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 정치지도자에게 「혀의 재능」은 필요조건일 뿐 아니라 생존조건이기도 하다. 현대적 정치활동에는 국회나 대중집회 외에 전파매체를 통해 국민들을 접촉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탄탄한 지적 배경과 노련한 언어구성으로 국민을 설득하고 감동시키는 「말의 명인」이지 않고서는 새로운 정치환경에 적응하기 힘들다.그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나라 정치지도자 가운데 김영삼 대통령 만큼 「혀의 재능」에 대한 논란이 많은 사람은 드물 것이다. 김대통령의 부정확한 발음, 빈곤한 어휘력, 논리의 결여 등은 자신의 견해를 효과적으로 설득하면서 공격을 인상적으로 방어하는데 실패하기 일쑤였다.
청와대 안팎의 누구나 시인하듯, 김대통령의 국정 통제력이 급격히 상실되기 시작한 결정적 계기도 지난 1월의 연두기자회견이었다. 김대통령은 말의 힘으로 노동관계법 개정 반대세력을 굴복시키기는 커녕 반발 강도만 높이고 말았던 것이다.
최근 TV토론 이후 대통령 예비후보들에 대한 평가와 지지 경향이 사뭇 달라졌다고 한다. 정치지도자에게 말을 다루는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 부분인지를 새삼 깨닫게 해준 것이다.
그러나 정치지도자의 말에 대한 자질이 바로 그의 정치력과 정치인격을 보장한다고 믿는 것은 금물이다. 미국의 워렌 하딩은 호소력있는 음성의, 뛰어난 말의 재능에 힘입어 대통령이 되었으나 미국 사상 최악의 대통령으로 평가받고 있다. 독일 철학자 칸트는 『웅변술이 최고단계에 이르면 나라를 망친다』고 경고했었다. 정치인의 말속에 담긴 통찰력과 진실의 깊이를 제대로 잴 수 있어야만 다시는 실패하지 않는 대통령을 뽑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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