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들은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를 「파티를 망치는 사람들(PARTY-PUFFERS)」이라고 부른다. 경기가 좀 좋아진다 싶으면 인플레 걱정이나 하고 성장률이 조금만 높아져도 금리를 올리겠다고 으름장을 놓기 때문이다. 고성장·저실업의 정치적 인기를 얻고 싶은 정부의 눈에는 이런 FRB가 「파티의 흥을 깨는 얄미운 사람」으로 보일 수 밖에 없다.그러나 미 행정부는 FRB의 파티를 깨는 행동을 가로막지 않는다. 불만이 있어도 논평조차 자제한다. 중앙은행 독립전통을 지키고 또 그렇게 하는 것이 경제발전에 이롭다는 점을 역사적 경험을 통해 확인했기 때문이다.
영국서도 정부 정책에 시시콜콜 잔소리만하는 영란은행을 「시어머니(OLD LADY)」라고 비꼬지만 아무도 그 역할을 빼앗으려 하지는 않는다.
정부와 중앙은행의 관계는 본질적으로 마찰적이다. 인기를 의식하는 정부의 성장논리와 물가안정을 위한 중앙은행의 반인플레주의는 화합이 어렵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평행선이 파국적 대립 대신 견제와 균형의 원리로 제도화할 때 경제의 기초는 비로소 견실해진다. 강한 정부 못지않게 강한 중앙은행이 필요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제3차 한은법파동을 불러일으킨 정부의 금융개혁안을 보면 과연 한은이 파티를 깨는 역할, 잔소리를 하는 시어머니 노릇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저 「정부내 한은」 「정부와 중앙은행간 협조」 「정책 연결고리」만 강조됐을 뿐 견제의 철학이 반영된 흔적은 찾기 어렵다. 정부는 지금도 「성장통화」를 공급함으로써 정부가 벌이는 잔치에 흥을 돋구는, 개발연대의 「파티 밴드」임무를 중앙은행에 바라고 있는 것이다.
잔소리야 듣고 싶지 않겠지만 아무도 잔소리를 하지 못하게 한다면 경제는 뒤로가고 만다. 귀를 틀어막게 만든 금융개혁안이 어떻게 50년앞을 내다본 「21세기 금융대계」인지 이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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