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0년대 후반 박정희 대통령이 경부고속도로건설을 추진할 당시의 일화 한토막이 생각난다.각계의 반대를 무릅쓰고 건설결심을 굳혔던 박대통령은 세계적 권위자라는 세계도로학회 회장을 초청, 건설예정코스를 공중답사시킨뒤 간곡히 조언을 구한다. 그 회장은 당시의 서울―부산 국도에 차량왕래가 매우 적었던 점에 주목, 『교통량이 별로더군요』라는 말로 반대의사를 간접적으로 전했다. 그러나 박대통령은 『바로 그 점때문에 고속도로를 반드시 지금 건설해야 합니다』고 세계적 권위자를 오히려 설득했었다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이치이지만 국도가 텅비었던 당시에 앞으로의 물동량폭증은 물론이고 뒤늦게 건설에 나설 때의 어려움마저 내다본 혜안에 새삼 생각이 미치는 것이다. 그리고 대통령이 직접 고속도로 구상과 건설세부상황에 관한 노트를 한권 빼곡히 적어가면서 하루가 멀다하고 현장을 직접 살핀 일화도 우리나라 사회간접자본(SOC)건설역사의 한페이지로 남아있는 것이다.
이제와서 30여년전 얘기를 꺼내는 것은 박정희부활신드롬 때문임은 결코 아니다. 그 보다는 영욕이 교차된 박정희 평가에 있어서 어두웠던 구석을 절대로 숨길 수 없듯이 그의 국정수행 장악력과 혜안도 잊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절감되는 현실 때문이다.
요즘 날이면 날마다 들려오는 건 경부고속철도건설을 둘러싼 어두운 소식들이다. 단군이래 최대 공사일뿐 아니라 최근 건설경비가 당초 예상의 3배가 넘는 20조원으로 추정되고 있고 공기조차 2년이상 늦어져 2004년에야 완공될 것 같다는 고속철도사업은 어느새 골칫거리 국책사업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것이다.
경부고속도로건설의 신화를 남긴 나라에서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고 그 책임은 과연 누구에게 있는 것일까. 6공정권말기의 정치적 한탕주의 졸속결정에다가 현정권의 관리 및 장악능력부족이 보태어지면서 국가적 「애물단지」가 되고 있다 해도 모자람이 없다.
그렇지 않아도 경제계에서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 세가지의 엄청난 애물단지가 도사리고 있다는 소리가 공공연하다. 애물단지란게 뭔가. 원래 어려서 부모앞에 죽은 자식이란 뜻에서 전래되어 애를 태우는 물건이나 사안 덩어리를 가리키기에 이르렀다. 장차 나라의 화근이 될 게 뻔한 그같은 애물단지의 전형으로 앞의 고속철도사업은 물론이고 한보사태의 사생아라고나 할 당진제철소 처리문제, 그리고 오늘날 우리업계에 자동차대란을 야기시키고 있는 자동차공업구조조정문제가 함께 들먹여지고 있는 것이다.
한보사태의 근원적 책임규명이나 정경유착근절과제란 사실 중요하다. 지금 해결 안되면 앞으로라도 풀어야 한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당장 우리의 발등에 떨어진 불은 6조원이 넘는 돈을 무모하다 싶을 정도로 퍼붓고도 생존여부가 불투명한 당진제철소의 처리문제이다.
채권단과 포철출신 전문경영진이 지난 4월 3자인수문제 조기매듭을 위해 기업설명회를 가졌지만 1조5,000억원의 추가투자와 어두운 철강경기 전망 및 엄청난 금융부담 등으로 시큰둥한 반응속에 끝났음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그때 이래 유포되고 있는 게 인수에 따른 엄청난 정책금융제공과 금융비용탕감 등 국가적 부담문제의 어려움이다.
삼성그룹이 후발 신규업체로 뛰어들 때부터 자동차 업계에서는 이미 내다보인게 과당경쟁과 구조 조정문제였다. 오죽하면 자동차 생산이 시작되기도 전에 그룹내부에서마저 애물단지라고 표현한다는 것일까.
이 세가지 애물단지들이 우리에게 주는 뼈아픈 교훈은 결국 무엇인가. 두가지 결론이 가능할 것이다. 혜안과 의지가 결여되었을 뿐 아니라 관리능력과 장악력조차 없는 지도자나 경영자는 이제 더 이상 설 땅이 없다는 게 첫째 교훈이고, 애물단지 처리에 대한 냉철한 평가와 결단이란 이를수록 좋겠다는게 두번째 교훈이 아닐까 한다. 우리 사회나 국민모두가 언제까지 그런 애물단지들의 볼모로 남아 더 큰 피해를 당하고 있을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앞을 가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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