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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상 시인/“조고각하,자신부터 성찰해야”(각계인사에 듣는다: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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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상 시인/“조고각하,자신부터 성찰해야”(각계인사에 듣는다:8)

입력
1997.06.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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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륜·윤리규범 바탕한 개혁이라야 난국타개/장인정신으로 무장·근검할때 경제활력 회복”문단원로 구상 시인은 『현재의 위기는 우리 국민이 윤리와 규범의식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초래됐다』고 진단하고 참된 의미의 윤리교육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또 깨끗한 선거를 통한 정치개혁을 위해 정치인들은 자신의 말에 진실을 담고 이를 실천하는 새로운 정치문화를 가꿔가야 한다고 말했다.<편집자 주>

―정치적 혼란에 이어 장기불황이 겹쳐 나라가 총체적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위로는 김영삼 대통령으로부터 아래로는 일반국민까지 어떤 자세를 가져야할 것으로 생각하십니까?

『불교에 조고각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다리 밑, 곧 발 밑을 살피라는 뜻입니다. 우선 김대통령이 오늘날과 같은 비극적 상황에 처한 이유는 자신의 주변을 잘 살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아들까지 사법처리되는 가족적 불행을 당한 지금 겸허하게 모든 것을 맞이해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대선자금도 그래요. 몇 백, 몇 천만원이란 구체적 액수까지는 아니더라도 대선자금의 전체규모는 솔선해서 밝히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신한국당에서 손을 떼고 이번 대통령선거를 공정히 치르는데 힘을 쏟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거국내각 구성은 정당간의 당리당략에 놀아날 우려가 커서 반대합니다. 그리고 국민은 정치나 경제를 탓하기 이전에 자기 성찰과 근면 검소, 이를 지탱할 도덕적인 삶을 위해 자신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반성해 보아야 합니다. 조고각하처럼 자기 자신을 바라봐야 해요』

―나라가 지금과 같은 난국에 처한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 정치·사회현실의 근본적 문제점은 인륜의 상실과 윤리·규범의식의 마비에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김대통령이 내세운 개혁은 법과 제도, 곧 물리력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정치철학에 기초하고 있었습니다. 물리력에 의존한 개혁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지닌 셈이었지요. 인간적 도리와 윤리 규범을 바로 세우는 국민의식 개혁이 뒷받침됐어야 했습니다. 국민의식의 개혁은 물질·기능·실용주의에 물든 교육제도를 획기적으로 바꿔 어려서부터 참된 의미의 인륜교육을 실시하는데서 비롯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특히 우리 국민들이 가져야 할 올바른 자세는 무엇인지요.

『70년대 서양철학사에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세계적 석학인 하이에크가 주창하는 신자유주의가 등장했습니다. 자유가 인간의 본능적 충동만 충족시키는데로 흘러서는 안된다는 새로운 사상 흐름으로, 휴머니즘을 보장하는 자유도 기본적 도리와 사리에서 벗어나서는 안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하이에크는 「Law is not to be made, it is to be found」라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법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란 말이지요. 곧 법 뒤에 있는 도리나 사물의 이치를 깨닫지 못하면 법은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기 위해 만들어 낸 수단으로 전락한다는 말입니다. 지금의 시련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눈가리고 아옹하는 식의 법의식을 넘어서는 고도의 윤리의식과 참다운 도리로 재무장해야 합니다』

―21세기를 열어갈 차기 대통령의 자질과 자격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세종대왕의 찬란한 치적과 공덕의 바탕에는 올곧은 인륜정신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새 대통령의 첫번째 자질이랄까 자격은 「인륜에 바탕한 문화와 과학이 꽃피는 나라를 가꿀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치 9단이니 10단이니 하는 말에서 나타나듯 정치를 기능적인 차원에서 보는 인물은 안됩니다. 인격과 인품을 갖추고 보편적 가치관을 지닌 인물이어야 해요. 그 사람은 목적가치와 효용가치 중 목적가치를 존중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여부 및 시기와 관련해 국민여론이 엇갈리고 있는데요.

『김대통령 임기중, 혹은 다음 정권이라는 식으로 특정 시기를 못박을 수 없지만 사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두 전 대통령은 공과가 있는 사람들로 공적에 대한 평가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종교인인 저로서는 용서받지 못할 죄는 없다는 생각입니다. 북한의 김정일조차도 처벌의 대상이 아니라 순화나 구원의 대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랜 불황에 빠져있는 한국경제가 활로를 찾을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기업인의 자세는 어떻게 달라져야 하겠습니까.

『뚜렷한 주견과 경영철학을 지니고 있는 일본 경제인들에게 배울 점이 많습니다. 일본 경제인들의 철학이란 장인정신입니다. 일본의 눈부신 경제성장과 경영 근대화, 과학적 합리화, 능률화의 뒤에는 장인정신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만드는 상품에 스스로의 모든 혼을 불어넣고, 부를 쌓아올리는 과정에서도 원칙과 공익을 생각하는 것이 일본의 장인정신입니다. 그러나 우리 기업인은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등에서 볼 수 있듯이 기술과 자료를 가지고 고객을 속이는데 여념이 없습니다. 기능올림픽에서는 1등을 하는 나라이지만 파는 상품은 우수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기업인들이 사회적 존경을 받지 못하고 모리배나 이기주의자로 인식되기도 합니다. 「경제인은 어느 정도의 수학자, 정치가, 철학자가 되어야 하며 또한 예술가처럼 고답적이고 청렴해야 한다」는 현대 경제학의 태두 존 메이나드 케인스 박사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장기적 불황 속에서도 국민의 과소비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분수에 맞지 않는 과소비를 근절시킬 방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의 국민성은 로고스적(이성적)이기보다 파토스적(감상적)이어서 남들이 하는 일은 경쟁이나 하듯 따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회보장제도도 제대로 정착하지 못한 나라에서 사람만 모이면 단체해외관광 가기 바쁜 것이 우리 현실입니다. 선진국은 열 푼 벌어 한 푼 쓰는데 우리 국민들은 한 푼 벌어 열 푼 쓰는 셈이지요. 허리를 졸라매고 경제발전에 매진하던 60, 70년대의 절약·근검의 미덕을 되찾아야 합니다. 저도 앞으로 실천할 예정이지만 호텔회합 참석 안하기 운동 같은 구체적인 과소비추방 실천운동이 범사회적으로 펼쳐져야 할 거예요』

―최근 김대통령은 돈이 안드는 깨끗한 선거를 통한 정치개혁을 선언했습니다. 지금처럼 정경유착이 일반화한 상황에서 깨끗한 선거가 가능하겠습니까. 또 정치개혁을 위해 정치인의 자세는 어떻게 달라져야 하겠습니까.

『대통령이 공언한만큼 앞으로 이루어질 개혁입법 과정을 지켜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관행에서 빠져나오려면 대통령이 솔선해 대선자금 현황을 밝혀야 하고, 그것이 대통령 자신을 구제하는 지름길이요 국민들도 개혁입법이라는 「새 출발」에 흔쾌히 동참할 수 있는 길이라고 봅니다. 불교에 「기어의 죄」라는 말이 있습니다. 말은 번들거리게 하되 그 속에 진실을 담지 않는 죄를 말합니다. 우리 정치인들은 번들거리는 말은커녕 말 바꾸기도 예사로 하고 있습니다. 정치인들이 뼈를 깎는 성찰을 통해 자신의 말에 진실을 담고 또 그것을 실천하려 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지역감정이 다시 대두될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망국적인 지역감정을 타파할 방안은 무엇일까요.

『본래 지역감정을 만들어 낸 사람도 정치인들이고 지금도 정치인들은 지역감정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일부 정치인들은 「한을 풀자」는 말까지 할 정도이니…. 우선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정치인들의 발언을 금지시켜야 하고 근본적으로는 지역할거주의에 바탕한 현 정치판을 개혁해야 합니다』

―북한은 최근 극심한 경제난에 빠져 있습니다. 북한의 경제위기는 북한체제의 붕괴로 이어지면서 한반도에 새로운 혼란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우리정부는 북한의 경제난에 어떤 태도나 대책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정부는 구체적 준비도 안된 상태에서 북한 정권의 붕괴에 따른 흡수통일에 대해 지나친 낙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북한을 이끌고 있는 김정일은 자기를 객관화할 능력이 없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북한 정권의 자연붕괴를 감수하기 보다 「이판사판」식의 전쟁을 도발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히 굶주림에 지친 북한 주민들 사이에 「전쟁이라도 일으켜 굶주림을 끝장내보자」는 얘기가 돈다는 것은 주목해야 합니다. 우리 정부는 북한의 안정을 위한 경제적 지원을 하면서 「철의 장막」을 걷어낼 수 있는 끊임없는 교류 시도를 통해 참된 의미의 평화통일을 성취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과 같은 정치·경제·사회적 위기는 정부주도의 급격한 경제성장 속에서 올바른 국민정신이 자리잡지 못한데서도 연유한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우리 국민을 이끌 올바른 국민정신 혹은 덕목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 국민은 물질만능주의의 포로가 되어 참다운 삶의 보람과 기쁨을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참다운 행복을 발견할 수 있는 마음의 눈이 멀어있는 것입니다. 마음의 눈을 떠야 합니다. 우리의 건국이념은 홍익인간과 이화세계를 두 축으로 하고 있습니다. 홍익인간이라는 박애정신이 우리 안에 있어야 하고, 이화세계라는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세계관을 확립해 이성적인 면을 강화해야 합니다. 우리 국민은 옳고 그름을 가리는 시비정신은 강하지만 감성적이어서 대국적인 것을 놓치는 우를 곧잘 범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난국을 극복하기 위해 문학이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 국민은 왜 사느냐(Sein),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Sollen)하는 존재론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있습니다. 감은 눈을 뜨게 하는 것이 한국문학이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한국문학 자체도 존재론적 문제에 무관심한 상태입니다. 소설은 세태 묘사에 빠져있고 시는 언어의 유희만 즐기고 있습니다. 참된 의미의 실존적 고투 속에서 우러나온 작품들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문인들의 존재론적 각성이 앞서야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참다운 작가정신은 무엇이라고 정의하시겠습니까?

『아무리 멋진 문장과 글도 등가량의 진실을 담고 있지 못하면 감동을 줄 수 없습니다. 철학용어를 빌리자면 표상에 걸맞는 실재가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우리시대의 참다운 작가정신은 표상과 실재를 일치시킬 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진실은 진실된 생활인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에요』<인터뷰=서사봉 문화부 기자>

□약력

▲1919년 함남 원산 출생

▲45년 일본대 종교학과 졸업

▲48∼50년 연합신문 문화부장

▲52∼56년 효성여대 국문과 부교수

▲53∼57년 영남일보사 주필 겸 편집국장

▲60∼61년 서강대 국문과 교수

▲61∼65년 경향신문 논설위원

▲70∼74년 하와이대 극동어문학과 교수

▲76∼96년 중앙대 문예창작과 교수

▲97년∼ 중앙대 예술대학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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