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적으로 다양한 논의의 기회를 허용해 금융실명제 시행은 무산되고 말았다. 당초 대통령긴급조치와 같은 비상조치를 통해 시행에 옮길 것도 생각했다. 정상적인 입법절차에 의한 시행을 촉구한 것은, 그런 식의 처리가 비민주적인 방식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강경식 경제부총리가 자신의 저서 「가난구제는 나라가 한다」에서 밝힌, 82년 재무부장관 때의 실명제 추진담이다. 강부총리가 이번 감독체계개편 등 금융개혁안을 「밀실 결정」한 것도 그 경험 때문이라면 억측일까.그는 지금처럼 그때도 자신감이 있었던 모양이다. 『일부에서 시행상의 문제점을 지적해 오는 경우 여러해동안 나름대로 연구해왔기 때문에 충분히 방어해 낼 자신이 있었다』. 그때 「강경식」이라는 별명이 붙여졌고, 지금도 쓰인다. 실명제법은 그해 여권 일부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통과됐다. 「86년 1월이후 대통령이 정하는 시기에 시행한다」는 단서조항이 붙기는 했지만…. 그는 당정이 법안을 철회시키려하자 전두환 대통령을 찾아가 시행을 늦추되 통과는 시키자고 건의했다고 술회했다.
강부총리는 이달 임시국회 소집이 불투명하지만 관련법률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했다. 물론 이번에는 조건부 통과까지 염두에 둔 것 같지는 않다. 한은총재와 금개위 위원장을 배석시켜 정부안을 공동발표할 수 있을 정도로 합의를 이끌어 낸 것이나, 발표문을 스스로 작성할 만큼 충분히 연구한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여러 상황상 40∼50년뒤를 내다보고 만들었다는 이번 안도 실명제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아주 크다. 주목할 만한 점은 실명제가 11년만인 93년 대통령 긴급명령으로 전격실시됐다가 강부총리 손으로 보완된다는 점이다. 그 사이 혼란이란…. 강부총리는 93년 실명제가 사정차원으로 접근하는 바람에, 다시말해 철저한 준비부족으로 부작용이 났다고 설명하지만 이번에는 그런 문제점이 없다고 자신하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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