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시장경제 정착 분단극복과 함께 도덕률 지닌 개인으로 거듭날 과제 남아한 세기가 저물어가고, 새로운 세기가 온다. 사람들이 이 땅에서 죽 이어 살아온 마당에 시간을 백년 단위로 끊어서 평가하는 것에 무슨 커다란 의미가 있을까. 그러나 어디에선가 마디를 지어서 과거를 돌아보고 「새출발」을 다짐하는 것은, 아무래도 모자란 인간이 자신을 추스르기 위하여서라도 필요한 듯 싶다.
우리에게 지난 일백년이 새삼스러운 것은, 무엇보다도 그 사이에 우리의 생각과 행동의 규준에 결정적인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는 그 전의 백년, 아니 수백년과 비교하여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왕을 정점으로 하여 양반만이 특권을 누리던 신분제 사회는 무너졌다. 그리고 이 체제를 설명하고 정당화하던 유교 이데올로기도 정통성을 상실하였다. 이제는 각 개인이 골고루 가지는 자유와 권리가 사회구성의 출발점이 되었다. 모든 정치적 권력은 국민의 의사에서 나오고 정권은 단지 국민으로부터 일시적으로 이를 위탁받은데 불과하다고 한다. 이러한 「원리」의 전면적이고 근본적인 변화는 그 자체로서 가히 혁명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은가.
또한 그 백년 사이에 우리의 경제생활도 결정적으로 변화하였다. 한 마디로 말하면 농업국이 공업국이 되었고, 먹고 입고 머무는 바를 얻기 위해서 하는 인간활동의 내용이 판이하게 달라진 것이다. 전에는 인구의 80% 이상이 농어촌에 거주하였는데, 이제는 80%가 인구 5만 이상의 도시에서 산다. 일인당 평균소득, 국민총생산량, 경제성장률 등등의 흔히 듣는 수치를 여기서 나열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나의 증조부모가 산 삶과 나의 삶은 판연히 다르지 않은가 여겨진다. 요즈음의 젊은이들이 영국의 비숍여사가 19세기 말에 우리나라를 탐방하여 쓴 책을 읽는다면, 그것이 먼 나라의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일도 없지 않을게다. 그런데 우리는 그 사이에 혁명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의식하고 있는가. 특히 지난 세기의 중간쯤인 1945년에 일본의 식민지 지배로부터 벗어나서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였던 즈음이야말로 혁명의 시작이었다. 그런데 아쉽게도 해방 직후의 이데올로기 대립과 분단, 건국 후 얼마 되지않아 일어난 동족상잔의 전쟁, 그로 인한 고난과 빈궁 등으로 해서, 이 나라의 「새로움」은 생존을 둘러싼 싸움의 열기 속에 묻혀 버리고 말았다. 또 무엇보다도 식민지의 경험이 우리의 자존심에 준 상처는 매우 큰 것이어서, 이를 달래기 위해서라도 일단 우리의 고유성 또는 「주체성」에 집착하는 경향은 어쩔 수 없었다고 하겠다. 이는 「찬란한 문화를 낳은 우리 민족」의 우수성 또는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의 연속성은 강조하면서도, 과거를 떨쳐 버리고 새출발을 하여야 하는 역사의 비연속면, 말하자면 근대적 정신의 수련과 제도의 내면화에 대한 감수성은 무디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이로써 새로운 나라에 어울리는 「새로운 사람」의 추구도 어느덧 빛을 잃게 되었다. 혁명의 시기에는 반드시 새로운 윤리와 책임의식으로 무장한 혁명적 인간상이 제시되고 그 실현을 위하여 교육과 프로파간다와 강제가 행하여지는 법인데, 우리는 아직까지도 민주사회의 시민에 어울리는 인간모델의 제시와 형성에 별로 주목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
결국 우리는 여전히 혁명의 도상에 있다. 이것을 철저하게 의식할 필요가 있다. 지난 백년동안 식민지와 분단의 쓰라린 경험을 겪으면서도 우리는 많은 것을 이룩하였다. 민주정치와 시장경제라는 기본적으로 옳은 노선을 채택하였고, 거듭된 시행착오와 수많은 희생에도 불구하고 조급함으로까지 보이는 엄청난 열정을 가지고 이를 밀고 나왔다. 세계는 우리 자신보다 훨씬 더 긍정적으로 우리를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혁명은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 혁명을 지탱하는 기본체제조차 확고하지 않다. 우선 분단을 극복하여야 하고, 나아가 민주정치를 명실상부하게 달성하고 또 활기차고 정의로운 시장경제를 이룩하여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러한 혁명을 끌고 갈 수 있는 새로운 인간, 즉 「도덕률을 갖춘 개인」으로 거듭나야 하는 과제가 남아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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