 그토록 반대하던 아내 박순녀(31)씨가 이제는 더 억척스런 농부로 변했다며 웃는다.

김씨는 고향에 내려오자마자 인근 농촌지도소에서 책을 빌려 새벽까지 공부하며 농사방법을 익혔다. 막히는 곳은 친척과 이웃을 찾아다니며 물어보았고 농협으로부터 융자를 얻어 논과 밭을 구입, 일구기 시작했다.

『바닷바람에 비닐하우스가 날아갔고 가뭄으로 갈라지는 논밭을 보다못해 텐트를 치고 지내기도 했다』는 정씨는 『그러나 흙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말로 성공담을 대신했다.<김제=최수학 기자>

◎귀농자 설문조사/39.3%가 만족감… 농산물값 불안정·자금부족 ‘고충’

지난해말 각 시·도가 귀농농가 3,739가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대부분의 귀농자들은 불안정한 농산물가격과 영농자금부족, 일손부족을 대표적인 애로사항으로 꼽았다. 또 자녀교육과 의료·문화시설부족을 가장 큰 생활불편사항으로 들었다.

그러나 이들은 농업의 전망을 밝게 보고 있으며 영농승계, 전원생활영위, 노후대비 등을 주요 귀농이유로 들어 「희망적 귀농」(57.2%)이 도시생활 부적응, 사업실패 등으로 인한 「부정적 귀농」(39.2%)보다 많았다. 귀농에 대한 만족도 또한 만족(39.3%)이 불만족 및 후회(6.7%)보다 훨씬 많았다. 귀농지역은 고향이 대부분이었으며 학력은 고졸(45.9%) 중졸(23.4%) 국졸(17.7%) 대졸(8.8%) 순이었다.

귀농후 소득은 1,000만∼2,00만원이 가장 많았고 1,000만원이하, 2,000만∼3,000만원 등 순이었다. 귀농지역은 경북 경남 전남 충북 순이었고 연령별로는 30대 40대 50대 20대 순이었다.<이범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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