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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입력
1997.06.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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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보석상은 전쟁채권을 발행키로 하고…」 80년대초 총선에 출마한 인사가 선거를 앞두고 출간한 저서의 한 구절이다. 장사꾼인 보석상이 전쟁채권을 발행하다니 의아하게 생각하는 게 당연하다. 영국에서 재무부를 가리키는 Treasury란 단어를 잘못 번역한 데서 일어난 해프닝이었다. ◆어떤 미디어 전공교수의 저서엔 미국의 전신전화회사인 웨스턴 유니언이 친절하게 「서부연합」으로 번역돼 학생들을 어리둥절케 한 적이 있다. 이같은 해프닝들은 저자가 남을 시켜 책을 급조한데다 그나마 자기 이름으로 나가는 책을 자신도 꼼꼼히 읽어보지 않았다는 예증이다. ◆얼마전 화제속에 치러진 대선주자들의 TV토론에서는 일부 대선주자들의 저서를 두고 「직접 썼느냐」는 패널리스트들의 질문이 잇따랐다. 저자에게 저서를 직접 썼느냐고 묻는다는 것 자체가 우문이고 모욕적인 일이다. 하지만 대선주자들은 대부분 불쾌감을 느끼지 않는 듯 했다. 더러는 저서 내용을 정확히는 모른다고도 했다. ◆선거철이 다가오면 정치인들의 저서출판이 줄을 잇고 출판기념회를 알리는 광고가 신문에 큼직하게 자리잡는다. 정치인이 자신의 사상과 비전을 담은 책을 선보인다는 것은 권장할 일이다. 문제는 저서가 혹간 전문가들의 대필수준을 벗어나지 못한채 홍보물로 변질된다는 점이다. ◆이런 현상 탓인지 재벌총수 등 저명인사들의 기고나 저작을 직접 썼다고 믿지 않는 사람도 적지않다. 물론 자료나 표현력이 부족해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학생시절 연애편지도 아닌데 생각이 같다고 대필 일변도라면 곤란하다. 글은 말과 함께 인간능력을 판별하는 중요한 기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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