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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김남아­훈 할머니 동생 김남조씨 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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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김남아­훈 할머니 동생 김남조씨 회견

입력
1997.06.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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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었다더니… 이게 꿈인가요”/“병사통보 받고 전해준 유골 매장했는데…”/고왔던 모습 부모님 사랑 독차지/끌려간뒤 1년만에 잠시 귀향도/아버지는 해방직후에 화병 사망『죽어서 매장까지 한 사람이 살아있다니…』

「훈」할머니가 자신의 큰누나인 것 같다고 한국일보에 처음 확인해준 부산 남구 대연동 김남조(62·사업)씨는 『큰누나 남아(75)씨가 일본에 끌려간뒤 종전 직전 사망통보를 받고 고향땅에 매장까지 했었다』며 50년이 지난 지금 큰누나의 생존사실을 현실로 믿으려 하지 않았다.

김씨는 『큰누나 남아씨는 동네에서 예쁘다는 소문이 자자했고 부모님들은 손에서 놓지 않을 정도로 귀여워했다고 전해들었다』며 『큰누나 역시 효심이 남달라 어머니 일을 많이 거들었다』고 남아씨에 대한 기억을 되살렸다.

김씨에 따르면 당시 부친은 남아씨가 일본군에 끌려간뒤 직접 『어머니가 많이 아프니 고향집으로 돌아오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으며 대만에 있었던 큰누나로부터 『멀리 있어서 못간다』는 답신을 받는 등 수차례 서신교환이 있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또 큰누나가 집을 떠난지 1년 조금 지나 대만에서 고향집을 직접 찾아왔으며 당시 부모님과 동생들에게는 『대만에서 일본군 장교와 정식 결혼해 잘 살고 있다』고 안심시킨뒤 이틀을 쉬고 대만으로 되돌아갔다고 밝혔다.

김씨는 『당시 고향을 방문한 큰누나가 자신을 업어준 기억도 있다』고 털어놨다. 이들 가족은 이후 남아씨 소식을 모르고 있다가 종전무렵인 44년께 불안해진 부친이 다시 편지를 띄우고 남아씨로부터 회신을 받은지 3일만에 당시 주재소로부터 큰누나가 대만에서 병으로 사망했다는 통보를 받았다. 당시 부친은 『편지를 받은지 3일만에 죽다니 믿을 수 없다』며 현지로 직접 찾아갈 수 있도록 주재소에 강력하게 요구하자 『전쟁중이라 찾아갈 수 없다』며 거절당했다는 것이다.

이에따라 부친은 『그러면 유골이라도 보내줘야 하지 않느냐』고 요구해 수일후 박스와 흰수건에 싸인 유골과 장례식 장면 사진을 집에 보내와 고향 선산의 조부모 산소 밑에 매장했다고 전했다.

김씨는 『부산에서 대만으로 끌려간 큰누나가 「훈」할머니가 맞다면 현지에서 일본군 장교를 만나 생활을 하다 이 일본군 장교를 따라 캄보디아까지 가게된 것 같다』고 말했다.

김씨는 큰누나 남아씨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던 부친 역시 일본군에 보낸 큰누나에 대한 번민으로 술로 지냈으며 해방직후인 46년 부산으로 이사온뒤 화병으로 숨졌다고 말했다.

특히 김씨는 『매년 청명한식이면 고향 선산의 큰누나 산소를 찾아 벌초해오고 있다』며 『매번 술 대신 사이다를 올리며 「시대를 잘못 태어나 한을 안고 갔지만 저승에서라도 부디 한을 풀어라」며 절을 하곤 했다』고 말했다.

『당초 나이도 맞지 않고 이미 사망해 매장까지 한 상태인데다 실제 맞더라도 자식들에게 부담이 될 것 같아 일본에 끌려간 사실을 전면 부인했었다』는 김씨는 『죽은 줄로만 알았던 사람이 이역만리에 살아있다는 사실이 꿈인지 현실인지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는다』며 고개를 떨구었다.<부산=박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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