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재벌그룹 등 우리나라 기업들의 차금경영체질을 개선키로 한 것은 뒤늦은 감이 있으나 지극히 타당한 것이다. 지금 경쟁력 강화를 위해 고비용 저효율의 경제체제를 바꿔야 한다고 모두가 주장해 오고 있고 그 가운데 금리의 인하가 강력히 요구되고 있다. 재계에서는 높은 금융비 부담이 오로지 높은 금리에만 있는 듯 고금리만을 탓하고 있으나 사실 기업들이 빚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는데 보다 큰 책임이 있다하겠다.정부가 지금까지 이 문제에 대해 손놓고 있다가 한보사태를 계기로 뒤늦게 대처하느니 만큼 보다 효율적으로 철저하게 해주었으면 한다.
재정경제원은 21일 금개위 1차보고서와 관련한 금융개혁세부 추진방안에서 여신한도제를 지금까지의 「동일인(동일기업)한도제」에서 「동일계열(동일그룹)한도제」로 전환하고 「동일계열여신한도제」에 신탁대출을 포함시켜 표준비율(대출비율)을 금융규제완화 속도에 맞추어 국제수준으로 인하하겠다고 했다. 개략적인 방향만 설명해 놓고 있는데 여신한도의 대상을 그룹의 개별계열사에서 그룹 전체로 확대한 것은 규제·감독을 보다 개선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속도와 폭이다. 기업들의 과다한 타인자본비율을 어느 정도 빨리 국제수준으로 낮출 것인가 하는 것이다. 제조업의 부채비율은 96년말 현재 한국(317.1%), 미국(159.7%), 일본(206.3%), 대만(85.7%) 등보다 월등히 높은 것이다. 이에 따라 금융비용부담률도 한국(5.8%)이 일본(1.3%), 대만(2.2%) 등을 크게 앞지르고 있다.
물론 경쟁력에 주름을 주는 타인자본비율의 격차해소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그러나 경제는 현실이므로 우리 기업들의 능력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재정경제원은 그룹에의 총 은행대출이 거래은행 자기자본금의 50%가 넘는 경우에는 신규대출을 중단케 하며 또한 초과분에 대해서는 3년간의 유예기간을 두어 해소토록 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재경원은 또한 이 계획을 금융통화위원회의 승인을 얻어 오는 7월부터 바로 실시할 예정이라는 것이다.
재계로서는 예기치 못했던 조치이므로 당황할지 모르나 재경원이 의도하고 있는 속도와 폭에 큰 무리가 있다고 생각지 않는다. 편중대출을 예방하고 부실에 따른 은행의 도산위험을 방지하기 위해서도 자기자본의 50% 한도가 지나치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기존대출의 초과분에 대해 3년간의 유예기간을 둔 것도 대응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준 것이다. 「동일계열 예산한도제」에 은행계정과 별도로 처리되어 온 신탁대출을 포함시키기로 한 것도 진일보한 것이다.
재벌그룹은 정부의 이번 조처에 적극 협력해야 할 것이다. 정부의 정책전환이 아니더라도 국경없는 무한경쟁시대에 생명력을 지키기 위해서는 스스로 과도한 빚경영체제를 청산해야 한다. 누구보다 자신들이 더 잘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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