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을 저지른 두 아이를 불러내 서로 상대편의 뺨을 때리게 한다』『공부 못하는 아이를 앞에 세워놓고 담임선생님이 「앞으로 이 아이를 돌머리라고 부르기로 하자」고 학급학생들에게 선언한다』
『말썽부린 아이를 앞에 세워놓고 학급아동들에게 어떤 체벌을 주는 것이 좋겠는지를 제안하게 한다』
『자습시간에 떠들거나 화장실에 가는 아이들의 이름을 적어 선생님께 바치게 한다. 또 학생들 사이에서는 고발명단에 이름을 넣지 말아달라는 조건으로 위임받은 아이들에게 뇌물을 제공하는 일이 많다』
『떠드는 아이에게는 벌로 백묵을 먹게 한다』
『담임의 부당한 처사를 항의한 학부모에게 「앞으로 댁의 아이를 특별대우를 할 수도 있다」고 협박한다』
초·중등학교 교육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부교사들의 비교육자적 행태는 이미 「비교육적」차원을 넘어선지 오래다. 차라리 「비안간적」이라고 표현해야 옳을 정도인 듯 싶다.
초·중등교육만 그런 것이 아니다. 고등교육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비록 일부이겠지만 이른바 교수집단의 비인격적 행태 수준 또한 교육현장에서는 상식이다. 표절이나 채택료같은 비리의 관행은 시비하려 드는 편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물론 「일부」라는 단서를 붙여야겠지만 그 일부 역시 우리 교육현장임에는 틀림이 없다. 극히 예외적이던 그 일부가 언제부터인가 모르는 사이에 「예외적」 「비정상적」같은 표현을 덧붙이는 것이 낯간지러울 정도로 드물지만은 않은 관행이나 일상적 현상이라고 잘못(?) 인식되고 있는 것이 오늘의 우리나라 교육현장이다. 학생이나 학부모로, 또는 교사나 교수로 이러한 교육현장은 이미 상식이 되고있는 한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교육개혁」도 공염불이나 진배없다.
왜냐하면 그동안 있었던 온갖 교육개혁 논의들 속에서 정말로 개혁되어야 할 교육현장의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는 한번도 크게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학부모들의 하소연 내용중 대부분은 이른바 「교권」이나 「사랑의 매」같은 말로 감추거나 얼버무릴 차원을 크게 벗어난 비인간적 폭행이고 잔혹행위이다.
21세기를 위한 개혁이라해도 좋고 민족통일시대를 위한 개혁이라 해도 좋다. 어떤 교육개혁이건 간에 우리나라에서 교육개혁이 성공하려면, 교육일선에서 개혁적 정화운동이 먼저 일어나야만 한다. 봉투안받기 선언이나 학생들에게 존대말하기운동 같은 입에 발린 구호가 아니라 교사집단 스스로의 손에 의한 준엄한 자기관리와 정화체제가 마련되어야만 한다. 초·중등학교교사들, 그리고 대학교수들 스스로가 개혁적 노력을 시작하지 않는 한 그 어떤 힘으로도 우리나라의 교육을 개혁할 수는 없을 성 싶다.
자생적 노력에 의한 교육개혁운동이 조만간에 일어나지 않는다면 앞길은 뻔하다. 몇년 안에 우리나라의 제도교육은 밖으로부터의 도전과 안으로부터의 반란에 의해 공중분해될 것이다. 밖으로부터는 경쟁력을 앞세운 외국의 교육이 쳐들어 올 것이고 안으로부터는 견디다 못한 교육수요자 대중이 제도교육을 대량 탈출하는 사태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우리 교육이 기사회생하려면 거창한 교육개혁보다 먼저 다음의 세가지 구체적 혁신 노력이 절실하다.
썩은 살을 제손으로 도려낼 만큼 치열한 각급학교 교직자들의 자기혁신 노력이 그 첫째다.
제도교육운영의 원칙을 군사문화적 「일사불란」 대신에 세계화에 걸맞는 「백화만발」로 바꾸는 것이 그 둘째다.
교육현장에 대한 지원과 감독이 시민운동의 차원으로 강화·확산되는 것이 그 셋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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