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1급이상 38% 영남출신/권력의 안정성 위해 고위직일수록 편중 심해/독립적 심의기구 설치통한 투명한 인사정책이 지역감정 해소 지름길능력과 적성에 따른 적임자가 앉아야 할 고위직 공무원 자리가 특정 지역의 전유물이 될 때 그 폐해와 후유증은 엄청나다. 편중된 공직은 지역간 불균형개발과 같은 부작용을 초래해 결국 지역감정을 확대 재생산하게 된다. 공직 인사 편중에 대한 비판은 흔히 TK, PK로 불리는 영남 출신 우대에 집중돼 있다. 국민회의가 지난해 발표한 「현정부의 PK 편중 인사」자료에 따르면 1급 이상 행정직 공무원 215명 가운데 부산·경남 출신이 20.4%, 대구·경북 출신이 17.9%로 영남 출신이 전체의 38.3%를 차지했다.
이는 호남 출신 16.3%, 충청 출신 18.4%, 서울 출신 13.8%, 인천·경기 출신 5.6%, 강원과 제주 출신 각 3%에 비해 월등히 높은 비율이다.
고위직 가운데서도 「힘있는」 요직일 수록 지역편중 현상은 더욱 심하다. 국민회의 정세분석실은 『검찰과 경찰의 주요 보직, 국영기업체의 관선 보직을 대부분 PK가 장악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안기부장 검찰총장 경찰청장 국세청장 육참총장 등 「빅5」는 영남 출신, 그중에서도 PK의 독식이 심각하다는 분석이다.
인사의 지역별 편중현상은 「특정 지역 출신에 특정 직책 안배」라는 한국적 인사 스타일을 낳기도 했다. 현정부 출범이후 농림부 장관은 줄곧 호남 출신이 맡았다. 역대 정권 출범 초기 또는 정치적 위기상황에서 비영남권 인사가 국무총리가 된 것도 이런 예에 속한다.
지역주의 인사가 끊이지 않는 데 대해 인사권을 쥔 쪽은 「과거 정권 책임론」을 들먹인다. 과거 역대 정권이 영남 출신을 요직에 앉히고 키워왔기 때문에 타지역 출신 가운데서 마땅한 인물을 찾기 어렵다는 식이다. 실제로 역대정권의 지역별 인사 편중이 얼마나 심했던가는 강원대 행정학과 박대순 교수 등 4명이 발표한 연구 보고서 「지역발전 격차에 대한 정치경제학적 접근」이 잘 보여준다.
건국후 6공화국에 이르기까지 장·차관 처장 청장 등 고위 관직을 지낸 이들의 출신지역별 분포와 지역별 경제지표를 관련지은 이 보고서에 따르면 고위관료 가운데 영남 출신이 28.5%로 가장 많았다. 이어 충청 14.6%, 서울 13.5%, 호남 11.8%, 평안 8.4%, 경기 7.6%, 함경 5.1%, 강원 4.9%, 황해 4.5%, 제주 1.2% 순이었다. 특히 62∼87년 경제기획원 내무부 상공부 건설부 등 국토개발 관련 부처의 장관급 인사 1,878명 가운데 대구·경북 출신이 35.9%로 가장 많았고 부산·경남이 19.2%로 뒤를 이어 영남 출신이 절반을 넘었다. 그에 따라 지역별 부가가치 생산 비율은 전국의 44.8%를 차지한 수도권을 제외하면 영남이 24.1%에 달해 호남(6.2%), 강원(1.8%)과 현격한 격차를 보였다.
연세대 사회학과 김용학 교수는 『엘리트 충원 과정에서 지역 연고가 중요한 변수가 된 데는 연고주의 전통 뿐만 아니라 권력의 안정이라는 객관적인 요인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정권의 정통성을 결여한 3공때부터 지역주의 인사는 「권력의 불확정성」을 줄이기 위한 「합리적 선택」이었다는 것.
전문가들은 지역주의 인사 해결책으로 지연의 고리를 끊는 혁신적인 단안과 공무원 인사를 관장할 독립적인 인사심의기구 설치 등을 제시하고 있다. 미국은 대통령 직속의 인사관리처가 있고 일본의 인사원, 영국의 공무원 장관실, 프랑스의 행정공무원총국도 서로 비슷한 방법으로 인사 관리를 하고 있다.
박대순 교수는 『연줄에 의한 조직은 눈덩이처럼 불어 나는 성질이 있고 요즘은 특정 지역·고교 출신 뿐만 아니라 대학·대학원 출신 모임 등으로 세분, 복잡화하는 양상마저 띠고 있다』며 『지역주의 인사를 깨는 것은 언뜻 어려워 보이지만 실은 가장 쉬운 지역갈등 해소책』이라고 강조했다.<이상연 기자>이상연>
◎여론주도층 지역편견 더 심하다/‘특정지역 기피율’ 저소득층 30%·고소득층선 50%
『일반 서민들이야 먹고 사는 데 바빠서 지역감정 같은 데 신경쓸 겨를이나 있나요? 다 지역감정에 빌붙어 한몫 보려는 정치인들이나 힘 있는 사람들, 똑똑한 사람들 얘기지요』
8년째 「민심의 안테나」인 택시기사 일을 하고 있는 대구 토박이 정모(43)씨의 말이다. 생활속에서 체험을 통해 얻은 정씨의 이같은 믿음은 지역감정에 관한 많은 연구 결과와 정확히 일치한다. 고학력·고소득자일수록 지역주의적 편견이 심하다는 것.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15% 정도인 여론주도층의 특정지역 기피율은 40.1%로 전체 평균 30.9%에 비해 10% 포인트 가까이 높았고 정치무관심층의 23.3%의 거의 2배 수준이었다. 또 자기 출신지역에 대한 충성도도 타계층에 비해 월등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월평균 100만원 미만의 저소득 집단에서는 특정 지역에 대한 거부감을 보이는 비율이 30%에 못 미치지만 고소득층에서는 그 비율이 50%에 이른 조사 결과도 있다.
연세대 Y교수는 이에 대해 『지역감정을 등에 업은 정치 지도자들에 대한 여론 주도층의 염증과 환멸이 특정 지역에 대한 반감으로 확대재생산된 것 아니겠느냐』며 『기존의 지역 분할의 정치 구도에서 이익을 누리고 있는 기득권층의 밥그릇 지키기 성격의 사회·경제적 요인도 무시하기 어렵다』고 조심스럽게 분석했다.
지역감정 해소의 주역이 돼야 할 계층이 거꾸로 지역감정 확산의 주범이 돼 있는 역설적인 현실이 좀체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지역감정 문제의 핵심일 수도 있다.<황동일 기자>황동일>
◎고질적 지역감정 산업화 이후 고착/경제개발과 소외 양갈래로 갈라져
망국적인 지역감정의 뿌리는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학자들마다 설이 분분하지만 혈연과 지연을 중시하는 연고주의 정서가 문화적 토양이라는 데는 별 이견이 없다.
유교적 가치관이 지배한 전통사회에서 우리 조상들은 혈연 관계인 집안을 대단히 중요하게 여겼다. 가족주의에 바탕한 혈연적 유대는 집성촌, 즉 동족부락을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지역적 유대로 이어졌다. 사회발전에 따라 외부세계와의 접촉이 확대되면 혈연과 지연에 바탕한 연고주의 정서는 자연히 대내적 결속 및 대외적 배타성을 낳게 마련이다. 농촌지역에 아직도 남아 있는 「텃세」는 이런 배타적 연고주의 정서의 흔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연고주의 토양이 그것만으로 지역감정이라는 「악의 꽃」을 피울 수는 없다. 어떤 역사적 계기가 씨앗으로 뿌려졌을까. 흔히 삼국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가 신라와 백제의 대립에서 영·호남 지역감정의 싹을 찾기도 하고 고려 태조가 『차령 이남인(후백제인)을 등용하지 말라』고 밝힌 「훈요 10조」이래 호남 출신에 대한 조직적 차별이 이뤄졌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신라와 백제의 대립은 지배층의 대결이었을 뿐 기층 민중이 확고한 소속감을 갖고 서로 배타적인 감정을 가졌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게 중론이다. 마찬가지로 관직 등용에서 호남 출신에 대한 차별이 실제로 이뤄졌다고 해도 그것은 사회 상층부의 관심사일 뿐 일반 백성들의 정서나 삶과는 무관했다. 더욱이 역사적으로 고려 이래 호남 출신이 차별을 겪었거나 영남 출신이 우대된 흔적도 확인하기 어렵다.
조선시대의 관직은 일반적 추측과는 달리 서울·경기·충청 출신에 의해 독·과점됐고 영남 출신은 호남 출신과 마찬가지로 주변부를 맴돌았다. 특히 1800년 이래 노론의 중앙권력 장악이 계속되면서 남인이 주류인 영남 출신은 오히려 호남 출신보다도 관직 진출 기회가 적었다.
오늘날과 같은 집단의식 차원의 영·호남, 호남·비호남 감정 대립은 근대화 이후 희소한 자원 배분 과정에서 나타난 결과라는 게 통설이다. 즉 일제 식민지하에서 서울-부산축이 자본주의 경제발전의 기본축으로 설정되고 해방 이후 그 성격이 심화해 고질적 지역감정을 낳았다는 분석이다. 특히 한정된 국가자원 배분이 주요 관심사가 됐던 박정희 시대의 경제개발과 정치적 대결 구도에서 나타난 지역대립의 틀이 김영삼·김대중 양김씨의 정치적 분열과 13대 총선과 대선을 거치면서 단단히 굳어져 버렸다는 것.
한편 공업화 과정에서 전통적으로 소작관계가 발달한 호남 지역의 많은 농민들이 맨손으로 도시로 흘러와 3D 업종에 종사하면서 차별과 멸시를 받았고 이것이 전체 호남 출신에 대한 사회적 편견으로 굳어진 측면도 있다.<황영식 기자>황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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