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명주」 홍콩이 다음달 1일 중국에 반환된다. 영국의 식민지가 된지 156년만이다. 금세기말 최대의 역사적 사건이라고 볼 수 있는 홍콩의 중국반환은 동아시아는 물론 전세계에 커다란 파장을 몰고 올 것이다. 본보는 홍콩 반환일까지 매일 시리즈를 게재, 이 역사적 사건을 조망한다.<편집자 주> ◎제주도 5분의 3 크기/일국양제의 실험실/교통요충·쇼핑 요리 천국/21C로 불안·기대 새출발 편집자>
중국의 석학 린위탕(림어당)은 동서양의 문화가 공존하는 홍콩이 새로운 세계 문화 창조의 근원지가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의 예언처럼 홍콩은 동서양의 문물이 교차하고 현대와 고대가 공존하는 도시다. 도심은 은행건물 등 거대한 빌딩숲에 둘러싸여 있고 넥타이를 맨 많은 직장인들이 바삐 돌아다니고 있지만 해변에는 아직도 정크선에서 고기를 잡으며 생활하는 주민도 많다. 또 156년간의 영국지배 영향으로 서양문물이 쏟아져 들어왔으나 중국의 영향으로 동양문화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중국 남부 광둥(광동)성 동남부의 홍콩은 광둥성 성도 광저우(광주)에서 144㎞ 떨어져 있고 중국 경제특구 1호인 선전(심천)에 인접해 있다. 황허(황하),양쯔(양자)강과 더불어 중국 3대 강중 하나인 주강 하구에 인접, 99년 12월 역시 주권이 반환되는 포르투갈의 식민지 마카오와는 64㎞ 거리에 있다. 마카오, 주하이(주해) 등 주강지역과 1일 경제권을 형성하기 위해 양측을 잇는 야심찬 해상 교량 건설계획이 진행중이다.
총면적 1,075㎢로 제주도의 약 5분의 3에 해당하는 홍콩은 홍콩섬과 주룽(구룡)반도, 신졔(신계)지역, 그리고 235개의 작은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홍콩의 공식언어는 영어와 광둥어이지만 주권 반환이 다가옴에 따라 중국의 표준어인 보통화의 학습 열기가 높고 보통화가 길거리에서도 자주 들린다. 주민은 보통화로는 전혀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광둥어를 사용하는 광둥인이 가장 많고 예전부터 남하하여 뿌리를 내린 커자(객가)족, 49년 대륙 공산화 후 이주한 자본가 출신의 상하이(상해)인, 차오저우(조주)인, 단자(단가)·허라오(학로)족 등이 있다. 중국인이 전체(630만)의 98%를 차지하고 있는데 90년대 들어 베이징(북경)의 엘리트들이 대거 몰려와 새로운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홍콩의 대명사는 요리와 관광이다. 각지에서 홍콩으로 온 중국인들이 자본주의의 치열한 생존경쟁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들의 특산 요리를 발전시켰다. 때문에 홍콩에서는 매년 요리축제가 열려 세계각국에서 온 미식가의 입맛을 돋우고 있다.
홍콩에는 또 수백만의 관광객이 몰려와 최고급 코트로부터 가짜시계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상품을 다투듯 구입하고 있어 「쇼핑천국」으로도 불린다.
이제 세인의 시선은 중국반환 이후의 홍콩이 21세기에도 동양의 진주로 찬란한 빛을 계속 발할 수 있을지에 쏠리고 있다.<이장훈 기자>이장훈>
◎홍콩의 어제와 오늘/아편전쟁후 할양 주민들 초기 노예생활/차별 설움 3차례 폭동끝에 번영의 길로
156년간 영국의 지배를 받아 온 홍콩이 지금같은 부와 민주화를 이루게 된 데는 많은 사연이 있다. 홍콩이 경제 사회적 기득권을 중국으로의 반환 이후에도 어떻게 유지할 수 있을까가 최대관심사지만 아편전쟁이후 초창기의 홍콩주민은 그야말로 노예와 다름없었다. 홍콩섬 중심부의 센트럴(중환) 주변에는 70년대까지만 해도 「개와 중국인 출입금지」라는 경고판이 버젓이 걸려 있었고, 완차이(만자) 노스포인트(북각)지역은 우리의 해방촌과 같은 빈민가로 「구획정리」돼 속국민이 겪어야 하는 설움의 상징처럼 돼 왔다.
56·66·67년 3번에 걸쳐 일어난 홍콩 주민의 대규모 폭동은 현재의 홍콩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사건이다. 56년 폭동은 대만의 청천백일기 소각사건이 발단이지만 곧바로 빈부격차와 생활고 복지문제 등 사회문제로 확산됐다. 49년 대륙공산화와 60년대 대약진운동 실패, 문화대혁명의 후유증으로 난민이 대거 유입된 것도 사회병리를 부추긴 요인이었다. 홍콩정청에 의해 수백명이 죽고 수천명이 구속되는 초유의 사태를 겪은 끝에 사회복지 주택 의료 등에 대한 주민의 사회적 지위가 지금과 같은 틀을 마련하게 된 것이다.
아시아에서 일본 싱가포르 다음인 막강한 경제력도 홍콩 주민의 이같은 민주화 열망에서 기인한 바 크다. 49년 대륙공산화로 피난온 상하이(상해)의 자본가들이 섬유업으로 경제를 회생시켰고, 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초까지 계속된 문화대혁명으로 유입된 값싼 노동력이 경제발전에 불을 붙였다.<황유석 기자>황유석>
◎홍콩 일지
▲1840.6=1차 아편전쟁 발발
▲1842.8=난징(남경)조약으로 홍콩섬 영국에 영구 할양
▲1860=2차 아편전쟁과 베이징(북경)조약으로 주룽(구용)반도 영구 할양
▲1898.7.9=의화단 사건으로 신졔(신계) 및 235개부 속도서 99년 조차
▲79.3=덩샤오핑(등소평), 홍콩총독과 반환문제 첫 논의
▲84.12.19=홍콩반환에 관한 중·영 공동선언
▲85.7= 중·영 공동연락위 구성
▲90.4.4=중 전인대, 홍콩특별행정구 기본법 통과
▲92=패튼 총독, 홍콩민주화 개혁 착수
▲96.1=홍콩특구준비위원회 발족
▲96.12.11=초대행정장관 둥젠화(동건화) 선출
▲96.12.21=임시 입법회의 의원 60명 선거
▲97.2.20=홍콩특구 내각명단 발표
▲97.4.21=홍콩 주둔 인민 해방군 선발 1진 40명 도착
▲97.5.20=종심법원 수석대법관 지명
▲97.7.1=홍콩, 중국반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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