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적 테마의 열린 나르시시즘당신은 두 가지 유형의 시인을 만날 수 있다. 고백적 목소리의 동일성에 집착하는 시인과 세계의 모순을 읽어내는 언술방법을 모색하는 시인. 김혜순 시인은 물론 후자에 속한다. 여섯번째 시집인 「불쌍한 사랑기계」(문학과지성사간)에서 시인은 세상의 몸과 그것과 환유적 관계를 이루는 자신의 몸을 그려내려 한다. 그래서 그의 시에는 안과 밖, 과거와 현재, 나와 세상이 하나의 시적 육체 안에서 교통하고 살섞고 있다. 물론 김혜순 시인 역시 실존적 테마를 다룬다. 하지만 그는 서정적 어조의 단일성에 매달리지 않고 감상과 관념의 부주의한 범람을 용인하지 않으며, 따라서 독자를 동일시의 세계로 유인하지 않는다. 시의 언술은 말의 불협화음과 경험의 모순을 받아들이는 소통방식을 연다. 시인의 상상력은 아주 먼 곳에 떨어져 있는 언어와 사물들을 연계시켜 주지만, 그것은 철저히 현대적 일상적 공간에서 출발하고 있는 것들이다.
시집의 첫장을 열면 보이는 시 「쥐」는 이런 맥락에서 첨예한 예가 될 수 있다. 이 시는 「어둠(밤)/빛(아침)」이라는 단순한 이미지의 대비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시인은 여기에 실존적 상상력을 개입시킨다. 「밤은 저 빛이 얼마나 아플까」라는 날카로운 표현이 드러내주는 바와 같이 밤과 빛은 실존적 관계를 맺는다. 시의 화자는 빛에 아파하는 세상의 어둠을 보는 동시에 자기 몸의 「검은 내부」를 본다. 「빛/어둠」의 대립은 「내시경」과 「첫눈」의 상상력에 힘입어 평면성을 돌파하고 내면과 깊이를 갖게 되며 동시에 입체적이고도 역동적인 것이 된다. 그래서 세계의 부조리와 아이러니는 미학의 차원을 얻게 된다. 이 시의 제목은 왜 「쥐」일까? 현대인의 실존적 조건을 쥐라는 상징으로 드러내려 한 것일까. 만약 김혜순의 나르시시즘이 우리 문학의 퇴행성을 반영하는 저 흔한 나르시시즘과 변별될 수 있다면, 그것이 자기 내부와 세계의 구조의 상동성을 사유하는 열린 나르시시즘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이 세상의 몸을 자신의 몸으로, 그리고 시의 몸으로 사는 눈부신 여성성의 의미이다.<문학평론가·서울예전 교수>문학평론가·서울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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