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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발 내놔”/하비에 알바(한국에 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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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발 내놔”/하비에 알바(한국에 살면서)

입력
1997.06.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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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년간의 한국생활은 긴장과 재미의 연속이었다. 다혈질인 나는 사람들 앞에서 대놓고 화내는 한국인을 볼 때마다 마치 고향 친구를 만나는 것처럼 반갑다. 얼마전 우리 호텔 커피숍 벤돔에서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벤돔은 친한 사람들끼리 차 한잔 나누기 좋은 곳. 그곳을 막 지나치는데 친구인 듯한 두 여자 손님중 한명이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다. 지배인에게 두 여자의 목소리를 낮추어서 다른 손님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부탁하라고 일러줬다. 그들은 지배인이 다가가 말을 걸려해도 거들떠 보지 않고 언성만 높이더니 급기야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싸움을 벌이기 시작했다.싸움이 자못 흥미로웠던지 손님들은 하던 말을 멈추고 그쪽으로 돌아앉았다. 나로서는 빨리 그들을 다른 곳으로 옮겨야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이쯤에서 그만 두라고 싸움을 말리려는데 박여사란 여자가 갑자기 김여사의 어깨를 밀쳤다. 순간 김여사가 박여사의 머리채를 확 나꿔채자 진풍경이 벌어졌다. 박여사의 멋진 가발이 벗겨진 것이었다. 가발을 뺏긴 박여사는 손으로 머리를 가리며 알 수 없는 소리를 질러댔고, 나는 얼른 옆자리의 냅킨으로 그의 머리를 가려줬다. 박여사는 냅킨으로 얼굴을 가린채 『가발 내놔』라고 고함을 질러댔다.

싸움은 이젠 「가발 쟁탈전」으로 바뀌었다. 순간 「이들을 내보내려면 가발을 내 손에 쥐어야 한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문제의 가발은 김여사의 등뒤에 있었다. 바로 뒤에 우리 직원이 바짝 붙어있었다. 내 손짓에 상황을 눈치챈 직원은 김여사의 손에서 가발을 나꿔채 내게 던졌다. 커피숍 곳곳에서는 환호성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박여사와 김여사는 가발 내놓으라며 내게 달려 들었다. 나는 『택시 타는데까지 따라오면 드리겠다』며 밖으로 나가 무조건 가발을 택시 뒷좌석에 내던졌다. 잠시후 박여사가 투덜거리며 나타났다. 뒤이어 김여사가 나와 막 떠나려는 택시속으로 뛰어 들었다. 전쟁은 계속됐다. 떠나는 택시뒷창으로 보이는 두 여인의 「가발 쟁탈전」은 여전히 치열했다.

커피숍으로 돌아와 피해 상황을 살펴보니 냅킨 한 장과 계산되지 않은채 테이블위에 덩그러니 남아있는 계산서뿐이었다. 옆자리 손님들이 이런 일이 자주 있냐고 물어왔다. 『매일 있는 우리 호텔 특별공연』이라고 응수하자 『이제부터 매일 보러와야겠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호텔안은 곧 웃음바다로 변했다. 한바탕 웃고나니 그리운 고향에 온 듯했다. 그리운 고향….<르네상스 서울호텔 식음료 이사·스페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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