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위한 일이 직업됐어요”/길설고 낯선 서울생활 아내가 불편없도록 정보수록/고향 돌아와선 딸 초롱이 위해 ‘청주시 그림지도’ 제작직장일에 매여 본의아니게 가족을 등지는 사람들에게는 「서울박사」 윤송현(35)씨만큼 부러운 이도 없을 것이다.
지난 95년 서울로 이사온지 3년이 되는데도 길 설고 아는 사람 없어 어려움을 겪는 아내를 위해 생활정보책자 「서울박사」를 펴낸 그는 최근에는 유치원생 초롱이를 위해 「그림으로 찾아가는 청주시」지도를 제작했다. 가족을 위한 일이 직업이 될 만큼 책과 지도는 좋은 반응을 얻었다. 가족이 95년 말 3년만에 고향인 청주로 돌아온 것은 「병환인 아버지를 가까이에서 모시기 위해서」일 만큼 그는 가족지상주의자이다.
『서울에서 하던 출판사가 경영난에 봉착하면서 살림이 말이 아니었죠. 고생을 많이 시켜 미안한 마음이 「서울박사」를 만들게 된 동기입니다』 그 자신이 서울에서 대학생활을 하면서 겪었던 「촌놈설움」도 계기가 됐다.
각종 공모를 소개하는 「현상공모가이드」를 2년간 발행하면서 수집한 정보를 「수영을 배우려면」 「세금이 너무 많이 나왔다고 생각될때」 등 아내가 이용하기에 편리하도록 분류 편집했다.
「서울박사」를 만드는데 부인 오혜자(33)씨도 한 몫했다.
남편이 건네준 공연장 전화번호를 들고 외출하고 돌아온 뒤면 『그곳의 계단이 너무 좁고 가파라 위험해보였다』거나 회원가입 방법 등 자세한 정보를 알아내온다. 96, 97년 개정판이 나온 이 책은 독자들로부터 「재미있고 유익하다」는 평을 듣고 있다. 『무엇보다 아내가 이 책을 보고 YWCA 글쓰기강좌를 다니면서 사람들을 사귀고 활발해져서 제일 기뻤다』고 말한다. 오씨는 그때 배운 지식을 바탕으로 요즘도 「독서지도사」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그는 『아내사랑을 담은 이책이 집안에서 무료해하는 아내나 어머니에게 주는 선물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한편 지난해 12월에 나온 「그림지도」는 딸 초롱이를 향한 사랑을 담았다. 점점 주변으로 관심을 키워가는 초롱이에게 『지도는 사회에 대한 구체적인 관심을 키워주고 공간, 거리감각을 길러준다』는 생각이다.
빨간 건물의 소방서, 초록 십자가가 있는 병원, 공원을 지나면 할아버지네 집. 초롱이의 손가락은 지도위에서라면 혼자서도 할아버지, 고모집을 너끈히 다녀온다. 그동안 3만부가량 나간 이 지도는 인구 50만명의 청주 시내 어딜 가도 금방 눈에 띄어 초롱이 어깨가 으쓱하다.
물론 그도 『가족고생을 많이 시켰다』고 실토한다. 출판사 경영이 어려울때는 빚쟁이에 쫓겨다니면서 생활비를 제대로 갖다 주지도 못했다. 무엇보다 학생운동으로 강제징집당하면서 충격으로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대학 재학시절 「가족은 개인의 자유와 선택을 구속하는 굴레」라는 생각이 요즘과 같이 바뀐데는 이러한 시련이 적잖은 역할을 했다. 『함께 노동운동하면서 어려움을 많이 겪었던 아내가 결혼생활의 어려움도 묵묵히 이겨줬다』는 남편의 치하에 아내는 『하루가 끝나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려운 일은 없었는지 물어주는 자상한 마음이 고맙다』고 말한다. 두사람의 사랑에 세상 어떤 풍파도 비껴갈 것만 같다.<김동선 기자>김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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